문화산책 엄마의 반지굵은 손마디에 금가락지큰 언니가 시집가면서 끼워준 반지명주실로 칭칭 동여매어 끼워졌었다어느 날 엄마의 손가락을 차지한 꽃반지6살 손주가 생신 선물로 끼워준 문구점 반지다언니의 반지가 빠져나간 자리에 드러난 하얀 살갗그 자리를 차지한 예쁜 꽃반지엄마는 문구점 반지를 많이 아꼈다이제는 반지보다 먹을 것을 더 찾고돈 보다 아들 얼굴을 더 많이 더듬는다손만 잡아주고 돌아서려는데문구점 반지가 내 손을 붙잡는다살면서 낯선 것들이 가슴을 치면아버지의 얼굴이 두 눈에 어룽지고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두려움에가슴 우물은 끝없이 깊
문화산책 꽃 활짝 피어도 시들어도 향기를 잃어도 그 이름은 언제나 꽃꽃답게 살다꽃답게 지는 일은거룩한 일꽃의 마음으로 살다 보면언젠가는 꽃이 될 거야 꽃보다 아름다운사람이 될 거야 * * *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그 여고생이 막차에서 내린 뒤로는누구도 본 사람이 없다고 한다 다만 술 취한 남자 두 명이 내려같은 방향으로 가던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봤다는 버스 기사가 있을 뿐, 자영업을 하던 아버지는전국에 전단지를 뿌리고 현수막을 매다느라가진 재산을 다 쏟아 부었다 어머니는 찐한 보약을 마시고 딸을 찾으러 간다며 서쪽 나라 국경
문화산책마음 내가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건아기들과 강아지와 예쁜 꽃들입니다풀숲에 숨어있는 작고 여린 들풀 에게도사랑한다는 말 할 수 있습니다길을 가다 담장에 기대어 속삭이듯사랑한다는 말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이 이토록 하기 어려운 건오직 당신뿐입니다 당신이 계신 곳에 가는 날이면마음이 먼저 앞장서서 가지요그것을 휘어잡아 처마에 매달고풍경을 따라 놀게 하였습니다흔들리면 따라 흔들리고노래하면 같이 노래하고울먹거리면 따라 울게 일러두었습니다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어디에도 매달리지 말고 살라, 일러두었습니다굳이 사랑한다는 말 하지
문화산책나무가 꽃을 꺼내기 시작했다. 햇살의 펌프질에 물길 내고 꽃을 터트렸다. 아랫녘에서 시작된 설렘, 산수유와 매화 등 봄꽃들의 축제가 시작됐다. 봄이 꽃을 꺼내는지 꽃이 봄을 불러들였는지 따질 필요는 없지만 꽃의 계절이 되었다.나무의 단단한 각질 속에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어 꽃을 꺼내고 잎 만들고 열매를 맺을까 하는 원초적 상상이 으적거린다. 그 꽃들 나비와 벌 불러들여 초례청 차리고 여름 한철 무성해지다 태양이 식어갈 즘 단풍 빚어내고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나무의 지혜를 닮고 싶음일까.숲에 들면 그들의 질서가 눈부시다. 나
문화산책 술 1.뜨문뜨문 입담이 부딪히는 헐렁한 식당 안텔레비전 속을 파고드는 사내들-맑은 물 한 병 주세요오늘은 맨정신으로 안 될 것 같단다개표방송이 시작되자역대 대통령의 행적들은 훌륭한 안줏거리다급기야는 주먹질이 오가고경찰이 출동했다토끼 눈이 된 사내의 분개와 술병과 주인 여자를번갈아 훑어보던 경찰 아저씨-직접 여의도로 가든가 할 것이지......현장을 수습하며 오늘만도 이런 일이 세 번째라고씁쓸한 웃음을 흘리고 돌아선다 2.더위마저 졸고 있는 한낮-주약 한 병 주세요-아무한테나 소주는 안 파는데 점잖아서 줍니다-네, 먹고 그냥
문화산책쇄빙선 거대한 몸집으로 결빙을 쪼개고 있다둘러싸인 차가운 눈초리갇혀 있던 시간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단단해진 두께로 바람은 항로를 막고 있다험한 길 벗어나지 못해오랫동안 제자리를 서성인다한동안 엎드려 있던 목덜미에 한기가 스며든다얼음벽을 둘러치고 있는 수역냉정으로 뭉쳐진 자리에서온기를 향해 힘을 모아간다생생한 질주를 항해하기 위해늑골에 단단한 내공을 가져온다새벽바람에 오늘도 어느 가장이 무거운 어깨를 들고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길을 향해한 걸음씩 내딛고 있다 * * * 종 박물관 집은 닿지 않는 꿈결로 흥건하고나선형 고리만 만
문화산책 봄비 샤워기를 틀어놓은 듯봄의 길목을 향해 빗줄기들이찾아오고 있다 나무들은 봄을 맞이하기 위해파릇한 생기가 돌아 물꼬를 트고산에 내리는 비는기계 소리에 놀라 입을 벌리고 있는민둥산 자락에도 쉼 없이 물줄기를 부어주고 있다 새순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어 봄을 맞이하는 사이바람은 지난해 못다 떨군 산수유 열매를 흔들며꽃봉오리가 나오기를 재촉한다 빗물이 튈까 봐 잔뜩 웅크리고 있는 나에게봄비가 찾아와 머리 위에 포근히 앉는다오늘은 봄비에 흠뻑 젖고 싶다내 마음의 새순이 나오도록 * * * 봄 오늘따라 뿌연 시야가 외출을 막는 것은
문화산책 한숨 불현듯,보름달을 한껏 푸~하고 내뱉어봐요한꺼번에펄쩍펄쩍 토끼 수백 마리가 천방지축으로 뛰어나와달리고 달리다 덜컥 벌판에 고꾸라지면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수백 마리까지한 번에 흡~하고 다시 삼켰다가일순간 바다 위에 푸~하고 내뱉어봐요출렁출렁 파도를 타고 토끼가 아니 돌고래 수수~백 마리가 너울춤을 추며오르락내리락 물보라가 튀어엎어지고 자빠지고 속이 뻥 뚫어져범고래 등짝을 뚫고 한꺼번에 솟구쳐 올라푸~이건 오랜 습관이다간혹 필요한 일이다걱정이 날아가는 * * * 술래잡기 누구세요?매일매일 술래가 되는 섬벚꽃잎 풀풀
문화산책 추억책갈피 속에 파묻혀 있던 임의 얼굴내 가슴에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촉촉이 내리는 가랑비 맞으며광란하게 비치는 네온사인 거리를 헤매다뇌리로 스쳐 가는 그리운 눈동자, 상냥한 미소가슴에 파문을 일으키고 그날로 돌아갑니다풀잎에 구르는 초롱초롱 은구슬꿈속에 피어서 눈부신 살결밝아오는 아침에 시들어 이별한들노을 지는 오솔길 거닐며 보리향기에 취하고두꺼운 구름이 새벽을 가린다 해도사랑이여희망이여슬픔이여 눈가에 맺혀있는 눈물방울소리 없이 눈길을 끌고 갑니다 * * * 할미꽃뽀송뽀송한 저 살결늙어도 저리 눈부실까비너스보다도 고운 다리맵
문화산책 밤비영춘화가 쏟아지듯 피는 붉은 옹벽 아래꽃 그림자 데리고밤새 봄비 내린다 * * * * 푸른 아가미 섬세한 지느러미 날개 치는섬들과 호흡하는 푸른 아가미놀란 듯이 해가 미끄러지고바닷소리 애타게 귀를 울리는데지폐로 옷 입혀진 동무들이이정표 짙은 수족관에 갇혀 떠다닌다 퍼덕이며 헤지는 지폐들규칙으로 헤엄치는 굼틀거림의 왕국지폐의 왕은 지폐들의 노예나를 잡아 칼날의 부림 속에미완성의 알들을 싣고 해가 지도록비린 수레 끌면서 끌려간다 나를 다 팔지 못한 노예는 상심한 채탄식으로 나를 먹는다찢어 흩어져 오고 간 흔적바람으로 살아
문화산책 눈썹달썹달이 자꾸만 따라온다발길 조심하라고어머니가 보내셨나 보다대수술 고통으로 찡그린 얼굴보여주는 억지웃음 씰룩이는 눈썹눈썹달이 구름에 숨어서 따라온다어여가라고어머니의 손사래가 따라온다혼자가 싫다는 어머니의 마음이 따라온다엄마가 아프다고 눈썹달이 말한다허물어져 가는 초가집으로 가고파괜찮다고 씩씩한 척 짓는 눈웃음못 본 척떠나온 발걸음 무거워 멈춘 금강 다리따라온 눈썹달 강가에서 눈물 받아낸다 * * *옛집정지문을 열고 내다보던 어머니한 손에는 검불이 한 손에는 부지깽이가 들려있었다생솔가지에 불이 잘 안 붙는지생 연기에 연신
기고전남 목포공생원을 지난해 연말에 두 번 다녀왔다. 평택시민신문은 2023년 11월 29일 자 지면에 실린 제14회 민세상 사회통합 부문 수상자 ‘윤기’ 사회복지법인 공생복지재단 회장의 수상 소감을 읽고, 부끄러워서 처음으로 방문했다. 15년 전에 일본 에히메현 의회 의장이던 일본인 친구 모리따까 야스유키씨가 목포공생원에 다녀왔다고 진지하게 이야기하면서 에히메현 반대쪽 고치현 출신 일본인 여사를 이야기하는데 일본 종교단체 정도로 알고 무심코 지나쳤던 기억이 나 몹시 부끄럽고 죄지은 심정이었다.목포역 건너편 버스정류장에서 1번 버스
문화산책 맛있는 경기달콤한 단호박죽잣꽃 피워 갔더니영양빵 요구르트한가득 넘어왔다구수한 동지팥죽 물김치와 갔더니파실파실 밤고구마겉절이와 함께 왔다엄마들은 맛난 걸로탁구 경기를 한다규칙은 따로 없는 사랑 담긴 경기 * * *나무는 괴로워한 해가 저물어 갈 즈음이면나무마다 어김없이 칭칭꼬마전구로 휘감긴다거리에 어둠이 내리면금빛 은빛 찬란해지는 나무 나무들......그렇게 반짝이는 오색나무는결코 웃는게 아니다그저 스쳐 지나는 누군가를 위해카메라 속 한 장면을 위해 기꺼이 서 있는 게 아니다나는 살아 있다고내게도 잠과 휴식이 필요하다고외쳐도
문화산책2024년 새해를 팽성읍 객사리에 위치한 부용산에서 맞이하였다. 지난해 개장한 부용산 공원에서 올해 처음으로 신년 해맞이 행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부용산 공원 새해 해맞이 행사는 올해 처음으로 팽성(평택현) 역사문화 마을시민 모임에서 자비사(망한사)의 후원으로 이루어졌다. 마을의 안녕과 번영, 참가자들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는 조촐한 떡국 나눔 행사였지만 시민들의 예상 밖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부용산은 평택현의 큰 들판에 모말 하나를 엎어놓은 것 같은 모양으로 마치 부용(芙蓉) 연꽃처럼 생겼다고 해서 부용산이라 불렀고,
문화산책배두순 시인 폭설의 아침 우와! 다 지워주셨다다 덮어주셨다 잘 살아야겠다 * * * 원평나루 갈대숲* 원평나루 물기슭은죽도록 살고 싶은 갈대의 마을어버이 갈대들의 슬하에서어린 것들은 파릇파릇 꿈처럼 자라나고철새들은 노래하며 춤춘다눈보라에 굴복하지 않으며폭풍우에 꺾이지 않는 푸른 절개는영원한 우리들의 정신바람이 울면 소리 내어 함께 우는갈대숲의 은유를 헤아려보자원평나루 갈대숲은아무 데도 가지 않아역사를 지키고 그리움을 곰삭히며 산다융성했던 시절을 추억으로 간직하며모진 비바람에 쓰러져도허리 곧추세우고 다시 일어선다네사람의 마을에
문화산책최경순 시인 앰뷸런스 뾰족한소리 하나간절함 품고막힌 길 뚫는다 기도가꼬리 물고뒤를 따른다아무 일 없기를 * * * 어스 아워* 지구를 살려보자매년 3월, 마지막 토요일 오후 8시 30분1시간 동안의 작은 혁명에 동참한다모든 스위치를 내리고마음의 등불을 켠다사위(四圍)가 밝아지고깜깜하기만 하던 묵은 사념들이저마다의 고개를 든다오래 방치했던 것들의 아우성이 들린다 바다가 뜨거워지고공기마저 후끈거리고계절을 망각한 꽃들이 함성을 지르며순서 없이 피어난다작은 생들조차 어리둥절물고기들의 산란도 천방지축을 달린다나무들의 게놈지도가 휘어지
황의수평택섶길의 걷기미학에 빠진 섶길인디카시마니아 회원강원시조시인협회 회원 디카시* 단호박릉 발굴 중입니다촬영해도 될까요안 됩니다 지난 금요일 섶길해설사 교육이 있었다. 평택 역사에 관심있는 일반인도 참여 가능하다는 안내에 따라 일반인으로 교육 기회를 얻었다.그동안 섶길의 여러 코스를 발로 체험하고 나서 듣는 백승종 교수의 강의는 흥미진진하여 귀를 높게 세웠다. 첫날 강의 말미에 교수님은 '평택을 고대 국가부터 언제나 국가이익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제1선이며 따라서 평택이 평화로우면 나라가 두루 평안하다'라고 요약해 주었다.다음 교육
고봉밥 이야기 가을걷이 잘 끝낸 들녘이랑에 놓아둔 황금 볏가리들한 손 말고 두 손안에 담긴우리 마을의 따순 마음들땡볕이 익힌 인심사람의 온기가 벌판에 가득한 날 너도나도 파먹어도 줄지 않는 침이 섞여도 달디 달은 같이 먹는 고봉밥그저, 꿀꺽 삼키고 소화 시키려고 뿜어낸 시민이라는 소화액을 곁들인어느 때보다 절실한 한솥밥그 밑에 구수한 누룽지 비워내도 바닥까지 구수하다고한통속에 닿았다고 숭늉 한 사발, 그렇게 입가심하며 이리저리 지면을 넘기다 보면이웃이 된 우리네 이야기들밥 짓는 연기 피워 올리는 마음으로한 상 가득 너를 초대할게넘치
문화산책박미자 시인국화 설움이 많아 꽃빛이 막막한 걸까며칠 후면 바삭거릴 얇은 내막들이제법 급한 듯 막간의 바람까지소홀치 않는다누군가는 그 곁을 지나쳐조문의 길을 열기도 하고누군가는 그 곁을 지나쳐쓸쓸한 화해 한 다발을 묶기도 하는,세상 다 그렇지만추 뒤에 서서 세상의 국화들을 보면어떤 가을의 태양이든경조사를 접었다 폈다 할 뿐이지누군가 햇살 한 줌에 지쳐 온 가을을슬픔의 바이러스라고 항변하듯그렇게 한 번 그 속에접혔다 펴지는 일이지. * * * 가을 끝의 화두 곪은 가슴을 짜듯노란 가을비가 온다뜨듯하게 증탕된 하루은행잎들은바람들의
문화산책 연 날리는 아이들 가을걷이 끝난 논바닥하나둘 모여든 아이들새 떼처럼 조잘거리며 서로 다른 연을 날린다찬바람에 콧물 훌쩍이며 연신 닦는 소매빛에 반사되어 반질반질 광이 난다 추운 줄 모르고 겨울을 맞이한 아이들균형이 맞지 않는 연은 뱅뱅 돌다가바닥에 고꾸라져도당연하다는 듯 여기저기 살핀다순간 마음은 한 뼘 자랐을 것이다 오지 않는 한 사람해는 저무는데논두렁 달리는 우리 오빠소리쳐 부를 때 내 손에 건네준 연줄그날 저녁은 끝내 먹지 못했다우리 엄마 매운 손이 날아와등을 후려치며“너는 바보냐?” 하시던 날 * * * 그 겨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