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봄비

 

샤워기를 틀어놓은 듯

봄의 길목을 향해 빗줄기들이

찾아오고 있다

 

나무들은 봄을 맞이하기 위해

파릇한 생기가 돌아 물꼬를 트고

산에 내리는 비는

기계 소리에 놀라 입을 벌리고 있는

민둥산 자락에도 쉼 없이 물줄기를 부어주고 있다

 

새순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어 봄을 맞이하는 사이

바람은 지난해 못다 떨군 산수유 열매를 흔들며

꽃봉오리가 나오기를 재촉한다

 

빗물이 튈까 봐 잔뜩 웅크리고 있는 나에게

봄비가 찾아와 머리 위에 포근히 앉는다

오늘은 봄비에 흠뻑 젖고 싶다

내 마음의 새순이 나오도록

 

*          *          *

 

 

오늘따라 뿌연 시야가 외출을 막는 것은

먼 곳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불편 때문은 아니다

 

몽골이 통째로 날아오고 있다

시진핑의 얼굴이 밟히고 황산의 여행이

뒤로 미뤄진 이유 때문도 아니다

 

손으로 앞을 저어봐도

눈을 비벼 다시 쳐다보아도

안개 낀 거리와 다름없는 이 현상이

먼 곳에서부터 출발한 봄의 행로를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안경을 벗어 던지고

보이는 것만 보기로 한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나의 신발이 보인다

신발이 이끄는 대로 따라나섰더니

어디선가 새싹 움트는 소리가 들리고

푸릇푸릇 풀들의 기지개 켜는 모습이 보인다

묵은 풀들 사이로 뾰족뾰족 올라오는

푸른 촉들을 들여다보는데

누군가가 어깨를 툭 친다

돌아보니 봄이었다

 

 

 

ㅇ
원유희 시인

원유희 시인


월간 <문학공간> 등단
한경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과 졸업
평택사랑 전국백일장 제 24·25회 입상
국어 강사, 문예학습 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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