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쇄빙선 

 

거대한 몸집으로 결빙을 쪼개고 있다
둘러싸인 차가운 눈초리
갇혀 있던 시간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단단해진 두께로 바람은 항로를 막고 있다
험한 길 벗어나지 못해
오랫동안 제자리를 서성인다
한동안 엎드려 있던 목덜미에 한기가 스며든다
얼음벽을 둘러치고 있는 수역
냉정으로 뭉쳐진 자리에서
온기를 향해 힘을 모아간다
생생한 질주를 항해하기 위해
늑골에 단단한 내공을 가져온다
새벽바람에 오늘도 어느 가장이 
무거운 어깨를 들고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길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고 있다 

 

*            *            *

 

종 박물관 

 

집은 닿지 않는 꿈결로 흥건하고
나선형 고리만 만지작거린다
들끓는 고열에 품속으로 자꾸 당겨지는 수족들
둥근 울림은 무기력한 몸으로 도착한다
실타래로 감겨오는 묵은 사연들
한 무더기 담벼락에 엎드려 있다
모자이크로 새겨진 청춘에
어둠의 무늬들은 깊은 잠 속으로 눕는다
귓바퀴를 돌며 부딪치는 간절한 눈동자
유랑으로 비틀어진 흔적을 되새긴다
두 손 밀고 당겨보지만
제 몸의 무게로 파동을 버티고 있다
더 큰 소리로 날아가기 위해
따뜻한 체온이 늑골 사이로 잠겨든다
두꺼워진 몸은 언제나 
귀뿌리를 사방으로 전개하고 있다
멀리서 청동의 무게를 실어
자식에게 건네줄 가장 환한 소리를 궁굴리고 있다
따뜻한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오래된 집은 꿈들을 수집하는 중이다
어머니 가슴 속에 수백 개의 종이 자라고 있다 

 

 

김영자 시인
김영자 시인

 

김영자 시인


고려대 인문정보대학원 문화예술학과 졸업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한국본부 회원
경기시인협회 이사
경기도 문학상 본상
시집 <문은 조금 열려있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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