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박미자 시인
국화
설움이 많아 꽃빛이 막막한 걸까
며칠 후면 바삭거릴 얇은 내막들이
제법 급한 듯 막간의 바람까지
소홀치 않는다
누군가는 그 곁을 지나쳐
조문의 길을 열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 곁을 지나쳐
쓸쓸한 화해 한 다발을 묶기도 하는,
세상 다 그렇지
만추 뒤에 서서 세상의 국화들을 보면
어떤 가을의 태양이든
경조사를 접었다 폈다 할 뿐이지
누군가 햇살 한 줌에 지쳐 온 가을을
슬픔의 바이러스라고 항변하듯
그렇게 한 번 그 속에
접혔다 펴지는 일이지.
* * *
가을 끝의 화두
곪은 가슴을 짜듯
노란 가을비가 온다
뜨듯하게 증탕된 하루
은행잎들은
바람들의 낮은 질서에도 제 일생을 내주고
방금 새어나온 노란 레인코트가
중년의 고집을 잠그고서
외출 저쪽으로 사라지는 건
아주 잠깐 동안의 일이다
이런 날엔 두문불출
자서전에 매달리고 싶다
나를 지탱시켰던 절망의 목록들과
간당 없는 희망들과 나머지의 감정들을
천천히 진술해 보고 싶은 것이다
오후가 비좁아지면 사라질지도 모를
늦가을 한때의 짧은 공상
그야말로 횡재한 기분이다.
박미자 시인
평택문인협회 평택아동문학회
한국아동문학회 경기도지회장 시원문학동인
한국여행문학회 굿이너프 심리상담센터장
시집 '모든 시간들에겐 향기가 있다'
동시집 '여기 좀 봐'
평택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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