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1.

뜨문뜨문 입담이 부딪히는 헐렁한 식당 안

텔레비전 속을 파고드는 사내들

-맑은 물 한 병 주세요

오늘은 맨정신으로 안 될 것 같단다

개표방송이 시작되자

역대 대통령의 행적들은 훌륭한 안줏거리다

급기야는 주먹질이 오가고

경찰이 출동했다

토끼 눈이 된 사내의 분개와 술병과 주인 여자를

번갈아 훑어보던 경찰 아저씨

-직접 여의도로 가든가 할 것이지......

현장을 수습하며 오늘만도 이런 일이 세 번째라고

씁쓸한 웃음을 흘리고 돌아선다

 

2.

더위마저 졸고 있는 한낮

-주약 한 병 주세요

-아무한테나 소주는 안 파는데 점잖아서 줍니다

-네, 먹고 그냥 잘 겁니다

반주는 보약이라 되뇌며 묵묵히 두 병을 비우고

찜질방 바닥에 달라붙어 코끼리를 조련하던 사내

벌떡 일어나 훌러덩 벗어던지고

볼품없는 거시기를 드러내고 만다

여자들의 비명이 흩어지고 사내는 화장실로 숨어든다

사내는 천국인 줄 알았던 것

 

3.

칼로 물 베기에 목숨 건 지도 달포는 되어간다

싸늘한 기운에 베란다의 꽃들도 입을 다물고

아이들의 얼굴엔 긴장이 감돈다

남편의 협상에 한 치의 양보도 허용하지 않는다

기 싸움을 넘어 화해의 순간을 놓쳐버리고,

이제 와서 돌려놓기엔 영 쑥스럽고,

밤새 천정에 화살을 쏘아내다 결심 하나 굳힌다

어둠도 드러누운 조용한 밤

찬장 깊숙이 갇혀있던 크리스탈 글라스 한 쌍을 꺼내고

철철 넘치도록 정을 따른다

불통의 시간을 허물어 버린다 쩡!

극적인 순간이다

금성과 화성이 부딪히며 별빛이 쏟아진다

그래,

내일 아침 밥상에는 생선 두어 마리 더 올려야겠다

싱그러운 이야기꽃도 좀 피워야겠다

 

 

김복순 시인
김복순 시인

 

김복순 시인


평택문인협회 회장
평택문학상, 경기문협 공로상
시집 <목련 우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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