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주간 차성진

1. 남자라고 모두 스포츠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여성들이라고 해도 아시안게임에서 벌어지는 모든 종목을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라별로 금메달을 몇 개 땄는지 순위를 매기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은 더더욱 적을 것이다. 그런데 아시안게임을 중계하는 방송에선 지겹도록 국가별 순위(그것도 금메달 개수로만)를 얘기한다. 우리가 일본보다 많은 금메달을 딴 것이 마치 모든 분야에서 일본을 이긴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올림픽이나 대륙별 경기에서 금메달 숫자로 국가 순위를 매기는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다. 유럽의 많은 언론들은 메달 색깔에 관계없이 모든 메달 수를 갖고 순위를 매긴다.

금메달에 각별한 의미를 두는 데는 미국에서 비롯되고 우리가 더 극성스럽게 적용하고 있는 ‘1등 지상주의(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광고카피처럼)’가 큰 몫을 했을 수도 있다.

금메달 지상주의에 따르면 우리는 중국의 199개에 비해 76개를 따서 36%의 국가가 됐다. 일본은 중국의 25%, 대한민국의 63%를 거두었다. 인구 8천만이 넘는 베트남은 금메달 1개를 따서 24위다. 베트남은 은메달 17개 동메달 15개로 모두 33개의 메달을 땄다. 색깔에 관계없이 메달 숫자로만 말한다면 베트남의 순위는 14위가 된다. 서아시아의 작은 나라 바레인은 금메달 5개를 따서 순위를 14위에 올렸지만 그 외엔 동메달 4개로 전체 메달수로는 22위로 밀린다.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나라는 45개국이다. 이 가운데 색깔 불문 단 한 개의 메달도 가져가지 못한 나라가 9개나 된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탱 남작이 말했다. “이기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데 의의가 있다”고. 그렇지만 경기가 시작되면 우리나라가 이기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마음이다.

문제는 이런 마음의 정도다. 공중파 텔레비전의 주요 시간대가 온통 아시안게임 중계 또는 재방송, 특집방송으로 메워지고 서울에서 발간되는 주요 일간지들의 1면에 우리 선수들의 사진이 이틀에 한 번꼴로 등장하는 것이 과연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보도 자세였는지 하는 문제다(주간으로 발행하는 <평택시민신문>도 평택출신 선수들의 활약상을 담은 기사를 1면에 두 번 보도했다). 

2. 전체 메달 개수가 국력을 반영하느냐 하면 꼭 그렇지 않지만, 금메달만으로 비교하는 것보다는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금메달 숫자로 하면 우리가 일본에 비해 엄청 앞선 것 같지만 전체 메달 수에선 232:216으로 큰 차이가 없다. 베트남이 인근 국가들에 비해 금메달 수(1개)가 턱없이 적어 의아하지만(미얀마 2개, 필리핀 3개, 싱가포르 4개, 홍콩 8개, 타일랜드 11개) 전체메달 수(33개)로 보면 동남아의 강국 베트남의 면모가 엿보인다.

사람 수가 많으면 운동을 잘 하는 사람의 수도 그만큼 많을 테니까, 중국의 독주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꼭 그렇게 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왼쪽의 표는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나라별 금 은 동을 합한 메달 수를 인구로 나눈 것이다. 즉 인구 100만 명당 메달을 몇 개나 땄는지 비교한 것이다. (나라별 인구와 개인별 소득은 인터넷 한국어판 위키백과: 2005년 기준. 조금 의심스런 수치도 있다)

이 표를 보면 인구 86만의 소국 카타르는 모두 16개의 메달을 건져 100만 명당 18.6개를 따서 1위에 올라 있다. 그 다음으로 바레인(70만 명 9개), 마카오(50만 명 6개) 등 인구 100만 명 이하의 인구소국이 뒤를 잇는다. 메달 수에서 부동의 1위 중국은 금 은 동을 합해 416개의 메달을 땄지만 13억이 넘는 인구가 따낸 것이어서 100만 명당 메달 수는 0.3개로 45개 참가국 가운데 25위다.

대한민국은 이 분야에서도 상위에 올라 있다. 5000만에 육박하는 인구로 232개의 메달을 건져 100만 명당 4.73개의 메달로 8위에 올랐다. 일본은 100만 명당 메달 수가 1.7개여서 12위다. 스포츠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인도의 경우 많은 인구 덕에 64개의 메달을 땄지만 역시 100만 명당 메달 수는 0.05개로 33위다.

국민소득과 100만 명당 메달 수는 관계가 있을까? 100만 명당 메달 순위 13위까지(일본을  포함해야 얘기가 그럴듯하므로) 나라 가운데 1인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지 않는 나라는  몽골(2175달러, 100만 명당 메달 6.15개) 카자흐스탄(8318달러, 5.27개) 우즈베키스탄(1900달러, 2.9개)이 있다.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으면서 100만 명당 메달 수가 1개를 넘지 못한 나라로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브루나이 등 석유생산국들이 꼽힌다. 그러니까 국민소득과 100만 명당 메달 수는 조금 관계가 있을 성 싶다.

메달 개수와 국민의 스포츠 참여기회 또는 행복감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우리나라 국민은 매일 터지는 금메달 때문에 얼마나 행복했을까? 대한민국 국민은 얼마나 체육활동에 참여하고 스포츠를 즐기고 있을까? 이런 데이터는 스포츠 정책 전문가들의 몫이리라.

1인당 소득과 국민 개개인의 행복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보고에서 확인된 바 있다. 그렇지만 이번 기회에 우리나라가 이 분야에서 아시아 나라들 가운데 어느 수준에 있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시간 때우기에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3. 4년마다 열리는 아시안게임의 다음 개최 도시는 대한민국 인천입니다. 인천 아시안게임이 열렸을 때, 우리는 이번 광저우 대회 때처럼 금메달 수로 일본에 앞서고 종합 2위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그걸 아시안게임의 지상 목표인양 떠들고 또 그걸 지켜보면서 한 달을 지내야 할까요? 아마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선 안 되겠지요.

다음 아시안게임에서 우리는 행사를 여는 주인이고 여러 나라의 손님을 맞아야 하는 처지니까, 그렇게 호들갑스럽게 우리나라 성적에 연연해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나라별 성적 보다는 열심히 연습하고 오래 준비하고 멋지게 승부를 하는 선수들을 지켜보면서 박수를 보낼 만큼 국민도 성숙하고 방송과 신문들이 점잖아 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중국이 영원한 1등일 수밖에 없는 조건은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중국 선수들 못지않게 열심히 싸우는 각국의 선수들을 응원하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스포츠 행사에서 젊은이들이 정정당당하게 겨루며 우정을 쌓는 멋진 장면들을 보면서 아시아의 평화에 대한 기대를 높일 수 있을 것이구요.

그렇게 되려면 금메달 순위를 하루도 빠짐없이 보도하는 방송들이 조금 반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가난하고, 전쟁을 치르는 나라에서 출전한 선수들에 관심을 갖고 격려하고 이들 나라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노동자로, 결혼 이민으로 한국에 온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진정으로 대한민국을 좋아하고, 2세들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계기가 되는 그런 아시안게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중국이 보여준 ‘중국의, 중국을 위한, 중국에 의한’ 아시안게임의 재판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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