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시민신문] 평택 출신 독립운동가 민세 안재홍과 관련한 단행본이 현재 100여 권 넘게 출간돼 있다. 한국 근현대 지성사에서 안재홍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에 걸쳐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줏대 있게 고민하며 국가비전을 설계하고 실천한 민세 안재홍. 그를 다룬 책들을 찾아 그 의미와 핵심대목, 독서 포인트 등을 소개해 민세 정신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 

일본인의 북촌 진출에 맞서 대규모 한옥마을을 건설한 기농 정세권 
서울 북촌 한옥마을은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는 한국의 멋을 느낄 수 있는 장소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공간혁명』의 저자로 세계적인 건축평론가 세라 골드헤이건도 북촌한옥이 가지는 건축적 우수성을 높이 평가한 적이 있다. 아마 많은 한국인들은 북촌한옥이 조선의 수도 한양의 중심에 위치한 곳이라서 수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옥마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북촌한옥은 1930년대 일제의 북촌 진출에 맞선 조선인 부동산디벨로퍼 기농 정세권의 땀과 혜안에서 만들어진 근대 건축공간이다. 이 책은 도시계획, 부동산 연구전문가인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쓴 책이다. 이 책에서 필자는 1920년대 경성의 인구 폭발과 조선의 상징 공간인 북촌으로 진출하는 일본 부동산 세력에 맞서 북촌 한옥마을 조성, 기업형 주택임대사업 추진, 개량 한옥의 브랜드 개발 등으로 민족 건축자본 형성에 기여한 정세권의 삶을 조명했다. 

안재홍과 정세권, 조선적인 것을 지키기 위해 언론과 건설 분야에서 의기투합 
기농은 디벨로퍼에 그치지 않고 안재홍이 창립을 주도한 신간회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또한 조선물산장려회와 조선어학회 활동 공간을 제공한 민족운동가이자 든든자 후원자였다. 민세와 기농은 1910년대 일본 동경유학 시절부터 친구로 귀한 인연을 맺었다. 안재홍의 일관된 민족운동은 정세권과 같은 든든한 동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민세와 기농은 1942년 10월 일제가 조작한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께 수난을 겪는다. 민세에게는 9번째 투옥이었다. 기농도 수난 이후 일제의 탄압으로 재산을 거의 빼앗겼다.

정세권과 함께한 근현대사의 굵직한 인물 가운데, 특히 각별한 관계를 유지한 인물은 민세 안재홍과 고루 이극로다. 안재홍은 1920년대 민족 언론의 사표였으며 이극로는 조선어학회의 실질적 기둥이었다. 특히 안재홍은 정세권과 함께 모든 민족주의 활동을 함께 한 평생의 동지였다. 그들은 조선물산장려회, 양사원, 신간회, 조선어학회 등의 조직에서 함께 활동했으며 그 밖에도 만주 지역 동포를 돕기 위한 만주조난동포문제협의회의 활동과 일본 유학생들의 민족운동 조직 재건 활동도 함께했다(김경민,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121쪽).

수년 전부터 서울시와 대한건설협회 등이 중심이 되어 정세권 재조명 사업에 뜻을 모으고 있다. 늦게나마 매우 반갑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향후 평택 고덕 안재홍역사공원에 민세의 삶에 큰 영향을 준 큰 스승 이순신·정약용·이상재, 독립과 통일의 뜻을 늘 함께 했던 정세권과 정인보, 민태원, 이승복, 박용희 등을 함께 알리는 기념공간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황우갑 본지 시민 전문기자·민세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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