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브 부르기바 거리. 독재자였다는 이유로 흉상철거 등 여러 논란에도 초대 대통령 하비브 브르기바의 인기는 여전하다. 각 도시마다 가장 중심이 되는 곳에 하비브 브루기바 거리가 있다.
하비브 부르기바 거리. 독재자였다는 이유로 흉상철거 등 여러 논란에도 초대 대통령 하비브 브르기바의 인기는 여전하다. 각 도시마다 가장 중심이 되는 곳에 하비브 브루기바 거리가 있다.

2024년 2월 8일 수도 투니스 소재 마누바(Manouba) 대학 내에서 의미 있는 행사를 주재하게 되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 공연 차 들렀던 지인들이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이곳 튀니지를 방문해서 풍성한 전통음악 공연을 선사해 준 덕분이었다. 해금과 대금 가야금과 거문고 등 전통악기 연주와 민요 공연이 열렸던 것인데 이미 K-팝이나 K-드라마에 익숙해 있는 이곳 청년들에게 K-컬처를 관람시키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얼마 전 지인들 중심으로 
한국 전통음악인 공연 마련
튀니지 대학생들
K-컬처 관람하고 
한지공예 체험 함께하며 
한류에 푹 빠져 열광

거문고를 전공한 김지성 단장, 정가의 이소정 선생, 해금 연주자 민경주·황예은 아티스트, 대금 연주자 윤석만 선생, 민요전공자 김주연 아티스트가 한 팀이 된 정음가악회의 전통음악 한마당은 한국문화에 목마른 튀니지 친구들에게 꿀맛 같은 시간을 제공해 주었다. 전통한지공예가 정은희 선생과 함께하던 공예체험 시간 내내 학생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한국의 아이돌로 착각함직한 김세훈 청년의 활약과 무대장치와 소품관리를 도맡은 민진기 사장, 모든 일행의 일거수일투족을 챙기고 거둔 권기모 작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때 공연마당을 찾은 학생들은 200여 명이 족히 넘었다. 듣기로는 마누바 대학뿐만이 아니라 이웃 대학의 학생들도 대거 공연장을 찾았다고 한다. 인산인해의 주인공이 되었던 젊은이들은 낯설기만 한 한국의 전통음악 공연에도 깊은 관심과 수준 높은 반응을 보였다. ‘한국’이라는 이름이 붙은 모든 콘텐츠에 보이는 즐거운 반응이었다.

2월 8일 수도 투니스 소재 마누바(Manouba) 대학에서 개최된 전통음악 한마당은 한국문화에 목마른 튀니지 친구들에게 꿀맛 같은 시간을 제공해 주었다. 공연에서 황예은·민경주 아티스트가 해금을 연주하고 있다.
2월 8일 수도 투니스 소재 마누바(Manouba) 대학에서 개최된 전통음악 한마당은 한국문화에 목마른 튀니지 친구들에게 꿀맛 같은 시간을 제공해 주었다. 공연에서 황예은·민경주 아티스트가 해금을 연주하고 있다.

 

비단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뿐 아니다. 이들은 다양한 국가의 다채로운 문화를 쉽게 받아들이고 즐기는 편이다. 이들의 이러한 문화개방성은 튀니지가 자리한 지리적 위치뿐만이 아니라 역사적인 상황과도 관련이 깊다. 지정학적 요충지에 해당하는 튀니지는 과거 지중해 해상권을 두고 벌였던, 뺏고 빼앗는 전쟁의 역사 가운데 그들에게 끼친 모든 문화에 대하여 긍정적 수용의 태도를 보인다. 98퍼센트에 해당하는 국민이 이슬람 아랍문화권에 속해 있으면서도 로마나 서구 유럽의 문화를 자기화하기도 한다. 특히 자신의 나라를 오래도록 지배했던 프랑스 문화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없다. 그들은 다양한 문화에 많이 노출되어 있으며 다른 문화에 대한 사고를 유연하게 하는 편이다.

 

튀니지 청년이 자신이 만든 한지공예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튀니지 청년이 자신이 만든 한지공예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튀니지인들은 언어능력이 뛰어나다. 제도적으로 16살이 되는, 우리 식의 고등학생이 되면 영어·프랑스어·아랍어를 필수로 배우고 독일어·이탈리아어·스페인어·터키어·중국어 다섯 국가의 언어 가운데서 선택적으로 과목을 들을 수 있다. 한국어의 경우 아직은 튀니지 내 중·고교 현장에서 선택과목의 대상이 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언어능력의 수월성뿐만 아니라 그 관심도 지대하다. 지난해 2023년도 마누바 대학에 개설된 한국어 강의에 백여 명의 학생들이 등록해서 수강하고 시험을 치렀던 것 역시 언어학습의 욕구와 그 능력의 정도를 헤아려 볼 수 있다. 대학을 진학할 때 최소 5개국 언어에 능통하면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교육열이 높은 튀니지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언어능력 함양을 위한 투자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슬람 문화권이지만 
서구나 동양 문화 수용성 높고
교육열도 높은 튀니지

튀니지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하비브 부르기바(Habib Bourguiba, 1903~2000)는 1956년 독립 이후 왕정을 뒤엎고 본격적인 체제 정비와 개혁 정치에 돌입하였는데, 그의 통치 기간에 가장 주력한 부분이 교육이었다. 인접 산유국인 알제리(석유매장량 118억 배럴)나 리비아(484억 배럴)에 비해 튀니지의 석유매장량은 턱없이 부족하다(4억 배럴). 그런 이유로 일찍부터 인재양성을 위한 투자에 국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이는 천연자원이 부족한 대한민국이 일찍이 교육 투자에 전념한 점과 일면 유사한 측면이 있다.

풍부한 자원으로 국가 경영에 별 어려움이 없는 알제리의 경우 그 풍부함이 사실상 국가를 망쳤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지나친 석유 의존도가 오히려 다른 산업을 육성시키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부족한 지하자원을 탓하지 않고 인적 자원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은 튀니지와 크게 다른 점이다. 인재개발과 교육에의 투자를 아끼지 않은 덕분에 튀니지는 시민의식이 한껏 고양되고 민주의식이 확장되었다. ‘아랍의 봄’의 선봉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에 기인한다. 30년 장기집권의 독재자인 하비브에 대한 평가가 긍정과 부정으로 갈리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그는 여성의 인권을 신장시키면서 교육에 있어 남녀의 차별이 없도록 하였다. 이슬람국가에 만연한 조혼의 관습과 일부다처제를 폐지하고 이혼에 대한 여성의 권리를 강화하는 등 여성의 인권신장에 관심을 기울였다. 튀니지 시내에서는 머리카락을 가려 남성들의 시선이 예배 이외에 다른 쪽으로 가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의 히잡(Hijab, 이슬람 여성은 누구나 가족 이외의 어떤 남자에게도 머리카락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엄격한 규율이 있다)을 쓰지 않고 활보하는 많은 여성을 목격할 수 있다. 대표적인 여권신장의 상징으로 꼽을 수 있다.

 

한국어 클럽 활동을 열심히 할뿐 아니라 조교 이상으로 도움을 주는 친구들. 왼쪽부터 화트마, 프리엘, 와히드
한국어 클럽 활동을 열심히 할뿐 아니라 조교 이상으로 도움을 주는 친구들. 왼쪽부터 화트마, 프리엘, 와히드

 

튀니지에서는 몇 사립대를 제외한 국립대학을 중심으로 무상 교육이 제공되고 있다. 기숙사비와 교재비를 제외하면 최소의 비용으로 능력별 혹은 기호별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다. 국가의 재정이 부족하니 제반의 시설은 낙후되긴 했어도 실력 있는 교수진에 의한 우량의 수업을 받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문제는 이렇게 키워진 인재들이 마땅히 일할 만한 일터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코로나 19와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최근의 이·팔 전쟁 이후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경제위기가 문제적이기는 하다. 무엇보다도 2011년 자스민 혁명 이후 일본이나 중국 그리고 미국으로부터 받은 차관이 적절하게 투자가 되지 않은 탓에 아직도 국가채무 청산에 허덕이고 있는 형편이라고 한다. 그러니 현실적으로 이러한 인재들을 수용하기에 어려움이 있음이 분명하다.

튀니지 내의 실업률은 2023년 4/4분기 추산 16.4%로 집계되었다. 2024년 한국의 실업률인 3.7%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편이며 잠정 실업률은 그 이상을 더 웃돌고 있다. 국가 전반적으로 인력난과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적당한 일자리가 없는 젊은이들이 한낮의 커피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심각성을 짐작해볼 만하다. 높은 교육열과 학습열기에 의해 생산된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국가가 제대로 마련해 주지 못하는 형편에 있다.

반면 튀니지 내의 우량한 인재들에 대한 주변국의 호감도는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지중해를 사이에 둔 유럽국가나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캐나다의 퀘벡(Quebec) 그리고 인근 걸프국가(Gulf Country)에서는 튀니지에서 교육받은 의사나 간호사 그리고 공학자들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은 편이다.

우수한 의료기술을 갖춘 인력들이 민간병원을 중심으로 점차 국내 거점을 확보해 가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다. 이들은 첨단 의료시설들로 경쟁력을 갖추고 고도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튀니지를 찾는 의료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다만 일부 제한적 분야의 인력풀에만 해당한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무상교육으로 육성한 
유능한 젊은 인재들 
수용할 일자리 부족해
외국으로 인재 유출 걱정

마누바대학 내에서 한국어문화클럽을 이끄는 훼리엘(Feriel)과 화트마(Fatma)는 각각 사업가로 승무원으로 세계 곳곳을 누비는 희망을 품고 있다. 영어전공자인 그들은 복수 전공인 프랑스어 이외에도 한국어 능력으로 차별화한, 경쟁력을 갖춘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다고 한다. 그들이 가진 열망과 추진력 그리고 그와 같은 적극적 자세라면 이루지 못할 꿈이 아니다.

한울이라고 한글 이름을 지어준 와히드(Wahid)의 미래도 궁금하다. 그 역시 영어를 전공한 수재로서 모든 과목에서 우월한 결과를 보여주는 총명한 청년이다. 한국어 수업을 듣기 이전 일본어를 스스로 공부했다고 하는 한울은 아직 구체적 장래희망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어둠을 헤치며 미래로 나아가고 있는 그의 앞길에는 언제나 밝은 빛이 도래할 것이라고 믿는다.

학업을 마친 튀니지 청년들은 튀니지가 아니라 해외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능력 있는 튀니지 젊은이들에게 해외에서의 선호도가 높아져 인력이 수출되거나 외화를 버는 등,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기에 좋은 기회가 만들어지는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이들이 갖추고 있는 전문 역량이 국가로 다시 환원되거나 회귀될 수 없는 현실적 구조라는 것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무상교육으로 키워진 젊은이들이 자국에 남아 국가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고 영속적인 해외 살이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을 보호하고 제도를 관리하는 국가라는 기관, 정부라는 조직체의 기능과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되는 부분이다.

 

 

유정이, 시인·문학박사
유정이, 시인·문학박사

 

유정이 시인은 평택시 독서운동인 ‘한 책 하나되는 평택’ 도서선정위원장을 지냈으며 <선인장 꽃기린>등 다수의 시집을 냈다. 아프리카 튀니지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유 시인의 튀니지 여행기를 한 달에 한 번 싣는다.

 

저작권자 © 평택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