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우대식 시인박석수기념사업회장
우대식 시인
박석수기념사업회장

갑진년(甲辰年)이 밝았다.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를 조화로 한 육십갑자는 하늘과 땅의 기운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천간에 해당하는 갑(甲)과 을(乙)이 푸른색을 상징하고 지간에 해당하는 진(辰)이 용이므로 올해는 청룡의 해인 것이다. 육십갑자를 말할 때마다 문득 떠오르는 소설이 있다. 월북한 작가인 이태준의 단편소설 「돌다리」가 그것이다. 서울에서 의사를 하는 창섭은 병원을 확장하고 부모님도 좀 더 생활환경이 나은 서울로 모시고자 하는 명분으로 땅을 팔자고 그의 아버지께 제안한다. 그러나 평생 땅을 일구는 것을 업으로 살아온 그의 아버지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자고로 하눌 하눌 허나 하눌의 덕이 땅을 통허지 않군 사람헌테 미치는 줄 아니? 땅을 파는 건 그게 하눌을 파나 다름없는 거다”. 하늘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공간이 바로 땅이라는 말이다. 범박한 농부가 진심으로 땅을 대하고 살았을 때 말할 수 있는 지혜를 엿보게 하는 장면이다. 어디선가 내려다보고 있을 하늘은 두려워하면서도 그 하늘의 섭리가 실현되는 땅 즉 구체적인 공동체의 현실에 대해서는 무시하기 일쑤인 현실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장면이다. 일상을 살면서 하늘이 내려다본다는 말에는 일말의 두려움은 가지고 있으면서 땅이 올려다보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하늘의 형상은 땅에 있는 법이다. 범박한 일상을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이렇듯 명리학의 복잡한 원리를 단숨에 뛰어넘는 지혜가 숨어 있다. 이러한 일상적인 삶의 총화를 문화라 말할 터이다.    

 

우리가 발 디딘 곳에서

작은 일부터 이루어 가는 것이

끝내 용의 기상으로 살아날 터

대학교 1학년 문학적 치기로 술을 마시고 책을 읽던 시절에 천의경이라는 선배를 만나 의기투합하여 문학을 핑계로 술을 마시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그의 부친은 연전에 작고하신 소설가 천승세 선생님이시다. 해가 바뀌는 정월 언저리 즈음 술에 취해 신월동 그의 집에서 잠을 자다 너무 죄송하여 아침 일찍 조용히 신발을 가슴에 품고 도주하려던 참이었다. 막 문을 열려던 순간 천승세 선생님의 단전에서 울려나오는 쩌렁한 음성이 들려왔다. 방으로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무릎을 꿇고 혼미한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애쓰며 가시방석 같은 자리에 앉아 들은 이야기는 평생을 가도 잊기지 않는다. 예의 동굴 속에서 나오는 듯한 음성으로 타이르듯 알려주신 내용은 다음과 같다. 친구의 집을 방문하면 아버님을 뵙고 인사드리고 아버님이 농부이시거든 농사일을 묻고 어부이시거든 고기 잡는 일을 묻는 것이 도리인데 하물며 문학을 공부한다는 놈들이 친구 아버지가 소설가임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묻지 않고 내빼는 것은 잘못된 태도라는 것이 그 요지였다. 돌이켜 생각하니 그 이야기의 핵심도 일상의 지혜를 배우라는 가르침이었다. 평생 하나의 일을 해온 분들에게는 공부해서 얻기 어려운 지혜가 있다는 사실을 나이를 먹어 가며 절실히 깨닫게 된다.

 

일상을 살아가는 용기에서

용의 푸른 꿈이

꿈틀대는 한 해 되기를

앞에 말했듯이 갑진년은 용의 해이다. 용은 십이간지 가운데 유일하게 현존하지 않는 상상의 동물이다. 하늘로 솟아오르는 용의 형상이나 또한 현실적으로는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용은 열두 동물 가운데 하늘에 가장 가까운 동물이다. 하늘의 이치를 땅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 해답은 언제나 우리의 주변과 일상에 펼쳐져 있다. 먼 곳에서 용의 상징을 찾기보다는 바로 여기 우리가 발 디딘 곳에서 작은 일부터 이루어 가는 것이 끝내 용의 기상으로 살아날 터이다. 일상의 살아가는 용기에서 보이지 않는 용의 푸른 꿈이 꿈틀대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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