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위아 비정규직 대법원 승소가 정규직 전환 물꼬 되길

 

자동차 부품사로선 최초로 
불법파견 소송에서 승리해

지역사회 어려운 일 생기면
시민에게 받은 응원 갚을 것

김영일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장
김영일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장

현대위아를 상대로 불법파견 소송을 진행 중인 금속노조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에 낭보가 날아들었다. 지난 7월 8일 대법원이 현대위아가 사내하청 비정규직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날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노태악 대법관)는 “근로자들이 현대위아의 필수적이고 상시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현대위아가 계획한 전체 엔진 생산 일정 등에 연동해 작업이 진행되지 않을 수 없으므로 현대위아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볼 수 있다”며 현대위아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7년여의 소송과 천막농성 412일 끝에 승리한 김영일 지회장을 만나 소회를 들어봤다.

 

천막농성 412일 끝에 승리

 

“1심에서 3심까지 7년째 소송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소송 기간 내내 사측으로부터 많은 탄압을 받았는데 이 모든 것을 뚫고 이겼다는 점에서 홀가분하고 법적으로 정규직 직위를 얻어 후련합니다.”

평택지회 사무실에서 만난 김영일 지부장은 대법원 판결을 떠올리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노조에서 준비를 많이 했지만 법적 공방 속에서 이길지 질지 확실히 알 수 없어 부담감이 컸다”며 “혹시라도 대법원에서 원심이 뒤집힐 경우 오랜 시간 투쟁해온 조합원들 모두 막막한 상황에 놓이게 되기 때문에 선고기일까지 하루하루가 1년 같이 느껴졌다”고 돌이켰다.

지난 8년은 지난한 시간이었다. 비정규직으로 차별당하고 착취당하는 상황 속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설립한 노조였으나 숱한 탄압에 부딪혔다. 2013년 노조를 만들자마자 사측은 기업노조를 설립했다. 기업노조는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노조원을 늘려 교섭권을 뺏어가기도 했다. 노조를 흔들고 고용불안을 조장하기 위해 업체 폐업이나 노동자와 노동자를 이간질하기 위한 공작도 몇 번이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노조가 쪼그라들기도 했다. 고생하느니 차라리 이직하겠다며 회사를 관두는 사람도 나왔다.

소송을 시작했을 때는 울산으로 강제 발령을 받았다. 소송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1인당 3000만원을 지급하고 평택공장으로 돌려보내 주겠다며 회유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천막농성을 택했고 412일 끝에 뜻깊은 승리를 얻었다. 자동차 부품사로서는 최초로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소송에서 이긴 것이다.

그는 “원청인 현대위아는 창원, 광주, 안산, 서산, 평택에 5개의 공장이 있으며 2000여 명의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는데 대부분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며 “현대위아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불법파견이 만연해 있는 상황인데 이번 판결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이어지는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왼쪽부터 금속노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 강영훈 총무, 이성섭 사무장, 구현수 수석부지회장, 김영일 지회장.
왼쪽부터 금속노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 강영훈 총무, 이성섭 사무장, 구현수 수석부지회장, 김영일 지회장.

정규직과의 차별로 노조 설립

 

“노조를 설립하고 제일 먼저 주장한 것이 장갑을 지급해달라는 요구였습니다. 주로 엔진을 다루는 작업을 하다 보니 이물질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일반장갑이 아닌 특수코팅한 장갑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작업이 작업이다 보니 장갑이 쉽게 찢어집니다.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일주일에 장갑 1매를 주지만 정규직에겐 3매를 지급합니다. 그러다 보니 장갑이 찢어지면 휴지통을 뒤져 정규직이 쓰고 버린 장갑을 꺼내 쓰기도 했습니다.”

처음 노조를 결성한 것은 불법파견 소송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계기는 정규직과의 차별이었다. 당시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원청인 현대위아로부터 작업 지시를 받았을뿐더러 정규직 공정에도 투입됐다. 그러나 급여는 물론 모든 대우에서 정규직과 다른 차별을 받아야 했다.

김 지회장은 “현대위아는 원청 직원과 사내하청 직원의 공정이 분리돼 있다고 주장해왔다”며 “그러나 정규직이 근무하는 가공라인에서도 불량 유무를 파악하기 위한 검사 같은 힘든 작업은 전부 비정규직 노동자의 몫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정은 톱니바퀴처럼 쉼 없이 돌아가지만 정규직 노동자들은 자동화 설비 사이에서 휴대전화를 들여다 보며 여유롭게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왜 우리가 차별을 받아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었다”며 “때론 식당에서 사내하청이 왜 정규직보다 먼저 밥을 먹냐며 싸움이 일어날 때도 있었다”고 술회했다.

근태 관리도 당했다. 작업 시작 시간과 종료 시간, 쉬는 시간을 준수하라는 사소한 공문조차 원청으로부터 직접 하달 받았다. 경고 조치도 원청이 내렸다. “점심시간이 10여 분 남아 밥을 먹고 장기를 두고 있었는데 원청 직원이 쫓아와 빨리 현장으로 돌아가 일을 하라고 독촉하는 등 휴식시간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떠올렸다.

그는 “이런 상황 속에서 노조가 만들어졌다”며 “당시 노조가 탄압받는 모습을 보면서 비정규직으로 언젠가 나도 저렇게 탄압당할 수 있고 일방적으로 계약해지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노조에 가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보낸 관심 보답할 것

 

“평택지회는 대법원판결로 이미 직접 고용이 된 상태라고 봅니다. 그러나 아직 함께 투쟁해온 다른 조합원들의 판결이 남아 있습니다. 남은 이들의 소송이 끝날 때까지 함께 투쟁하고 다시 공장에서 모두와 같이 일하고 싶습니다.”

대법원에서 평택지회가 최종 승소했지만 아직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번 소송에서 승소한 것은 64명. 2차 소송자 33명이 2심을 진행 중이고 3차 소송자 15명은 1심 변론을 시작할 단계다.

그는 “현재 대법원에서 판례를 만들었기 때문에 남은 이들의 소송도 신속하게 판결할 것으로 본다”면서도 “아직까지도 출근을 막고 있는 상황이며 앞으로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탄압해올지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이번 판결을 둘러싼 편견과의 싸움도 남아 있다. 이번 판결로 기업들이 부담을 느껴 고용시장을 악화시킬 것이란 주장과 직접고용을 피하기 위해 자회사를 내세운 채용이 만연해지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는 “사내하청에서 자회사로 간판만 바꿔 달았다면 꼼수에 불과하다”며 “자본가들이 점점 자신의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현실을 바꿔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힘든 와중에서도 시민들의 응원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며 감사를 전했다. 많은 시민이 평택지회의 사정을 함께 안타까워 하고 격려해줬다는 것이다. 현수막을 보고 공감해주고 선전전을 벌일 때 찾아와 음료수를 건네는 시민도 있었다. 아들 같은 사람들이 고생한다면 며칠 동안 음료수를 사 들고 노조 사무실을 방문한 시민도 있었다. 천막농성장 앞을 지날 때 일부러 속도를 줄인 트레일러 기사들도 많았다.

그는 “평택지회가 받은 만큼 변화가 필요한 사회 곳곳에 사회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투쟁을 이어나가겠다”며 “지역사회에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시민들에게 받은 응원을 갚는단 생각으로 함께 힘을 합쳐 나가겠다. 지금까지 보여준 관심 만큼 앞으로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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