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경 시민기자

[평택시민신문] 얼마 전, ‘리틀 포레스트’ 영화를 보았다. 도시 생활의 실패를 안고 떠밀리듯 고향으로 내려온 청년 혜원이 사계절을 나면서 힘듦을 이겨내는 이야기다. 혜원 엄마가 혜원을 자연에서 키운 이유는 혜원이 고향에서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기 바랐기 때문이다. “혜원이가 힘들 때마나 이곳의 흙냄새와 바람과 햇빛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걸 엄마는 믿어” 라는 것처럼.

고향에서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다는 것, 힘들 때마나 내가 자란 곳의 흙냄새와 바람과 햇빛을 기억한다는 것, 각박한 삶 속에서 조금 쉬어가겠다는 마음을 먹고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 지금 청년세대들은 이런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기나 할까.

2006년 5월 4일 어린이 날을 하루 앞둔 날, 대추리 마을에 경찰 1만2000여명과 용역 700명이 모였다. 그들은 주민과 시민들이 모여 있던 대추 초등학교를 강제진압 하였고 그 후 마을을 빼앗았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을 위한 국책사업 때문이다. 이후 주민들은 허망하게 대추리를 떠나야 했다.

‘나고 자란 마을, 구석구석 삶이 어린 동네에 제대로 인사조차 못하고 '도둑' 이사를 나왔다. 세간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협의한 날짜 안에 집을 비우지 못하면, 혹여 꼬투리를 잡아 합의를 불이행할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죽어서도 다시 밟지 못할 고향을, 삶을 지탱해준 터전을, 그렇게 떠나왔다.’(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 구술 내용중)

12년 전, 평택 미군기지 이전 사업으로 대추리 어르신들은 고향을 잃었다. 어르신들에게 고향은 농사를 짓던 일터이며 가족들이 살아가는 삶터이고 삶을 지탱해주는 단단한 뿌리였다. 고향에서 자기 힘으로 농사짓고 그 힘으로 자립하는 것이 대추리 공동체의 힘이었고 어르신들의 뿌리였다. 그 뿌리를 허망하게 잃어버린 것이다. 그것도 어느날 갑자기, 강제로 말이다.

"대추리에서는 다 쓰러져가는 집이어도 들어가면 온화하고 포근하고 그랬어. 그런데 여기 와서 누워있으면. 이게 내 집인가…. 진짜 이게 내 집인가 그런 생각이 들어. 여기 와서 살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거여. 정말 이렇게 끝까지 이렇게 살다 죽나."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 구술 내용중)

이주단지에서 살고 있는 어르신들의 집은 깔끔하고 거실도 넓고 깨끗하다. 젊은 우리가 보기엔 쾌적해 보이는 그곳에서 대추리 어르신들은 무기력하게 지내셨구나. 농사짓던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지 10년이 지났는데, 어르신들에게 이주단지는 아직 낯선 곳이었다.

경찰의 강제진압 후 노와리 이주단지에서 살겠다고 대추리 어르신들은 정부와 합의했다. 2007년 2월 정부대표와 주민대표가 합의할 때 어르신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요구사항은 '대추리 명칭 사용'이었다. 강제로 쫓아내면서 행정명칭을 '대추리'로 쓰게 해주겠다고 정부는 철석같이 약속했다. ‘대추리’ 명칭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두 곳의 이주단지 중에 시세가 낮지만 밭일을 할 수 있는 노와리를 선택한 것도 모두 고향, 공동체를 유지하고 싶었던 대추리 어르신들의 바람이 들어있다. 그러나 10년이 지나도록 정부와 평택시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노와리 전체 주민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며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대추리 어르신들은 결국 2017년에 행정소송을 시작했다. 그리고 2018년 5월 3일, 청와대 앞에서 ‘정부는 약속을 이행하라’는 제목을 걸고 기자회견을 가졌다.

‘리틀 포레스트’의 배경은 자연이다. 생명이 배경이다. 겨울부터 다시 겨울이 오기까지 계절은 성실하게 자라고 변한다. 벼 사이에 자란 잡초마저 성실하다. 자연이 성실하게 변하니 사람의 삶도 성실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자연을 닮아가고 그 안에서 조화롭다. 대추리 고향 땅은 어르신들에게 삶의 배경이자 생명이었다. 숨쉬는 관계이며 살아가는 힘이었다. 고향을 떠나온 지 벌써 12년. 계절이 성실하게 지나가듯 대추리 어르신들의 시간도 성실하게 흘러간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삶들이다. 13번째 겨울에는 대추리 어르신들의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어르신들이 생을 마감하기 전에 마을 이름이라도 되찾을 수 있을까. 황새울 들판(대추리 옛마을의 또 다른 명칭)을 떠날 때 흘렸던 눈물을 어르신들이 더 이상 흘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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