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리 주민 청와대 앞 기자회견

대추리 주민들이 청와대앞에서 정부의 약속이행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마을주민 27명, 청와대서 합의 이행 촉구

[평택시민신문]  2006년 5월 4일, 대추리 행정대집행 이후 대추리를 떠난 주민들이 노와이주단지에 정착한 지 어느덧 12년이 흘렀다. 하지만 대추리의 아픔은 아직 가시지 않은 듯 보인다. 지난 3일, 대추리 주민 27명은 기자회견을 열어 행정대집행이 있던 그 잔인한 달에 또다시 정부와 대면하고 나섰다. 지난 2007년 2월 대추리를 떠나기로 하고 정부와 주민간 합의한 약속을 지키라는 이유에서다.

 

이행되지 않은 약속

강미 대추리 마을 사무장은 “당시 마을을 떠나오며 유일하게 소망했던 것은 대추리라는 공동체를 지키는 것”이었다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저희가 강하게 요구하지 않으면 약속이 지켜지지 않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왔다”며 운을 뗐다. 그러면서 “딱 두 가지 문제다. 합의할 당시에 이주할 지역을 대추리라는 이름으로 해주겠다고 한 것과 생계대책 일환으로 상업용지 8평을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이 열린 청와대 앞 작은 광장에는 대추리 마을주민 27명이 참석했다. 연세가 많아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다. 사무장에 이어 발언을 하려던 한 대추리 주민은 마이크를 잡고 옛 이야기를 꺼내자 감정이 복받쳐 흐느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정부가 우리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겠다는 걸 믿고 협상을 했다. 협상을 끝낸 뒤에는 자기 집을 돌아볼 시간도 없이 서둘러 짐을 빼서 나가야했다”며 그 당시 서러움을 회상했다. 또 다른 주민은 정부의 태도를 질타했다. 그는 “시민이 세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독촉장 보내고 연체료 붙여 받아가면서 정부는 우리에게 서명까지 해가며 한 약속을 왜 지키지 않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기 거주 주민 동의’…합의서 문구에 발목

2004년 한미 양국이 용산기지 및 미2사단 기지 평택 이전에 합의한 이후 과거 140여 세대였던 대추리 주민들은 개별적으로 이사를 해서 흩어졌고, 마지막까지 남은 최종 44가구가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현재 노와이주단지로 집단 이주했다. 그 당시 주민들은 이주하기 전 체결한 정부-주민간의 합의서에 이주단지의 행정명칭을 대추리로 변경하기로 명시했지만 그 약속은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평택시가 합의서에 적힌 “해당지역 기(旣) 거주 주민의 동의 등 행정구역 변경에 관한 규정에 따른 절차와 요건 구비 시 승인한다”는 요건을 들어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택시는 ‘기 거주 주민’을 노와리 288세대로 해석하고 있고, 대추리 주민 측에서는 합의 당시 그 문구가 자신들을 지칭하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주장한다. 노와이주단지는 국립충남축산과학원의 초지였고 노와리 주민 중 그곳에 사는 사람도 없고 토지나 부동산을 소유한 주민도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기 거주 주민의 동의는 행정절차를 서술한 것에 불과하며 평택시가 행정적으로 조례 개정 등을 실시해 조치를 취할 일이라며 맞서고 있다.

기자회견하는 대추리 주민들

주민 동의 필요 없어…조례로 가능

실제로 행정명칭의 부여·변경 등은 지자체의 조례로 정해 공포하면 되기 때문에 절차상 주민의 동의가 필요 없다. 평택시는 미군기지 확장지가 된 곳의 ‘대추리’ 행정명을 없애는 조례는 개정했지만, 노와이주단지의 행정명을 대추리로 하는 조례 개정은 노와리 주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주민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추리 주민들은 2007년부터 평택시의 협조를 통해 조례를 개정하려고 노력했고 그 일환으로 2012년 노와리 주민의견 조사를 실시했으나 찬성 41표 반대 137표로 무산된 바 있다. 지난해에는 평택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고 지금까지 총 3차례 공판이 열린 상태다.

 

상업용지 8평 공급 책임져야

대추리 주민들의 또 다른 요구사항은 정부-주민간 합의서 2항에 생계유지대책으로 “평택지원특별법상 상업용지는 8평을 공급한다”고 합의한 내용을 지키라는 것이다. 마을을 떠나온 뒤부터 농업을 포기당한 대추리 주민들은 현재 일정한 수입이 없다. 2015년까지 약 10년간 지속돼온 이주민 공공근로사업도 끊긴 상태다. 대추리 주민들 중에서는 현재 단 두 명만 제외하고는 생계를 이을 만한 면적의 농지를 갖고 있는 이가 없으며, 정부가 지난 2004년 법률로 마련한 이주대책인 상업용지 공급 약속을 믿고 지금껏 기다려왔다. 당시 안내에 따르면 국제화계획지구 내 조성될 상업용지는 부지상태로 토지공사가 책정한 감정가격에 8평까지 구입할 수 있으며, 구입한 부지 위에 용적률 등을 적용해 상가를 신축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밝힌 조합구성에 따르면 토지공급대상자는 주한미군기지 이전사업 598명과 고덕국제화계획지구 내 생활대책대상자로 선정된 주민 2000명으로, 이들에게 각각 8평씩 공급할 경우 현재 약 8807평인 공급상업용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진다. 게다가 LH는 이미 2016~2017년까지 두 차례 상업용지를 일반경쟁입찰 방식으로 분양을 실시했다. 고덕국제화계획지구는 미군기지 이전사업으로 조성되는 사업이기 때문에 미군기지 이전사업 피해 주민들의 생활 대책을 가장 우선적으로 마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아 주민들 사이의 갈등만 조장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 인터뷰 _ 신종원 대추리 이장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 없는 약속

각종 비난 두려워…하지만 가야할 길

행정명칭 상 대추리라는 지역은 없기 때문에 신종원 대추리 이장은 사실 이장이 아니다. 하지만 대외적으로나 마을주민들 사이에서 이장이라 불리고 있다. 그것이 현재까지도 대추리가 존재한다는 증거지만 누구 하나 인정하고 약속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왜 그렇게 지명에 집착하는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추리 주민들은 일제시대엔 비행장 활주로가 들어서 옆으로 이주하고, 6·25 종전 이후엔 미군기지 만든다고 또 그 주변으로 이주했다. 거기서 맨손으로 개간을 시작했고 갯벌이 옥토로 바뀌는 과정을 목격했다. 그러다가 노무현 정부에서 미군기지를 확장한다며 아예 내쫓겼다. 이것이 대추리 주민들의 아픔이다. 행정명칭 변경 요구는 그 모두를 다 포기하고 나오는 과정까지를 대추리라는 상징적 이름으로 묶고자 하는 시도다.

 

대추리 주민들의 기사에 주로 부정적 댓글이 달린다.

그 사람들이 내용을 알고 쓰겠나? 모르면서 남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예전 투쟁할 당시에도 땅값 많이 받으려고 데모한다는 등 갖은 막말에 시달렸다. 기자회견은 각오하고 했다. 없는 거 해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추가적인 요구도 없다. 정부와 주민간의 약속을 이행하라는 것뿐이다. 우리 같은 사례는 처음이다. 대추리가 안 하면 이런 일이 또 생기면 똑같은 일이 다시 벌어질 것이다. 우리가 민주주의 성장의 과도기에 놓였다는 사명의식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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