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삼 비전고 수석교사

임종삼 비전고 수석교사

[평택시민신문] ‘모델을 처음 봤을 때 괴짜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시험지를 풀게 하는 거 보니까 약간 비정상 같고 독특하신 것 같다. 미술 잘하는 사람 중에는 이상하고 창의적인 사람이 많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나 보다.’ 4반 여름이가 논술형 답안으로 적어낸 내용이다. 미술 첫 시간부터 나는 비정상(?) 교사가 되었다. 여름이가 답안으로 쓴 논술형 문항의 발문은 다음과 같다.

 

【논술형1】그림은 평택시 비전2동에 사는 아줌마가 재미삼아 그린 ‘임씨의 얼굴’이다. 그림 속 실제 모델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조건>에 맞게 쓰시오. [20점] <조건> 1. 모델의 첫 인상을 제시할 것, 2. 실제 모델이 들었을 때 기분 좋은 내용을 제시할 것, 3. 답안의 내용이 창의적이고 재미가 있을 것. 문항의 자료로 제시된 그림은 아내가 내 얼굴을 그린 그림이다.

해마다 3월이면 모든 교사들은 교실에서 새로운 아이들을 만난다. 입학식이 끝나고 교실에 들어서면 첫 시간이 시작된다. 아이들을 어떻게 맞을까? 내 소개는 어떻게 할까? 첫 미술 시간을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지난 25년간 3월 첫 수업 시간을 빌어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나를 거쳐간 수많은 아이들은 모르고 있었겠지만 교사인 나는 학생들을 상대로 많은 실험을 해왔다. 퀴즈를 내고 노래도 불러보고 퍼포먼스도 해봤다. 무모한 도전으로 민망하고 썰렁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었다. 많은 도전 끝에 찾아낸 것이 시험이다. ‘시험으로 시작하는 첫 미술수업’은 3년 전 그렇게 시작되었다.

첫 시간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교사인 나는 어떠한 인사말이나 멘트도 없이 조용히 칠판 중앙에 분필로 ‘임종( )’ 이라고 쓴다. 그리고 표정에 별다른 변화를 주지 않고 수능시험 감독관처럼 시험 보는 요령을 설명한다.

“선생님 이름입니다. ( )안에 들어갈 끝 글자를 맞춰보세요. 지금 나줘 주는 시험지 1번 문제입니다. 지금부터 시험을 보겠습니다. 제시된 11문제 모두 답을 혼자 고민하지 말고 옆 친구와 함께 찾아보세요. 앞에 있는 휴대폰을 가져가서 검색하거나 외부와 통화를 해도 됩니다. 답을 찾을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행동으로 옮기세요. 자리를 이동해도 됩니다. 교실 밖으로 나가도 됩니다. 그러나 지금 앞에 서 있는 선생님에게만은 질문을 하지 마세요. 여러분들이 알아서 지혜를 모으고 협력을 해서 답을 찾아보세요. 100점을 맞은 사람은 다음 시간에 달달한 간식과 플러스 알파 상품이 제공됩니다. 자! 지금부터 문제를 풀어보세요. 끝나는 종이 울리면 시험지를 걷겠습니다.”

제한된 지면으로 교실 상황과 시험 문제를 모두 소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앞서 소개한 주관식 논술형 문항 외에 답을 고르는 객관식 문항 2문제를 소개한다. ‘3. 오늘 만난 미술선생님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5점] ① 인정이 없고 까칠한 성격에 작은 일에도 화를 자주 낸다. ② 매우 소심한 성격으로 수업 중 학생들이 떠들면 울기도 한다. ③ 노래와 춤을 좋아하며 신이나면 혼자서 노래방을 간다. ④ TV보다 라디오, 영화보다 다큐, 빵보다 밥을 좋아한다. ⑤ 미술 작품 감상을 즐겨하고 혼자서 국외 여행을 자주 한다.’ 이 문제의 답을 찾으려고 아이들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참지 못하고 질문을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나는 어떠한 질문에도 답을 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처음 만난 교사에 대한 첫인상과 자신의 느낌으로 답을 찾아야 한다.

‘8. 미술가의 작품 창작이나 전시 행위로 볼 수 없는 것은? [5점] ① 사과를 다 먹고 남겨진 꼭지를 전시했다. ② 남자 소변기를 사다가 미술관 벽면에 걸었다. ③ 자신의 대변을 캔에 담아 밀봉하여 전시했다. ④ 물고기를 비닐봉지에 담아 썩힌 후 전시했다. ⑤ 다른 사람이 그린 그림에 자기 싸인을 해서 전시했다.’ 이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아이들은 다양한 시도를 했다. 미술 교과서를 들춰보고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연결하기도 했다. 교실문을 열고 나가 교무실에서 쉬고 있는 선생님에게 묻는가 하면, 교장실 문을 열고 들어간 학생들도 있었다. 유명 미술대학 과사무실에 전화를 걸기도 했고 낮잠 자는 엄마를 깨워 화상 전화를 시도한 학생도 있었다. 114나 다산콜센터, 119에 전화를 걸어 답을 물어 보거나 국민신문고에 전화를 걸어 교사를 당황하게 한 학생도 있었다.

(다음 주에 계속)

※외부필자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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