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복의 세상만사

고기복

이주인권 저널리스트

지난 3일 언론을 통해 드러난 신안군 섬마을 집단 성폭행 사건으로 신안을 비롯한 호남이 온 국민의 질타를 받고 있다. 이 사건은 학부모를 포함한 마을 주민 세 명이 여교사에게 억지로 술을 먹이고 초등학교 관사로 데려가 서로가 시간을 두고 성폭행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일부 인터넷 게시판과 댓글의 지역비하가 도를 넘고 있다. 특히, 신안군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지역 치안행정과 호남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글도 상당수 차지하고 있어 이번 사건이 피해자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지역주민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수치가 되고 말았다. 7일에는 신안군청 홈페이지가 접속자 폭주로 마비되기도 했다.

현재 성폭행 가해자들 중 일부는 DNA 증거가 명백한데도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런 가운데 섬마을 학교에서 근무 중인 한 교사가 섬 학교 근무의 어려움으로 ‘술 권하는 사회’를 지적하고 나섰다. “고립된 섬에서 마을의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 주민들이 권하는 술을 거부하기 쉽지 않다. ‘싸가지 없다’고 찍히면 교사로서 섬에서 생활하기도 힘들어진다. 없는 얘기로 만든 이상한 소문에 고생하기도 한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해당 교사는 “호의를 베푸는데 거절하면 섬 특성상 학부모·지역민과의 유대와 친화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불러낸 사람들이 학교와 관련된 사람들이면 술자리든, 식사자리든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고 전했다.

관사에 홀로 근무하는 여교사에게 ‘술 권하는 사회’에서 ‘관사’는 일종의 전시공간이다. 지역주민들은 관사에 근무하는 여교사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자기들이 주최한 자리에 응하지 않으면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소문으로 상대방을 괴롭혔다니 하는 말이다. ‘전시공간’에 갇힌 여교사는 마치 포르노 속 배우처럼 ‘시선’을 떼는 법 없는 남성들에게 전시를 강제 당했던 셈이다. 결국 이 사건은 가해자들이 여교사의 육체를 착취할 대상으로만 보고 짐승처럼 달려든 인식의 문제이며, 섬이라는 지리적 특수성과 폐쇄성이 그들을 더욱 대담하게 만든 사건이다. 이번 사건을 개인의 일탈로만 몰기에는 지역사회가 감당해야 할 상처가 너무 크다. 그런 면에서 이번 사건 처리에 온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처리 결과를 살펴야 할 것이다. 다시는 섬마을 교사와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가해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촉구해야 한다. 형량 내 최고형으로 다스려야 하고, 이들의 주거침입죄, 음주운전 등 이들이 해당하는 모든 혐의를 적용할 것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흔히 성범죄를 ‘영혼을 죽이는 범죄’라고 한다. 피해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 대인기피증, 분노조절장애, 자살 충동 등에도 시달려야 할지 모른다. 피해교사가 앞으로 교단에 다시 설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성범죄 특성상 피해자인 여교사에게 ‘술을 마신 게 잘못이다’, ‘행실이 나쁘다’ 등의 표현으로 두 번 세 번 죽이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피해 교사와 지역주민들의 상처를 어떻게 보듬을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비단 섬마을에만 있고, 여교사에게만 해당하는 일일까? 오늘날 농가인구의 양적 몰락은 농업노동력에서 이주노동자 비중을 약 20%에 이를 정도로 빠른 성장을 가져오게 했다. 그 가운데 농업여성이주노동자는 10%를 밑도는 제조업과 달리 30%를 넘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에게 고용주의 임의 출입이 가능한 비닐하우스에서 잠을 자고, 안전장치가 없는 건물에서 화장실과 욕실을 남녀 공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일상이다. 2003년 국내 농축산업에 이주노동자가 들어오기 시작한 이후, 그 수는 점차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여성이주노동자 인권 현실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여성이주노동자들은 근로계약 위반은 다반사고, 임금체불과 강제근로, 부당해고 등과 함께 성희롱과 성범죄 피해에 상시 노출되어 있다. 특별히 ‘비닐하우스’와 같은 허술한 숙소는 고용주들과 남성들의 음흉한 시선이 항상 와 닿는 섬마을 ‘관사’그 이상의 전시공간으로 위험하기 짝이 없다.

섬마을 관사에 CCTV를 다니 어쩌니 하는 사후약방문을 보며, “농업여성이주노동자 인권은 구경이나 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부르짖고 싶은 이유다. 이들에 대한 처우개선과 함께 사람답게 살 권리와 누릴 권리도 살필 때가 되었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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