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복의 세상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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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기복 이주인권 저널리스트 |
주한미군 주력 부대인 서울 용산기지 미8군 사령부 본진이 300여 명의 선발대를 꾸리고 평택 이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주한미군은 7월부터 본진 선발대를 시작으로, 군무원 등은 8월부터 내년까지 이전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한다. 미군 측에 따르면, 용산 미8군 소속 통신, 헌병 등 특수 분야 소규모 부대들은 ‘이미’ 평택에서 이전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앞으로 본진 선발대가 움직이면 평택시민들은 매일매일 주한미군의 대규모 평택 이전 과정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주한미군 평택기지 시대가 코앞에 닥친 셈이다.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함은 주한미군 재편 과정에서 평택이 입은 상처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평택기지 이전 사업은 미군의 주둔기지 재배치 전략과 한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용산 미군기지와 경기북부 지역에 주둔한 미2사단을 평택으로 이전하는 사업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미국 정부와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합의하면서 주한미군 평택 이전 확장을 결정지었다. 그에 따라 정부는 대추리와 도두리 일대 200만 여 평의 농지를 포함한 땅을 매수했고, 74만 평을 강제로 수용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토지 강제 수용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의 반발과 미군기지 평택 이전의 필요성과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 추진 과정의 정당성 등에 대한 시민사회의 강한 저항을 불러 왔다.
당시 국방부와 경찰은 국민적 저항에 군사작전으로 대응했다. 정확히 십 년 전인 2006년 5월 4일, 군경은 팽성읍 미군기지 확장 이전 지역 안에 있던 대추분교 강제 퇴거 작업과 철조망 설치 작전을 동시에 펼쳤다. ‘여명의 황새울’이라 불린 이 작전은 지역주민과 시민사회단체 회원 400여 명이 연행되고, 100여 명이 부상하는 유혈 사태 속에서 마무리되었다. 대추리 사태는 1980년 이후 국민을 상대로 한 첫 군사작전으로 책임자 처벌 요구가 끊이지 않은 국가 폭력이었다는 오명과 함께 지역사회에 ‘분열’이라는 큰 상처를 남겼다.
그렇게 시작된 미 육군 주둔기지 캠프 험프리스는 팽성읍 일대에 판교신도시의 약 1.5배(면적 약 1465만㎡)규모로 조성되고 있다. 군사시설 외에 학교와 우체국, 도서관을 비롯한 각종 편의시설, 가족 거주용 고층 아파트 등도 기지 내에 마련돼 사실상 ‘미군 신도시’에 가깝다. 당초 예상보다 1년 정도 늦춰진 이전사업을 보는 평택시민들의 심정은 복잡하다. 미군 이전으로 부동산 시장과 상권이 달아오를 것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있는가 하면, 주한미군이 ‘오프 리미트(off limit, 주한미군 업소 출입금지’ 등을 통해 지역 상인들을 통제하려는 초법적인 태도 등에 대한 반발과 함께 툭하면 터지는 미군범죄 등에 대한 우려 또한 없지 않다.
그런 가운데 지난 4월 29일 발생한 신장동 송탄미군기지 앞 주상복합 4층 건물 화재사건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당시 화재 현장은 골목이 좁아 출동한 소방관도 어쩌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기지를 발휘한 것은 현장에 있던 시민과 주한미군 장병들이었다. 미군 장병들은 인근 상가에서 제공한 이불 네 귀퉁이를 잡고 세 명의 아이들과 아이들 엄마를 받아냈다. 화재연기로 호흡이 어려운 가운데도 아이들을 4층 아래로 던지기 망설이던 아이 엄마를 설득하고 받아낸 주한미군 장병들은 그날, 신장동 주민, 평택시민의 진정한 이웃이었다.
생명을 잃을지도 모를 ‘절박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모른 척하지 않는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이웃의 모습이다. 평택기지 시대를 앞두고 주한미군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주둔지역을 통제하려는 모습에서 벗어나 신장동 화재 현장에 있던 미군장병들처럼 ‘평택시민에게 이웃이 되겠다’는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평택시민들 또한, 그들도 ‘고향을 떠나 가족을 그리워하며 사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청년’이라는 따뜻한 시선을 던질 필요가 있다. 그럴 때, 다문화시대에 그들도 우리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