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복의 세상만사

고기복

이주인권 저널리스트

지난 17일 발생한 강남역 묻지 마 살인사건으로 여성 혐오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피의자의 정신분열증에 따른 ‘묻지 마 범죄’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범죄 표적이 돼야 하는 현실을 개탄하며, 이 사건을 우리사회에 여전한 성차별과 여성에 대한 폭력을 집약적으로 드러낸 ‘여성 혐오’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피의자 김(34) 씨가 “여성들에게 무시받는다”고 느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사실이 알려진 탓이다.
  여성 혐오는 여성에 대한 혐오감과 공격성을 뜻한다. 이는 성차별, 여성에 대한 부정·폭력과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방식으로 드러나며, 농담에서부터 포르노그라피까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혐오하는 모든 형태의 문화적 태도, 성적 편견인 여성 혐오는 대개 남성들에게서 나타나나, 여성들 스스로나 다른 여성을 대할 때도 나타난다. 여성 혐오는 가부장제와 함께 수천 년 동안 여성을 종속적인 위치에 못 박았을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권력과 의사결정에 대해 제한적인 접근만을 허락하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이념, 혹은 신념체계로 기능한다.

한편, 여성 혐오에 대한 대응항은 남성 혐오이다. 강남역 묻지 마 살인사건을 여성 혐오로만 보면, 우리사회는 남녀갈등이라는 성 대결 구조를 만드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좀 더 본질적인 문제가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경찰 측 설명대로 ‘정신분열증’에 의한 것이든, 일부의 주장처럼 ‘여성 혐오’에 의한 것이든, 희생자가 건장한 청년이 물리적으로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여성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런 면에서 이번 사건은 여성 혐오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더불어,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공격성’, ‘차별’이 그 원인이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사회에 만연한 혐오 의식과 차별, 억압이 가진 자들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사회 내면에 숨어 있는 문화적 태도가 그 원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강남역 묻지 마 살인사건 피의자 남성이 내뱉은 “여성이라서 죽였다”는 말은 또 다른 사회적 약자에게도 해당될 수 있는 말이다.

가령, 누군가가 자신의 분노와 차별의식을 표출할 대상으로 이주노동자로 삼았다면,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자라서 때렸다”고 핑계를 댈 것이고, 악덕고용주는 “외국인이라 임금을 착취했다”고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을지 모른다.
만일 우리사회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공격, 차별을 정당화하며 눈감는다면, “불법체류자라서 착취했다. 동남아에서 왔다고 해서 깔봤다. 무슬림이라서 감시했다”는 등의 말은 내국인에게도 동일하게 옮겨갈 수 있다. “장애인이라서 때렸다. 성소수자라서 차별했다. 못사는 애라서 괴롭혔다. 생산직 노동자라서 무시했다. 농민시위대라서 짓밟았다” 등등.

이런 소리를 하는 이들은 본인도 억압받으면서 자기보다 약한 존재를 기어이 짓밟아 자존감을 확인하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혐오를 표출하는 이들은 그런 행위를 통해 권력, 힘을 누린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진정한 힘의 근원은 배려와 섬김이다. 예수님은 당대 남성들이 예사로 무시하던 여성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처지까지 철저히 자신을 낮추셨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 섬길수록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가 늘어났다는 사실을 안다면, 혐오를 표출하여 누군가를 누르고, 힘을 과시하여 만족감을 누리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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