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을 상징하는 발렘탑. 1521년 완공된 이 건축물은 정치범 감옥으로도 쓰여지기도했다. 그후 먼 항해에서 돌아오는 배들을 왕이 환영해주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리스본을 상징하는 발렘탑. 1521년 완공된 이 건축물은 정치범 감옥으로도 쓰여지기도했다. 그후 먼 항해에서 돌아오는 배들을 왕이 환영해주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대서양 횡단을 앞두고 대항해 시대
좁은 국내 영토를 벗어나

강한 도전정신으로 세계로 뻗어나간
바스쿠 다 가마 등

포르투갈 영웅들을 기리는 
리스본 기념탑 앞에 서서 

포르투갈!

15세기 말 시선을 세계로 돌린 포르투갈, 좁은 이베리아반도를 벗어나 대서양의 아조레소제도 그리고 호날두의 고향 마데이라제도뿐만 아니라 브라질, 아프리카, 아시아의 동티모르, 마카오까지 아우르는 세계 최대의 거대 영토를 소유한다.

대항해 시대의 서막을 연 포르투갈은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기 시작하면서 그곳에는 꿈 많은 모험가들이 모여들었다. 그 도전자들에게 영웅이 될 기회를 준 자는 항해왕자 엔리케(1394~1460)였다. 그는 해외에 눈을 돌린다. 국내에서 권력을 탐하지도 않았고 잘난 척, 지지고 볶고 하지도 않았다.

 

리스본을 상징하는 발렘탑. 1521년 완공된 이 건축물은 정치범 감옥으로도 쓰여지기도했다. 그후 먼 항해에서 돌아오는 배들을 왕이 환영해주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내 편만을 위해 악악거리며 싸우는 0핵관, 0딸과는 전혀 다른, 시선을 멀리 두는 신선한 인물을 주변에 배치했다. 전에는 모두 지중해에 시선을 뒀지만 그에게 지중해는 너무 작았다. 그의 노력으로 인해 포르투갈의 항해 실력은 바르톨로메우 디아스와 바스쿠 다 가마에 의해 꽃피웠다. 1488년 바르톨로메우 디아스는 케이프타운 희망봉에 유럽인 최초로 발을 디딘다. 죽을 고비를 넘어 희망이 생겼기에 당시 포르투갈 국왕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었다.

바스쿠 다 가마. 그는 바르톨로메우 디아스의 경험을 바탕으로 유럽-인도 직항로를 개설한 사람이다. 또한 그는 아시아 식민 정책을 주도한 사람이었다. 아메리카 신항로를 개척한 콜럼버스와 함께 세계의 시선은 확실히 바뀌어 나갔다.

당시는 냉장고가 없었기에 상해가는 음식의 냄새를 가려주는 향신료, 즉 후추는 금보다 귀했다. 귀족들은 향신료 구매를 그에게 다그쳤다. 해서 이는 엔리케 왕자 이래 국가의 중요한 국책 사업이 되었다.

바스쿠 다 가마의 4차 항해부터는 무역을 방해하는 이슬람 상선과도 해전을 벌여야 했기에 결국은 약탈과 해적 사업으로 변질하게 된다.

이때부터 유럽의 모든 국가는 해적질이 곧 무역이었다.

고요히 내리는 빗물이 꽃을 피우듯
포루투갈의 웅대한 도전정신이
창간 27년 맞는 평택시민신문과
평택시민들에게도 깊게 깊게
스며들기를 기대해 본다

18세기 전후 식민지 브라질이 독립되고 나폴레옹이 유럽을 장악하면서 그들의 시대는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식민지 경영으로 버티던 경제력은 곧 무너졌다.

그러나 그들의 잔혹함은 잊을 수 있다면 그들이 펼치고자 했던 해양팽창시대, 그것은 옮은 방향이었다.

좁은 국내에 시선을 두고 옥신각신했던 조선시대, 붕당정치로 인해 나라를 왜국에 바쳤던 조선 관료들과는 전혀 다른 시각이었다.

 

리스본의 바닷가에 설치된 발견기념비. 엔리케 왕자를 필두로 바스코 다가마, 바르톨로뮤 디아스! 마젤란의 모습이 보인다. 이자리는  바스코 다가마가 출항한 곳이다.
리스본의 바닷가에 설치된 발견기념비. 엔리케 왕자를 필두로 바스코 다가마, 바르톨로뮤 디아스! 마젤란의 모습이 보인다. 이자리는  바스코 다가마가 출항한 곳이다.

 

리스본 바닷가에는 발견 기념비가 우뚝 서 있다. 대항해시대를 열었던 도전정신 강한 모험가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기념비다.

기념비가 서 있는 자리는 바스쿠 다 가마가 항해를 떠난 자리이다.

맨 앞에는 엔리케 왕자가 그 뒤에는 인도 항로를 개척한 바스쿠 다 가마가, 또한 브라질을 발견한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이, 최초로 세계를 일주한 탐험가 마젤란, 최초로 희망봉을 항해한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일본에 가톨릭을 전파하기 위해 나가사키에 발을 디뎠던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등이 고뇌에 찬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리스본 언덕위에 조성된 성조르즈 성. 로마시대 이전부터 요새가 있었으며 리스본의 영광과 굴욕을 함께 한 리스본의 랜드마크이다. 한때는 무어인들에게 점령당하기도 한다.
리스본 언덕위에 조성된 성조르즈 성. 로마시대 이전부터 요새가 있었으며 리스본의 영광과 굴욕을 함께 한 리스본의 랜드마크이다. 한때는 무어인들에게 점령당하기도 한다.

 

1543년, 아시아와의 무역로를 개척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한 포르투갈 선원은 일본 여자를 얻는 조건으로 다네가시마에 조총 두 자루를 선물한다.

조총의 위력을 알아본 오다 노부나가는 이를 활용, 일본을 장악하고 천하인이 되었다.

50여 년 뒤 이 조총은 조선에 엄청난 시련을 주는데, 바로 임진왜란이었다. 당시 조선 관료나 임금은 입으로만 정치를 하고 있었다. 세종마저도 공도 정책을 펼치며 국제정세에는 무관심했다.

개전 15일 만에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 군에게 한성까지 점령당한다. 그리고 300여 년 뒤 또 다시 같은 나라에 나라가 없어지는 수모를 당한다.

바다에 쟁기질만 했던 조선 선비들. 그러고도 남 탓만 하던 정치풍토가 오늘날까지 똑같아 보여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다.

꽃을 피우는 것은 천둥이 아니라 빗물이다. 조용히 내리는 빗물이 곱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이다.

27년간 스며든 빗물, 평택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었던 평택시민신문!

포르투갈의 웅대했던 도전정신이, 그리고 평택시민신문의 숭고한 비판 정신과 창의성과 함께 평택 곳곳에 깊숙이 스며들기를 바라면서, 또 한 번의 27년에 걸쳐 평택의 소중한 빗물이 되어 주기를 진정으로 기대해본다.

 

최인규 평택시민신문 이사
최인규 평택시민신문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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