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의 역사가 사라진다’
비지정문화재 관리 시급

1936년 설립된 현덕면 대한성공회 대안리교회. 지붕과 외벽은 한옥양식이지만 내부는 바실리카양식이다. 성공회는 1900년대부터 평택에서 선교를 시작했으며 현재 남아있는 당시 건물로는 이곳이 유일하다.
1936년 설립된 현덕면 대한성공회 대안리교회. 지붕과 외벽은 한옥양식이지만 내부는 바실리카양식이다. 성공회는 1900년대부터 평택에서 선교를 시작했으며 현재 남아있는 당시 건물로는 이곳이 유일하다.

평택이 본격적으로 발전한 것은 근현대 이후다. 특히 일제강점기 평택역 건설과 한국전쟁 이후 미군 주둔이 영향을 미쳤다. 평택역을 중심으로 일본인이 거주하는 거리(혼마치)가 형성되고 금융조합, 병원 등이 들어섰다. 지역 곳곳 일제가 건설한 벙커와 방공호가 남았고 해방 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기지촌이 형성됐다. 일찍이 성공회 선교가 이뤄지면서 1906년부터 교회가 들어서고 지역에서 보육원·학교 등을 운영했다. 아산만방조제 건설과 간척으로 농지가 늘어 드넓은 평야가 만들어졌다. 이런 역사 속에서 평택지역의 독특한 풍경이 탄생했다.

현재 평택은 인구 53만의 전국 16번째 대도시로 성장했다. 산업단지와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도시 모습이 크게 바뀌고 있다. 문제는 성장 과정에서 역사성을 지닌 근현대유산도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평화병원 건물을 제외하면 원평동 금융조합·군청·읍사무소·우체국·경찰서는 터만 찾아볼 수 있다. 학령인구 감소와 더불어 구도심 인구 유출로 100여 년의 역사가 있는 성동초등학교와 안중초등학교는 소멸 위기에 처했다. 1936년 세워진 대안리 성공회교회는 등록문화재나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평택시의 근현대유산을 현황과 보존 방안을 살펴보기 위해 ‘사라지는 평택의 근현대유산 보존방안을 찾아서’ 마지막 순서로 평택을 소개한다.

 

조사된 비지정문화재만 70개 이상

 

평택시 지정문화재는 국가지정 유·무형문화재(보물) 4개, 경기도지정 유·무형문화재 22개가 있다. 평택시 향토문화재도 8곳이 지정돼 있으며 <근화창가>, 지영희 친필노트 등 근현대 유물 6점, 동녕사 소유 <묘법연화경>, <선원제전집도서> 등 불교 서적 2권이 도 등록문화재 지정을 추진 중이다.

비지정 문화재도 적지 않다. 평택문화원이 2014년 진행한 <평택문화유산 연구조사용역>에 따르면 평택지역 비지정 문화재는 옹포 평택군 공출창고 등 최소 57개 이상에 달하는 유형유산이 존재한다. 봉남리 성황제, 율북리 산신제, 추팔리·은실마을 당제 등 무형유산도 여럿 남아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멸실된 것을 제외하더라도 아직 조사되지 않은 문화유산을 합하면 비지정문화재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근대유산까지만 포함한 이 조사와 달리 현대유산을 포함할 경우 비지정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는 대상은 더욱 늘어난다. 최근 지역 문화유산은 50년 이상 되지 않아도 역사성·지역성을 인정하는 추세다. 서울, 전주, 부산, 파주 등지에서 도입한 ‘미래유산제도’는 이 같은 관점을 반영한 것이다. 이 기준대로라면 교각 일부가 존치된 통복 고가도로, 현덕면 미군위안부 성병 진료소 건물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김해규 평택인문연구소장이 일제강점기 평택역 인근에 위치한 평택곡물검사소를 설명하고 있다. 평택곡물검사소는 1914년 10월 1일부터 수탈용 미곡검사를 시작했다. 남아있는 건물은 현재 민가로 쓰이고 있다.
김해규 평택인문연구소장이 일제강점기 평택역 인근에 위치한 평택곡물검사소를 설명하고 있다. 평택곡물검사소는 1914년 10월 1일부터 수탈용 미곡검사를 시작했다. 남아있는 건물은 현재 민가로 쓰이고 있다.

급격한 개발로 멸실 위기 상존

 

국가지정문화재와 달리 비지정문화재는 보존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미비하다. 대부분 근현대유산이 많아 역사성·상징성이 있음에도 보존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있으며 소유권이 불명확한 경우 방치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지난 2019년 4월 실체가 확인된 선말산 방공호는 평택지역 방공호 가운데 유일하게 완공된 것으로 역사적 가치가 크다. 그러나 입구부터 30m 지점까지 무너져내린 토사에 막혀 있어 더 훼손되기 전에 보존·복원 조치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재개발이 이뤄지는 구도심도 마찬가지다. 평택처럼 개발이 급격히 이뤄지는 도시에서는 개발을 위해 서둘러 철거·훼손될 우려가 크다.

현재 민가로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평택곡물검사소 건물, 야학인 계명공민학교와 평택초등학교 분교실은 재개발이 이뤄질 경우 헐릴 가능성이 크다. 성동·안중·서정리초등학교 등 100년이 넘은 학교들도 구도심 인구 감소로 소멸위기에 처해 있다.

이미 사라진 문화유산도 있다. 고덕면 당현리에는 세조의 셋째 아들인 덕원군 이서의 묘와 재실인 종덕재가 있었으나 고덕신도시 개발 등으로 묘는 김포로 이장했으며 재실은 헐렸다.

이관우 평택시의회 자치행정위원장은 “지정되지만 않았을 뿐 비지정문화재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며 “지역 내 문화유산을 전수 조사하고 기존 비지정문화재에 안내판을 설치해 가치를 알리고 보존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승읍 원정리 봉수대(괴태곶봉수대)는 향토문화재임에도 해군기지 내에 위치하고 실질적 관리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사진=문화재지키기시민연대
포승읍 원정리 봉수대(괴태곶봉수대)는 향토문화재임에도 해군기지 내에 위치하고 실질적 관리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사진=문화재지키기시민연대

기존 문화재 먼저 관리해야

 

이와 관련 평택시는 지역 내 비지정문화재를 전수조사한다는 방침이다. 2차 추경에 예산 4000만원을 반영한 뒤 올 10월부터 내년까지 조사용역을 추진할 계획이다.

가치평가도 병행한다. 지정문화재 지정 추진이 필요한 문화유산, 보존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 등 5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지정문화재로 등록을 추진할 정도는 아니지만 보존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 문화유산은 ‘역사문화자원’으로 등록해 관리한다.

최장민 평택시 문화예술과장은 “과거 일제조사 자료 등을 참고해 새롭게 지역 내 문화재를 전수조사할 것”이라며 “조사 결과를 토대로 새로 비지정문화재를 역사문화 자원으로 등록하기 위해 조례를 개정하고 보존과 지원을 위한 세부 규칙을 마련해 관리방안을 세울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향토사학계는 전수조사나 조례 개정도 필요하지만 기존 문화재 관리부터 선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평택시 향토문화재 보호 조례’가 있음에도 사실상 관리를 방기했다는 것이다.

향토문화재는 국가 또는 도 지정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문화재 가운데 보존 필요성을 인정받은 유무형 문화재, 향토유적, 민속문화재 등을 말한다.

한 사학자는 “조례에 따라 시는 ‘향토문화재 보호위원회’을 구성해 향토문화재를 지정·해제할 수 있고 시장이 필요한 경우 보호구역을 설정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시는 1997년 신숙주 영정·감실주독을 마지막 향토문화재로 지정한 이후 24년여 동안 아무것도 추가 지정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용죽지구에는 청동기시대 제의장소로 추정 중인 환호가 발견돼 존치 명령까지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문화재지정 추진을 하지 않았다”며 “등록문화재로 지정할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가치판단은 차치하더라도 시에서 먼저 향토문화재로 지정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덕면에 위치한 기지촌여성 성병 진료소. 평택의 어두운 과거를 담은 역사성 있는 건물이지만 방치돼 있어 보존이 시급하다. 사진=평택시민재단
현덕면에 위치한 기지촌여성 성병 진료소. 평택의 어두운 과거를 담은 역사성 있는 건물이지만 방치돼 있어 보존이 시급하다. 사진=평택시민재단

문화유산 관리 전문인력 필요

 

문화유산 관리를 위한 전문인력 배치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되었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문화재 관련 업무 특성상 순환보직으로 근무하는 공무원보다 전문 학예사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장기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사업인 경우 담당자나 책임자 교체로 중단되는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김해규 평택인문연구소장은 “2014년 비지정문화재를 전수조사해 제출하고 조례 개정으로 향토문화재를 유·무형·향토·민속에 따라 분류토록 했는데 아무런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근본적으로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관리부서에 전문성이 부족한 탓”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화재 분야 특성상 담당자가 전문적인 식견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본인이 판단하지 못하더라도 의견을 구할 수 있는 전문가와의 인적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행정직이나 공무직이 담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치선 평택학연구소 상임위원은 “평택지역 비지정문화재는 대부분 규모가 작거나 주변에서 흔히 지나치는 것이다 보니 중요성이 간과되곤 한다”며 “그러나 교과서에선 볼 수 없는 평택의 역사와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우리의 오래된 미래란 점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끝>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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