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이 본격적으로 발전한 것은 근현대 이후다. 특히 일제강점기 평택역 건설과 한국전쟁 이후 미군 주둔의 영향으로 평택의 독특한 풍경이 탄생했다. 현재 평택은 인구 53만의 전국 16번째 대도시로 성장했다. 산업단지와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도시 모습이 크게 바뀌고 있다. 문제는 성장 과정에서 역사성을 지닌 근현대유산도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평화병원 건물을 제외하면 원평동 금융조합·군청·읍사무소·우체국·경찰서는 터만을 찾아볼 수 있다. 학령인구 감소와 더불어 구도심 인구 유출로 100여 년의 역사가 있는 성동초등학교와 안중초등학교는 소멸 위기에 처했다. 평택의 어두운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강당산 CPX훈련장, 알파탄약고 등은 공여지 반환 시 기밀 유지 등을 이유로 시설을 없애고 토지만 돌려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은 미국 선교사들이 호남지역에서 처음으로 선교를 시작한 곳이다. 선교사들이 묵었던 사택과 묘지, 개신교의 영향으로 세워진 학교, 병원 등이 곳곳에 남아 있다. 또한 시인 김현승·문순태, 음악가 정율성, 화백 이강하 등 예술가들이 살던 곳이기도 하다. 독특한 풍경과 역사적 배경으로 양림동에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민간에서도 다양한 기획을 시도하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난 양림동의 사례를 소개하고 알파탄약고, CPX훈련장 등 지역의 근대문화유산을 활용하는 방안을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오웬기념각은 1914년 지어졌으며 양림동에 첫 교회를 설립한 클레멘트 오웬 선교사를 기려 동료들이 세웠다. 광주지역의 첫 연극, 오페라, 독창회 등이 열린 역사적 건물이다.
오웬기념각은 1914년 지어졌으며 양림동에 첫 교회를 설립한 클레멘트 오웬 선교사를 기려 동료들이 세웠다. 광주지역의 첫 연극, 오페라, 독창회 등이 열린 역사적 건물이다.

100년의 시간 머무는 마을

양림동은 0.86㎢에 불과한 작은 마을이지만 100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머물러 있다. 골목마다 동양과 서양,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고 있어 대표적인 근현대사 여행지로 꼽힌다.

양림동에는 조선 시대 부자들이 모여 살았던 영향으로 광주민속자료로 지정된 이장우가옥, 최승효가옥 등 한옥이 보존돼 있다. 또한 1904년 미국 선교사들이 호남지역에서 처음 선교를 시작한 장소로 개신교 관련 근대유산이 많이 남아 있다. 유진벨(배유지), 클레멘트 오웬(오기원) 엘리자베스 요한나 셰핑(서서평) 등 선교사 등이 모여 살면서 일종의 ‘서양촌’을 이뤘고 그들과 관련된 사택, 묘지 등 근대유산이 남아 있다. 빈자 구제, 교육, 의료활동을 중심으로 선교가 이뤄진 까닭에 호남신학대학교, 기독간호대학교, 수피아여자중학교 등 교회, 학교, 병원이 많다.

특히 기독간호대학교의 강당으로 이용되는 오웬 기념각은 일제강점기 강연회, 연극 등 대중 행사가 열리는 장소였다. 수피아여중 내에는 등록문화재인 수피아홀, 커티스 메모리얼 홀, 윈스브로우홀 등이 있다.

해방 이후에는 김현승 시인 등 문학인과 예술가들이 양림동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역사와 예술이 공존하는 마을이라는 현재 양림동의 정체성이 만들어졌다.

 

이장우가옥은 1899년 지어진 전통 상류가옥이다. 동강유치원, 동신중ㆍ고등학교, 동신여중ㆍ여고, 동강대학, 동신대학교를 설립한 이장우 박사가 1959년 매입했다.
이장우가옥은 1899년 지어진 전통 상류가옥이다. 동강유치원, 동신중ㆍ고등학교, 동신여중ㆍ여고, 동강대학, 동신대학교를 설립한 이장우 박사가 1959년 매입했다.

11년 걸쳐 관광자원화 추진

광주시와 남구청은 양림동을 관광자원하기 위해 2009년부터 2020년까지 11년에 걸쳐 ‘양림동 역사문화마을 관광자원화 사업’을 추진했다. 양림동 일원 20만㎡를 대상으로 국비 127억원, 시비 127억원 등 총 254억원을 들였다.

2009부터 2013년까지는 광주시가 사업을 담당했다. 2014년부터는 주민의견을 반영해 남구청에서 사업을 마무리하는 2020년 상반기까지 맡아 진행했다.

주된 사업은 선교유적과 전통가옥 등 근대유산을 정비하는 것이다. 순교자 기념공원 조성, 우일선 선교사 사택 보수, 근대사립학교·의료원 기념관 건립, 이강하미술관·최흥종기념관 조성 등이다. 보행로 등 도로 정비와 문화예술인의 길(정율성로)·양림 역사문화길·야외카페·벽화 조성, 안내시설물·조형물 설치 등이 이뤄졌다.

관광자원화 사업을 바탕으로 남구청은 ‘양림동 테마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에 산재한 근대유산을 연계한 프로그램이다. 주제별로 ▲건축(이장우가옥, 오웬기념각, 우일선선교사사택, 윈스브로우홀 등) ▲선교(선교사묘역, 유진벨선교기념관, 우일선선교사사택, 커티스메모리얼홀 등) ▲예술(정율성거리, 김현승시비, 펭귄마을, 이강하미술관, 한희원미술관 등)을 기본방향으로 삼아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 이전인 2019년 한 해만 총 143회를 운영해 2041명이 참여(건축 37회 476명, 선교 81회 1110명, 예술 25회 455명)하는 실적을 올렸다.

 

광주시와 남구청은 양림동을 관광자원화하기 위해 2009년부터 2014년까지 254억원을 투입해 문화유산과 도로를 정비하고 벽화, 조형물 등을 조성했다.
광주시와 남구청은 양림동을 관광자원화하기 위해 2009년부터 2014년까지 254억원을 투입해 문화유산과 도로를 정비하고 벽화, 조형물 등을 조성했다.

민간 참여로 성공적 문화관광개발

양림동이 지금처럼 주목받게 된 것은 남구청만의 공은 아니다. 예술가와 기획자들이 모여 자생적으로 다양한 문화콘텐츠, 관광콘텐츠를 만들면서 국내에서 성공적인 지역 문화관광개발의 사례로 꼽히게 됐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호랑가시나무언덕 게스트하우스다. 호랑가시나무언덕은 선교사 묘역과 사택이 있는 지역이다. 정헌기 아트주 대표는 2013년 이곳에 방치된 언더우드선교사사택과 뉴수마선교사 사택을 고쳐 각각 게스트하우스, 창작소로 만들었다. 방치된 창고는 갤러리 ‘아트폴리곤’을 개조해 광주를 소재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또 다른 사례는 이한호 쥬스컴퍼니 대표가 기획한 ‘양림쌀롱’이다. 양림쌀롱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문화가있는날 지역거점특화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운영한 복합마을축제다. 1930년대 근대 광주를 주제로 연극·콘서트·의상대여·전시·플리마켓·야간골목투어 등을 운영했다. 프로그램은 양림동 내 카페·식당·갤러리에서 각각 산발적으로 이뤄졌으며 관광객들이 축제 당일 지역 내 점포를 돌면서 행사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비대면으로 진행한 지난해를 제외한 지난 4년 동안 축제 당일 양림동을 방문한 관람객만 4만150명에 달한다.

 

호랑가시나무언덕에 방치된 선교사 사택을 고쳐 만든 호랑가시나무언덕 게스트하우스
호랑가시나무언덕에 방치된 선교사 사택을 고쳐 만든 호랑가시나무언덕 게스트하우스

2009~2020년 254억 투자해
양림동 일원 20만㎡ 재정비
예술가·기획자 모이면서
 지역 문화생태계 다양해져

올해는 양림동 전체를 하나의 전시장으로 만드는 축제 ‘양림골목 비엔날레’를 개최했다. 양림쌀롱과 마찬가지로 지역에 거주하는 작가와 상인들이 참여해 카페, 식당, 거리 곳곳에서 전시를 열어 지역과 상생하는 모델을 만들었다.

 

2018년 진행한 양림쌀롱 행사 중 연극 ‘1930 모단걸 다이어리’ 모습. 사진=쥬스컴퍼니
2018년 진행한 양림쌀롱 행사 중 연극 ‘1930 모단걸 다이어리’ 모습. 사진=쥬스컴퍼니

아카이빙이 콘텐츠 개발로 이어져

민간 기획자들이 양림동에서 성공적으로 각종 문화기획을 할 수 있었던 힘 중 하나가 ‘아카이빙’이다. 일례로 쥬스컴퍼니는 양림쌀롱을 시작하기 전 2012년부터 2015년까지 3년 동안 1930년부터 1980년 사이 양림동과 관련된 인물, 사건, 이야기 등을 수집했다.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양림쌀롱 등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으며 2017년, 2019년 양림기억창고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기록물 전시를 열기도 했다.

김꽃비 쥬스컴퍼니 팀장은 “1930년대 광주에 근대를 공부하자는 취지로 10명이 모여 양림동의 건축, 인물, 사건을 공부하고 이를 바탕으로 재창작 작업을 하는 ‘스토리클럽’을 운영했다”며 “여기서 나온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양림쌀롱에서 진행한 연극 ‘1930 모단걸 다이어리’와 1930년대에서 넘어온 인물이 양림동을 가이드하는 내용의 ‘양림달빛투어’ 등을 기획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역자원을 함께 수집·발굴하고 재창작하는 과정이 지역 문화콘텐츠 개발에 있어 중요한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아카이빙 당시 지역 신문사의 기사나 광주박물관 학예사들의 기고글 등을 많이 참고했다”며 “문화재단이나 문화원의 아카이빙 자료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언론사와 협업해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한다면 지역에서 기획을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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