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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섶길을 걷다원평길(시내길)을 걷다
평택시민신문 | 승인 2020.05.20 10:07

[평택시민신문] 햇살이 유난히 해맑았다. 오백리 섶길 걷기 중 오늘 코스는 시내길(원평길). 이번 역시 아내와 함께였다. 가이드는 토박이 조정묵 선생님. 사적으로는 동문수학한 사이여서 배나 반가웠다. 서로들 가벼이 인사를 나누고 힘차게 발걸음을 뗐다. 삭막한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사잇길로 접어들었다. 배나무 과수원을 배경 삼아 집 한 채가 보였다. 이름도 고운 배꽃뜰(가칭). 초창기 한정식이 퍽 맛깔스러웠다. 그 입맛에 끌려 인산인해를 이루던 음식점. 아련한 추억이 떠올라 얼마 전 지인 몇 분을 모시고 갔더니 어느새 생선구이로 상차림이 바뀌어 있었다. 맛집으로 오래 남길 바랐는데 무척이나 아쉬웠다. 그래도 새봄이 무르익으면 하얀 배꽃을 보러 다시금 찾아오리라 다짐하며 보도블록을 따라 위쪽으로 올라갔다.

근현대 평택 역사가 숨 쉬는 시내길
시청 섶길 원점 출발해 
시내 한 바퀴 돌고 되돌아오는 여정

배꽃뜰 매봉산 덕동산 재랭이고개 
평택중 삼각산 통복시장 청년숲 
천주교 평택성당 평택시예절교육관
원평동 서울떡방앗간 애경백화점
평택역사 남산 시립운동장 소녀상 등
평택을 새롭게 체험하며 배우는 시간들

우뚝 반공 청년 추념비를 세운 곳은 매봉산. 아주 편안한 산책길이 나 있었다. 하지만 그 옛날 있었다는 봉화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관련 자료마저 전무해 복원할 계획조차 없다는 말에 다들 아연실색. 안내자의 구수한 사투리를 들으며 틀림없이 선뜻 나서지 못한 연유가 숨어있으리라 짐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칫 잘못하면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평생 고초를 겪는 일이 비일비재한 시절이 길고 질겼다. 어언 소사벌판 한가운데 30년째 살면서도 멋쩍게도 이런 명소를 몰랐다니, 내 딴엔 구석구석 누비고 다닌다지만 아마 여태껏 못 가본 데는 여기 말고도 널렸을 터다. 지대가 높아 한눈에 들어온 풍경화. 무릇 야산에 난 능선길은 솜처럼 부드럽다. 반들반들 사람깨나 오간 발자국이 선명했다. 바로 밑자락은 신한중고등학교 교정. 축구팀이 꽤 유명한데 뒤편보다는 앞뜰이 볼만하다. 값비싼 조경수들이 저마다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사철 길손을 맞는다.

덕동산으로 가는 길목에는 번듯한 보행교가 놓여있어 편리했다. 토목공사도 이쯤 되면 쓸모가 있으렷다. 두 해 전 생긴 육교를 건너며 나도 모르게 칭찬을 쏟아냈다. 전 시장님이 한 일 중 가장 뛰어난 치적이라고! 동시다발로 터진 파안대소. 내 말투에 4대강을 마구 파헤친 풍자가 짙게 묻어있었나 보다. 명법사를 지날 때는 총무 스님의 선행이 화제에 올랐다. 모름지기 지도자란 공동체에 선한 영향을 미칠 때 그 존재감이 드러나는 법. 아직 언행일치를 이루지 못했다면 누구든 함부로 앞에 나서면 곤란하다. 주변을 정성껏 가꾼 덕동루에 오르니 눈 아래 큼지막한 한광학원이 펼쳐졌다. 아니나 다를까 해설자가 대뜸 필자를 불러세웠다. 다짜고짜 ‘잘린 사람’으로 소개하는 바람에 굳이 정년퇴임을 고해야 했다. 드디어 쉬어도 되는 시기를 맞았다니 고개들을 끄덕였다. 관내에서는 제법 다작하는 작가로 알려진 덕에 말을 걸어오는 이가 있었다. 연재물을 소재로 담소를 나누는 사이 자란마을에 접어들었다.

예로부터 재랭이고개로 불리는 곳. 일대는 무당집이 즐비했다는데 시방도 군데군데 간판을 내건 대문들이 눈에 띈다. 소환하면 동산처럼 솟아오른 언덕배기를 5m 이상 깎아낸 뒤 넓은 도로를 내고 여기저기 정비했다. 땔나무를 잔뜩 짊어진 채 아픈 허리들은 굽었고, 돈 될 만한 물건들을 가뜩 이고 고갯길을 오르내리느라 피땀을 흘려야 했다. 듣자니 장날이면 꼬리에 꼬리를 물만치 생계형 나무꾼이며 젖먹이를 들쳐업은 아낙이 그리 많았단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그 골병든 대열에 끼었었노라며 붉어진 눈시울을 애써 감추던 선배 교사가 있었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눈물겨운 얘깃거리가 어디 이뿐이랴. 한때는 똥골로 불릴 만치 지저분했다는 입말을 새겨듣다가 맘씨 좋은 동네 슈퍼에 들러 볼일을 보고는 길 건너 평택중학교 앞을 지나쳐 높은 담장을 끼고 다음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섶길 걷기 깃발이 펄럭인 곳은 삼각산. 가이드의 첫 마디는 여긴 특히 기가 센 곳이니 각별히 몸조심하라는 너스레였다. 그의 입담은 어디서건 그칠 줄을 모른다. 소상한 해설을 곁들이는 가운데 이때다 싶었는지 자못 섬뜩한 일화를 풀어놓았다. 뭉툭한 산정을 차지한 덩치 큰 물탱크를 만드는 과정에서 일어난 불상사. 밤낮 난공사를 감행하던 중 긴 팔을 내뻗듯 늘어뜨린 거목의 굵다란 나뭇가지가 문제의 진앙이었다. 오랜 세월 마을을 굽어보며 수호신처럼 모시던 생명수(生命樹)를 잘라내자니 당장이라도 재앙이 닥칠 것 같고, 그대로 놔두자니 더는 식수 공급이 어렵다는 최후통첩에 온 동네가 시름에 빠진 터. 바로 그때 진퇴양난의 난관을 단칼에 해결한 이가 나섰는데, 애석하게도 그 생목을 싹둑 자르자마자 저주를 받아 백주 대낮에 날벼락을 맞아 죽었다는 이바구였다.

믿거나 말거나 어쨌든 좀 으스스한 기분을 껴안은 채 흙길을 따라 내려간 곳은 시내를 가로지르는 인공하천 산책길. 안쓰럽게도 흐르는 물줄기는 가늘지만 전에 비해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에 어둡던 표정들이 한결 밝아졌다. 이 통복천 길을 따라 죽 가면 배다리생태공원으로 이어진다. 내팽개친 실개천을 살린 손길을 생각하며 통복동 전통시장을 찾았다. 멀끔히 단장한 골목에서 우리 부부가 기웃거린 데는 내내 궁금하던 청년 숲. 이왕이면 여기서 점심을 해결하리라 두리번거렸으나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는 메뉴가 주로여서 아쉽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고대 자리를 잡은 데는 추억이 서린 서민 식당. 제자 여럿을 데리고 왔던 적이 있었다. 주인님이 단박에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보리밥에 팥죽을 곁들여 맛있게 들고 나오려는데 슬쩍 된장찌개 재료를 챙겨주셨다. 고마운 일이로되 세월이 하 수상한지라 솔직히 신경이 쓰였다.

자유시간이 남아 들른 곳은 천주교 평택성당. 1928년 창립을 기념한 몰리에르 신부의 순교비를 묘지 곁에 세웠다. 구석구석 흥미롭게 둘러보니 버텨온 세월의 흔적은 어디로 가고 새로 단장한 건물과 정원만이 말없이 우리 둘을 배웅했다. 계단을 내려와 곧바로 마주한 데는 평택시예절교육관. 푸근한 내 집처럼 예쁘게도 꾸며놓았다. 시계를 보며 발길을 재촉한 끝에 굴다리를 빠져나와 마주친 거리는 오래전 일제 강점기 중심가. 관공서를 필두로 냉동창고를 둘 만치 번화가였다는 게 가이드의 열변이었다. 하지만 보존 가치가 높은 적산가옥은 죄다 헐리고 그나마 명맥을 이어온 단 한 곳은 서울떡방아간. 지금도 영업 중이라기에 미닫이를 밀치고 얼른 사진기에 담았다. 기차역 뒤 허름한 뒷골목이 그렇듯 음습한 기운을 좇아 조직 폭력배나 모리배가 무리를 지어 살았다는데 어느새 번듯한 건물들로 채워져 예전의 모양새는 상상조차 불가할 지경. 떠올릴수록 아까운 근대유산은 고사하고 응당 기억할 만한 선대의 궤적마저 뭉개버린 행태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큰 규모의 애경백화점과 치솟은 주상복합아파트를 지나 철제 계단에 올라 바라본 평택 역사(驛舍)는 새삼 교통의 요지임을 자랑했다. 다행히 이제부터는 흙길. 마치 스펀지 위를 내딛는 것 같았다. 비록 대로변이긴 하나 보행에 편리하도록 조금만 다듬으면 괜찮은 길이거늘 마냥 방치하다니! 거기서 얼마큼을 걸어가니 놀랍게도 숨은 보물이 우릴 기다렸다. 펑퍼짐하게 둔덕을 이룬 남산. 까맣게 몰랐던 뫼 아랫자락에 시립운동장을 비롯해 수영장이며 체력단련시설을 두루 갖춰 놓았다. 일행은 자연스레 소녀상 앞에서 인증샷을 남겼다. 새로운 발견에 놀라며 섶길 기점을 다시금 밟은 건 오후 세 시경. 내친김에 머잖아 생태하천으로 거듭날 통복천을 따라 더 걸어보고 싶었으나 아내에게 피로가 밀려와 다음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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