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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에 아직도 농촌을 사랑하는 대학생이 찾아온다는 것을 아세요?대학생 여름 농활 33년째!
평택시민신문 | 승인 2019.07.03 17:07
임흥락
평택농민회 부회장

[평택시민신문] 농민들이 바쁘게 모내기를 마치고 힘든 밭일을 할 때쯤, 대학생들이 1학기 기말고사를 끝내고 농활(농촌활동)을 온다. 여행도 가고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고 부모님도 찾아봬야 하는데 많은 학생들이 방학하자마자 농촌 일손을 돕기 위해 평택 시골마을을 찾아온다. 회비도 걷고 단체 작업복도 맞춰 입고 나름대로 교육도 진행해서 농민을 돕기 위해 농촌으로 온다. 길게는 9박10일, 짧게는 4박5일 일정으로 진행하는 우리 평택지역 농활이 벌써 33년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는 4개 대학(삼육대, 숙명여대, 한신대, 한양대)에서 연인원 300명 가까운 학생들이 9개 마을에서 5박6일간의 여름 농활을 했다. 지난 6월 24일 숙명여대와 삼육대 약학대학 학생들 농활을 시작으로 25일에는 한신대와 한양대 농활대가 오면서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모든 마을에서 마을회관을 사용하면서 감자, 양파. 마늘 수확 등 농작업을 도왔다. 하루 세 끼니를 학생들이 직접 해먹고 자체 규율을 만들어 농민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6월 30일 해단식을 하는 순간까지 웃음을 잃지 않는 학생들은 농활기간 동안 농업과 농촌, 농민의 소중함을 느끼면서 생활한다. 그래서 농활대는 단순한 봉사활동이 아니라 농민과 대학생이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연대의 활동이라 부른다.

올해 여름 농활에 참가해 양파를 수학하고 있는 대학생들

긴 역사만큼 우여곡절 많아

30년이 훌쩍 넘은 대학생 농활은 긴 역사만큼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1980년대 후반 처음 시작한 대학생 농활은 행정기관에서 마을 이장을 동원해 받지 못하게 했었다. 마을 회관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서 농민회 회원의 창고나 빈집에서 벌레에 물려가며 농삿일을 도왔다. 혹시나 농민을 의식화할까봐 읍·면사무소 담당 공무원들은 매일 농활 진행 상황을 감시하고 방해했다.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많았던 그 때는 할 일도 많았고 다양한 연령대의 농민이 있었다. 농활대의 활동도 군대식으로 전투적으로 진행되었다. 아동반, 청소년반, 청년반, 부녀반 등 연령대와 성별에 맞게 소통의 시간도 가졌고 규율도 엄격했다. 사전 준비도 많았고 밤늦은 시간까지 토론도 했었고 기상시간도 더 빨랐다. 기계가 많지 않던 그 때는 농삿일도 많아 학생들의 작업은 고된 노동이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행정기관의 대응도 과민했고 그에 맞선 농활대의 규율도 엄격했다. 정권이 여러 번 바뀌고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정부가 탄생되면서 농활도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김영삼 정부시절 학생운동 탄압의 일환으로 농활을 방해했던 시절(그때도 평택은 농활을 진행했음)을 제외하면 농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없어진지 오래다.

 

농활을 바라보는 시각 변화해

지금은 농촌과 대학생 모두가 변했다. 공무원이 농활을 대하는 자세도 변했다. 농촌은 인구가 줄었고 노령화되었다. 일손이 부족한건 여전하지만 기계화가 많이 진행된 것도 사실이다. 주민의 대다수가 농민이었던 시절에서 인구 50만의 평택에서는 농민이 소외된 계층으로 전락되었다. 마을회관을 주로 사용하시는 어르신은 농활기간 동안 회관사용에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대학생도 변했다. 시대가 변한 만큼 개인화되었고 규율도 약해졌다. 농업과 농민을 이해하기 보다는 자신의 봉사시간을 채우는 게 목적인 농활대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가장 변하지 않은 주체는 농활대인 대학생이다. 반면 변화가 가장 심한 곳은 행정기관과 공무원이다. ‘농활을 방해하고 감시하던 시절이 있었던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친절하고 적극적이다. 심지어 농활대의 활동을 지원하고 예산도 세워주면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보건소에 부탁해서 해충기피제를 지원하고 학생들의 자원봉사 활동도 인정해주었다. 매일 학생들의 동태를 살피려 이장을 괴롭히던 것도 없어지고 자유로운 농활을 보장해주고 있다. 슈퍼오닝 홍보용 쌀을 지원해서 미래의 소비자인 농활대에게 평택 농산물을 홍보하는 적극성도 보여주었다.

농활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많은 것이 변했다.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은 농업과 농촌, 농민의 어려움이다. 그리고 할 일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을 나이인 농활대 학생들의 진심이다. 짧은 시간이나마 나이 든 농민과 젊은 학생이 만나 활기찬 농촌이 되었다. 대학생 여름 농활이 33년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농촌을 생각하고 농민과 함께 하였는가?

바쁜 일 뒤로하고 생소한 농촌을 찾아 농업과 농민의 소중함을 몸소 체험하는 농활대의 열정에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박수를 보낸다.

※ 외부필자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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