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시민신문] 그믐이면 그 달의 마지막 날입니다. 마지막이라는 말이 늘 그렇듯 사월 그믐날 밤이라면 무언가 조금 쓸쓸하고 허전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믐밤이 지나야 오월 첫 아침이 시작되니 밝은 기운을 함께 가진 낱말이기도 합니다. 한층 깊어진 봄날 밝은 이미지와 그믐밤 어두운 이미지, 새로 시작될 오월 푸릇한 이미지가 함께 떠오르는 사월 그믐날 밤. 뭔가 근사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밤입니다.

이런 마음을 담은 짧은 동화가 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고 있는 방정환이 1924년에 쓴 〈사월 그믐날 밤〉입니다.
 

방정환은 이 동화를 어린이를 위한 잡지 <어린이> 1924년 5월호에 실어 발표했습니다. 1923년 5월 1일을 첫 번째 ‘어린이날’로 정한지 꼭 1년이 지나 두 번째 ‘어린이날’을 맞는 기쁨을 담아 쓴 글입니다.

사월 그믐날 밤에 온갖 꽃들과 새들과 나비가 오월 초하루 잔치를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잔치입니다. 진달래, 복사꽃, 개나리, 할미꽃들이 무대를 꾸미고 꾀꼬리는 독창 무대를 준비합니다. 새들이 부르는 오월 노래에 나비들이 너울너울 춤을 춥니다. 일 년 중 제일 선명한 햇빛이 잔치 마당을 환히 비춥니다.

새 세상이 열리는 첫날의 기쁨을 어린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방정환의 마음이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어린이날’을 만들고 어린이문화운동을 일으킨 방정환이 동화 속 꽃으로 새로 나비로 함께 축하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라는 말을 언제부터 어린이에게 썼을까요? 지금은 누구나 알고 쓰는 어린이를 가리키는 말을 백여 년 전 사람들은 ‘애놈, 애녀석’이라는 말로만 썼다고 합니다. 그 시절 사람들에게 어린이는 아직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방정환은 그런 어린이를 발견해 낸 사람입니다. 미래의 희망이 어린이에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새 길을 열고 새 걸음을 걸어갈 사람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것이 어른들의 역할이라고 했습니다.

1923년 제 1회 어린이날 선전문에서 <어린 동무들에게> 권하는 글은 지금 읽어봐도 재미있습니다.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보자, 뒷간이나 담벽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지 말자, 도로에서 떼를 지어 놀거나 유리 같은 것을 버리지 말자, 입을 꼭 다물고 몸을 바르게 가지라’는 말도 있습니다. 어른들에게는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고 보드랍게 대해주라는 것, 이발 목욕 의복을 때맞춰 해주라’는 것을 권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당연히 여기는 일들이 꼼꼼히 적혀 있어 놀랍습니다. 그만큼 어린이 문화라는 것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겠지요.

어린이는 당연히 존중받아야 할 귀한 존재입니다.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명제이지요.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것들이 백여 년 전에는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는 데 새삼 생각이 머뭅니다. 어려운 일이 시작된 순간, 그 때의 기쁨이 짧은 동화 한 편으로 남아있다는 것이 고맙기도 합니다.

올해가 방정환 탄생 120주년이라고 합니다. 그에 맞춰 한국방정환재단에서는 《방정환문학전집》을 출간하고 그 기념회를 사월 그믐날 저녁에 연다는군요. 어린이를 향한 그의 따뜻한 마음을 함께 기억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한 세기 전, 어린이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 큰 어른을 함께 추모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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