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부일협력자들은 반공이라는 방패너머로 이 땅을 미군기지화 시키는데 일조

주한미군 통해 미국은 정치·경제를 넘어 한국인의 의식조차 지배하려 해

한도숙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평택시민신문]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의하면 3·1 운동에 참여한 시위인원은 약 200여만 명이며, 7509명 사망, 1만5850명 부상, 4만5306명이 체포되었으며, 헐리고 불탄 민가가 715호, 교회가 47개소, 학교가 2개소였다고 전하고 있다. 물론 일본 측 기록과는 차이가 있다. 온 나라의 마을과 면단위가 만세시위를 벌였다. 그렇다고 물리적인 규모만 강조되어서는 의미가 없다.

당시 ‘뉴욕 타임즈’는 3·1 운동에 대해 "조선인들이 독립을 선언했다. 알려진 것 이상으로 3·1 운동이 널리 퍼져나갔으며, 수천여 명의 시위자가 체포됐다" 고 보도했다. 한편 ‘AP통신’은 "독립선언문에는 '정의와 인류애의 이름으로 2천만 동포의 목소리를 대표하고 있다' 고 명시되어 있다" 고 보도했다. 그 외에도 샌프란시스코의 ‘이그재미너’, 파리의 ‘앙탕트’, 런던의 ‘모닝 포스트’, 상해의 ‘민국일보’에서도 3·1 만세운동을 다루는 등 세계적 사건임을 알 수 있다.

3·1만세운동은 만주와 연해주, 중국 그리고 국내의 항일단체의 통합을 가져왔다. 민족운동의 구심이 없는 상황에서 임시정부가 통합되어 민족의 구심점이자 항일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또 한 한일병탄 후 일제는 무단통치와 3·1만세운동의 무자비한 진압이 가져온 세계여론이 호의적이지 않자 이른바 문화통치로 전환하게 된다. 이는 민족분열정책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런 엄청난 성과를 만들어낸 3·1만세운동은 비폭력저항운동이라는 한계를 처음부터 노정했기에 독립해방을 쟁취해 내지 못하는 결과가 되었다. 따라서 후기로 가면서 곳곳에서 폭력적 저항의 모습을 취했다고 생각된다. 해방은 그로부터 26년이 지난 45년에야 이루어졌다. 연합국의 승리로 얻어진 해방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참전국의 지위를 얻지 못한 것은 미국의 야욕과 그것에 기대어 권력을 얻어내려는 세력에 의해 저질러진 참극이었다. 우파민족진영이 미국의 야욕을 잘 알지 못했거나 반대로 미국의 야욕에 함께 올라탄 것이 비극의 단초라 할 것이다.

38도선은 모스크바삼상회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미국의 야욕으로 비롯된 것이라는 게 역사학자들의 평가다. 38도선을 긋고 남쪽은 미군이 북쪽에는 소련군이 들어왔다. 맥아더 사령부는 38이남에 진주하며 조선인민에게 “나의 지휘 하에 있는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영토를 점령한다.”며 명백히 공표했다. 또한 부속 조항들에서 조선의 모든 권한과 권력은 자신에게 있음을 분명히 못 박아 두고 있다. 이렇게 미군은 이 땅에 들어왔고 지금도 이 땅에 머물고 있다. 이렇게 외국군대가 오래도록 머물 수 있게 된 것은 ‘한민당’과 그들을 비호한 친일파들 때문이다.

이승만은 한국전쟁 시기 군사작전권을 미국에 넘겨주었고 이는 지금도 미국이 행사하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해서 반공을 국시로 내세우고 미국에 엄청난 부지를 내어주고 각종 편의까지 제공하면서 미군기지를 전국화 시켰다. 그러면서 자신은 독재정치를 할 수 있었다. 미국은 친미정권이면 독재를 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 그들의 기본전략이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장면 정부를 뒤집어엎고 대통령이 된 박정희는 사실 정통성이 없는 대통령이었다. 더구나 박정희는 일본군 장교 출신이었다. 일제시대에 만주 군관학교를 거쳐 일본 육군 사관학교를 나온 박정희는 우리의 독립투사들을 때려잡는 일본군 장교였다. 그러니 미국에 더욱 기대고 월남에 파병을 하여 숱한 목숨들을 잃게 하였다. 어디 그뿐인가. 전두환 노태우 군부독재도 사실 상 미국의 용인으로 가능한 것 아니었던가.

1946년 ‘맥아더’ 포고문을 발표한 이후 늘 우리는 그들과 함께 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인내하며 살아왔다. 효순이·미선이 사망사건이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이루 다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미군 관련 만행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언제 한번 한국의 법정에 선적이 있었던가? 그들에게 가해진 최대의 벌은 미군 측에 의한 ‘본국으로의 송환’이 다였다.

평택 캠프 험프리스는 미군의 해외 단일기지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부지가 1455만㎡(440만평·여의도 5배 규모)가 넘는 크기로 확대됐다. 거기다 송탄의 오산공군비행장은 미제7공군사령부와 그 예하부대들이 주둔하고 있다. 국방부와 군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주한미군은 2만8500명 선이다. 여기에 군장병 가족까지 합치면 인원은 총 4만5000여명이다.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 한국은 분담금을 지출해야하는데 올해만 1조385억 원으로 결정하고 국회의 동의를 기다리고 있다.

흔히 ‘주한미군 주둔의 문제점’하면 위에서도 언급했던 미군들의 범죄와 환경오염, 공여지 문제, 미군주둔비 지원 문제, 등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문제들도 주한미군과 관련하여 해결해야할 중요한 문제들이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미국이 주한미군을 통해 한국의 정치‧경제‧문화 각 부문뿐 아니라 한국인의 의식조차 지배하려 한다는 것이다. 미군이 한국에 주둔한 지 백년이 다 되어간다. 미국의 시녀노릇하기 바빴던 정권 때문에 한국인들 뇌리에는 자연스럽게 친미적인 감정들이 지배적이다. 지금도 국민들 사이에 일어나는 반미감정을 내심 두려워하는 것은 지배계층이다.

3·1만세운동은 우리의 주권을 되찾으려는 민중들의 몸부림이었다. 그 결과는 참혹했을 뿐이고 돌아온 것은 부일협력자들에 의한 농단뿐이었다. 그러다 해방이 되니 부일협력자들은 반공이라는 방패너머로 숨어들어가 이 땅을 미군기지화 시키는데 일조했다.

3·1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는 당장 무르익고 있는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발전시켜나가는데 동참해야한다. 남북의 통일은 지금까지 70년 동안 우리의 손발과 머리까지를 묵어 놓았던 사슬이 풀리는 것이다. 그리 되려면 미국과 주한미군은 우리에게 무엇인지를 깊이 성찰해야한다. 이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미군전투기의 폭음으로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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