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균교수의 글로컬 프리즘 _ 김남균 평택대 미국학 교수

흑백분리 정책 ‘위헌’ 판결한 브라운 판결

‘차별철폐’ 통한 사회변화 견인차 역할 수행

법원이 신뢰 잃으면 민주주의는 고사할 것

 

김남균 평택대 미국학 교수

[평택시민신문] 대법원의 전임 대법관들이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대법관도 개인 비리가 있을 수 있고 수사기관의 수사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조사 받고 있는 전임 대법관들의 혐의 내용이 개인 비리가 아닌 대법원 판결과 관련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아직 대법원 사태의 전모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최고 법원인 대법원의 전직 대법관과 대법원장이 판결과 관련하여 수사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법적 정의의 위기다.

대법관은 일반 법원의 판사와는 임명 절차부터 다르다. 대법관들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임기는 6년이고 연임이 가능하다. 그러나 65세가 되면 정년퇴직을 해야 한다. 대법원장의 임기도 6년인데 중임은 금지되어 있다. 대법원장의 정년 나이는 70세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 연방 대법관은 종신직이다. 80-90살에도 대법관의 자리를 지키는 경우가 많다. 현재 재직 중인 9명의 미국 대법관의 평균 연령은 65.7세이다. 그들 중 최고령자인 긴스버그(Ruth Ginsburg) 대법관은 85세이다. 대법관 후보 지명은 대통령이 하지만, 상원 법사위원회의 청문회를 거쳐 상원 본회의의 인준을 받아야 최종적으로 임명될 수 있다.

미국에서 판사는 ‘저지(Judge)’라고 불린다. 하지만 대법원 판사는 ‘저지’라고 부르지 않고 ‘저스티스(Justice)’라고 한다. ‘저스티스’란 ‘정의’라는 뜻이다. 종신직을 보장받는 대법관들은 살아 있는 정의 자체를 상징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 역사상 대법관이나 대법원장이 검찰 수사의 대상이 된 경우는 없었다. 탄핵으로 면직된 대법관도 없었다. 대법관으로 임명된 후에는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의 기대와 전혀 다른 판결을 내리는 경우도 많았다. 1954년 브라운 재판(Brown v. Board of Education)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1953년 미국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신임 대법원장에 얼 워렌(Earl Warren)을 임명했다. 워렌은 캘리포니아 주 지사(재임기간 1943-53)를 지낸 정치인이었다. 두 사람은 같은 공화당 출신이었다. 그러나 신임 대법원장 워렌은 아이젠하워의 기대를 임명 직후부터 무너뜨렸다. 첫 사례가 브라운 재판이었다. 브라운 재판은 올리버 브라운(Oliver Brown)이 캔자스 주 토피카 시 교육위원회(Board of Education)를 상대로 하는 소송사건이었다. 브라운은 흑인이었다. 그는 딸을 백인학교에 입학시키길 원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에서 흑인은 백인학교에 입학할 수 없었다. 딸의 입학을 거부당한 브라운이 시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브라운 사건은 하급법원의 판결을 거쳐 마침내 연방 대법원까지 올라갔다.

흑백분리정책은 남북전쟁 후 지켜 온 미국 사회의 기본원칙이었다. 대법원도 1896년 플레시 재판(Plessy v. Ferguson)에서 ‘분리하나 동등하게(separate but equal)’라는 원칙을 인정했다. 그런데 1954년 브라운 재판에서 신임 대법원장 워렌은 흑백분리는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50년 이상 지켜 온 대법원의 선례를 뒤집은 것이다. 당시 미국 사회는 흑백분리를 당연시했다. 대통령 아이젠하워도 흑백분리를 당연한 사회규범으로 지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워렌이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기대와 달리 흑백분리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리는데 앞장 선 것이다. 워렌 대법원장의 브라운 판결은 ‘재판혁명’으로 평가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남부사회는 브라운 판결에 거칠게 반대했다. 그러나 브라운 판결은 미국사회의 인종문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흑인 민권운동의 법적인 근거가 되었다. 흑백으로 분리되었던 학교가 통합되고, 대중교통과 공공시설에서 흑백분리가 사라졌다. 마침내 1964년 민권법의 제정으로 인종차별뿐 아니라 성차별을 비롯한 모든 차별이 불법화되었다. 브라운 판결로 시작된 변화의 결과였다. 대법원이 미국 사회변화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다.

반대로 지금 우리 대법원은 심각한 위기 속에 빠져 있다. 조속한 시일 내에 문제의 전모가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 그리고 재발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조치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대법원에 문제가 있다면 하급 법원의 재판을 누가 신뢰할 것인가? 법원이 신뢰를 잃으면 민주주의 자체가 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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