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진욱 수석교사(안일중)

시련 속에서도 배움 추구한 추사의 삶을 보면서
우리의 나아갈 길을 발견한다

 

노진욱 수석교사(안일중)

[평택시민신문] 충남 예산에 가면 추사 고택이 있다. 추사의 증조부 월성위 김한신을 위해 충청도 53개 군현에서 건립비용을 걷어서 영조가 지어준 집이다. 추사고택을 제대로 답사하려면 최소 3시간 이상은 걸린다. 고택을 중심으로 추사묘소, 김한신과 화순옹주의 합장묘, 화순옹주의 열녀정문, 고조부 김흥경의 묘소와 추사가 24살 때 연경에서 가져와 심었다는 백송 그리고 산자락 위에는 추사가 공부하고 추사의 글씨가 지금도 남아 있는 추사가문의 원찰 화암사가 있다. 그러나 사실 지금의 추사고택은 1970년대 53칸의 집을 반으로 줄여 복원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추사고택을 즐겨 찾는 이유는 죽는 날까지 배움과 가르침의 열정을 불살랐던 추사의 정신 때문이다. 추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또 추사를 아는 사람도 없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추사를 추사체를 완성한 서예의 대가, 세한도라는 문인화의 최고 걸작을 남긴 화가 정도로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 추사는 당대 경학, 고증학, 금석학의 최고봉이요 시와 문장의 대가였으며, 불학, 천문, 지리에 통달하고 차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륜을 가진 학자였다. 하여 일본 동양철학의 대표자인 후지츠카 치카시는 ‘청조학 연구의 제 1인자는 추사 김정희다.’라고 단언했다.

추사는 나이 24세 때 아버지 김노경을 따라 자제군관의 자격으로 연경에 다녀온 후, 거기서 만난 대학자 완원, 옹방강을 비롯한 수많은 연경의 학자, 예술가들과 끊임없이 서신을 주고받으며, 또 수많은 서적과 자료를 주고받으며 배움에 탐착했으며, 그렇게 쌓은 지식과 학문은 가히 당대 최고라 아니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조선 내에서도 사대부는 물론 초의선사를 비롯한 스님, 역관 등 중인, 서얼에 이르기까지 신분을 초월하여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학문을 습득하였다.

추사가 얼마나 독서를 즐겼는가는 그의 방대한 장서를 보면 알 수 있다. 추사는 귀양살이를 하는 중에서도 가족과 제자들에게 염치없을 만큼 끊임없이 국내외에서 편찬되는 새로운 서적을 보내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하여 추사는 수만 권의 장서를 가지고 있었는데, 추사고택에 소장되어 있던 서적과 작품들이 1910년경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다고 한다.

북한산 비봉의 진흥왕 순수비, 무장사비를 발견하는 등 많은 문화재를 발굴하여 보존케 했으며, 우리나라의 많은 비문과 서적, 예술품을 청에 소개하였다. 특히 추사는 청나라에서 받아들인 학문과 예술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지 않고 모두 자기화, 토착화 한 사람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추사체와 최고의 문인화로 칭송받는 ‘세한도’이다.

또한 추사는 가족에 대하여 매우 섬세하고 따스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추사가 평생 아내에게 보낸 편지들을 보면 추사가 얼마나 자상하고 따스하게 아내를 배려했는가를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추사는 당대 최고의 명필이면서도 아내에게는 정겨운 한글체로 편지를 썼고, 아들 상우를 위해 지은 ‘동몽선습’은 한자 한자 심혈을 기울인 정자체로 써서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정성이 글자마다 배어 있다.

추사가 이렇게 학문과 예술 모든 분야에 걸쳐 최고 수준에 도달했던 것은 그의 천재적인 재능 때문만이 아니다. 추사가 평생의 절친 권돈인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나는 70 평생에 벼루 10개를 밑창 내고 붓 1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추사는 중국 비문 309개를 온몸으로 익혀 다 견지했으며, ‘하품하던 사자는 코끼리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하지만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하는 법이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학문을 할 때는 매사에 전력을 다하라는 말이다. 이를 통해 추사가 얼마나 피눈물 나게 학문과 예술을 위해 스로를 수련하고 연찬했는지 알 수 있다.

학문과 예술의 스승 추사 김정희, 오랜 유배와 시련 속에서도 학문과 예술의 끊을 놓지 않고 그 시련들을 최고의 학문과 예술로 승화시킨 추사의 삶을 보면서 과연 배움을 추구하는 우리가 나아갈 길이 무엇인가 새삼 돌아보게 된다. 나는 추사고택 중에서도 사랑채 옆 정원에 피는 한 그루 설중매를 가장 좋아 한다. 성긴 티밥처럼 한잎 두잎 피어 2월부터 4월까지 이어지는 매화다. 가히 추사의 고결한 정신을 품고 있다고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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