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일 한백문화재연구원장, ‘원효대사 깨달음체험관 개관 1주년 기념 학술대회’서 발표

당항진 위치는 화성이 분명하나 ‘화성 해문리’ 오도처 주장은 근거 없어

추풍령 지나 청주-안성-직산-평택 거치는 ‘추풍령로’가 가장 유력한 교통로

신라시대 군현도

[평택시민신문] 원효 대사가 서기 661년 당 나라로 유학을 가려다 ‘감분불이(龕墳不二·극락과 지옥이 둘이 아니라는 중도의 해탈사상)’의 깨달음을 얻고 유학을 포기한 소위 ‘오도성지(悟道聖地)’는 평택 수도사가 확실하다는 연구 발표가 나와 관심을 끈다.

지난 16일 포승읍 원정리 소재 수도사에서 개최된 ‘원효대사 깨달음체험관 개관 1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서영일 한백문화재연구원장은 “원효대사 오도성지 수도사와 신라 당진항로”라는 주제 발표에서 이같이 밝혔다. 원효대사의 오도처(悟道處)를 놓고 학계에서 평택설과 화성설로 나뉘어져 있는 가운데, 고대 신라시대 교통로와 연관된 문헌학적·역사적 고찰을 통해 평택 수도사설을 뒷받침하는 이번 연구 결과 발표는 평택과 원효대사의 역사적 인연과 현재적 계승과 재조명 사업에도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원장은 3가지 측면에서 평택 수도사를 원효대사의 깨달음 체험처로 보았다.

▪당항진과 당항진로 분석=먼저 신라시대 대당 교역의 핵심기지인 신라 당항진에 이르는 교통로 분석이다. 원효와 의상이 중국으로 유학을 가기 위해 당항진으로 갔다면, 당항진의 위치가 어디인가가 항상 논란이 되어왔다. 당항진의 위치는 현재 아산만과 남양만 일대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위치는 확인된 바가 없다. 다만, 당항진의 배후 거점이었던 당항성의 위치는 유물 발굴 조사 등을 통해 현재의 화성시에 위치한 당성이 분명해 지고 있다. 그러나 당항진을 방어하기 위해 축도된 당성이 당항진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상태다. 서영일 원장은 신라시대 서라벌에서 당항진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어디였을까를 추적했다. 서라벌에서 당항진에 이르기 위해서는 소백산맥을 관통해야 한다. 충주를 거치는 죽령로와 계립령로, 청주를 거치는 추풍령로 등 3가지 노선 가운데, 서원장은 상주에서 보은-청주-진천-안성-직산-평택을 거쳐 당항성(남양만)에 이르는 교통로가 가장 유력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서원장은 신라시대 평택 지역 교통의 중심지역으로 현재 안중읍 덕우리에 위치한 자미산성을 주목한다. 당성군에 소속된 현재의 안중지역 일대가 당시에 상홀현인데, 자미산성을 상홀현의 치소(治所)로 사용하며 아산만 일대의 해안방어선 겸 교통의 중심지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6세기 중반 경부터 안성천 하구와 아산만 일대를 장악한 신라가 최대 교역항이었던 당항성의 배후기지로 평택일대를 활용했고, 원효와 의상이 중국으로 유학을 가기 위해서 당항진으로 갔다면 이 길을 활용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주장했다. 서원장은 “당시 신라시대에는 추풍령을 거쳐 평택을 지나지 않으면 바다로 갈 수 없었다”는 말로 자신의 주장을 요약했다.

▪해문당주계와 직산=또 다른 근거로 삼은 것이 깨달음에 관한 가장 신뢰할 만한 문헌인 988년 편찬된 <송고승전> 의상전(義湘傳)에 배를 타기 위해 도착했다고 기록된 해문당주계(海門唐州界)에 대한 해석과 890년 세워진 제천 월광사의 ‘월광사원랑선사비문’에 나오는 직산(樴山) 위치에 대한 해석이다.

서원장은 일부에서 해문(海門)을 현재의 화성시 마도면 해문리 혹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해문역을 지칭한다고 말하지만 당시 해문은 현재의 해문리나 해문역과는 아무 관계가 없고, 바다로 나가는 관문이라는 일반명사로 당항진을 말하는 것일 뿐이라 주장했다. 당주(唐州)는 신라말이나 고려초에 사용된 표현으로 당성군을 말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당주계(唐州界)라는 표현은 ‘당주의 경계지역’으로 당항진에 이르지 못하고 당성의 경계지역에 머물렀다는 것이고, 이 경계지역이 신라시대 교통로를 대입하면 상홀현 일대, 즉 지금의 안중일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원랑선사가 머물며 원효대사의 오도처에서 수행했다는 기록이 있는 직산(樴山)의 위치에 대해서도 서원장은 일부에서 이야기 하듯 현재의 충남 직산(稷山)이 아닌 평택이라고 주장한다.

신라시대 직산은 사산현(蛇山縣)으로 기록되어 있고, 고려시대에 직산으로 개명되었는데, 원랑선사가 수도할 당시의 직산은 사산현으로 불렸다고 한다. 원효와 의상이 661년 당주계에 도착할 당시에는 평택지역 상당 부분이 사산현에 소속되어 있었고, 원랑선사가 이후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직산(樴山)은 서해안 일대의 아산만이나 남양만 일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평택은 신라 최대 교역항 당항성 배후기지 역할

안중읍 자미산성은 신라시대 평택 지역 교통 중심

수도사, 역사·지리적 고증과 구전 통해 볼 때 오도성지 확실

 

▪수도사와 오도성지=현재의 수도사는 현재의 자리로 옮기기 전 괴태곶 봉수대가 있었던 원정리 봉화재산 기슭에 위치했던 수도암이 1960년대에 이전한 곳이다. 서원장은 수도암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LNG 가스기지 건설 때 출토된 토기편이나 기와편 등 유물과 오랫동안 수도암에 걸려 있었다는 원효와 의상의 진영, 수도사 이외에 원효대사와 관련된 전언이나 기록이 있는 사찰이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원효의 깨달음 장소는 수도사 뿐이라 해도 무리한 추론이 아니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서영일 원장 이외에도 충남대 이평재 교수의 “원효대사의 과거, 미래, 현재”, 동국대 정진원 교수의 “신라 붓다 원효문화 콘텐츠 개발”, 플래닝코리아 이병주 대표의 “종합예술공간으로서의 원효마을 개발과 건축에 대하여”, 동국대 석길암 교수의 “원효대사 체험관과 구도순례길 사업 활성화 방안”등의 주제발표와 이상권 전 상명대 교수 등 지역인사들이 참여하는 토론회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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