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_ 이광섭 향토사연구위원 / 시민기자

이광섭 향토사연구위원 / 시민기자

[평택시민신문] 지난 11월 8일 굿모닝병원 해오름관에서 137회 다사리 포럼이 있었다.

다사리 포럼은 민세 안재홍 선생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2006년 9월에 창립된 평택지역의 자발적인 아침학습 대화공동체이다.

이날 모임은 창립 이래 처음으로 안재홍 선생에 대한 윤대식 박사의 ‘정치지성 민세 안재홍이 꿈꾼 나라’라는 주제로 강연이 있었다.

지역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대표적인 인물로 전통과 근대 민족과 이념의 사상가로서의 안재홍 선생을 새로운 관점에서 연구하고 조명한 것이다.

안재홍 선생은 평택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 9차례 걸쳐 7년 3개월 옥고를 치른 항일 독립 운동가이며 한국의 대표적인 언론인이었고 일제 식민사관에 맞선 민족사학자로, 해방 후에는 건국준비원회 부위원장, 미군정청 민정장관, 2대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힘쓴 민족지도자이다.

그러나, 사실 안재홍 선생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는데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안재홍 선생이 2대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택지역주민들의 커다란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으나 그해 6.25 전쟁이 일어난다.

당시 안재홍 선생은 돈암동 서울집에 있다가 북한군에 연행되어서 9월에 북한으로 끌려가게 된다. 안재홍 선생 친구였던 정인보 선생과 남북화해에 노력했던 조소앙, 김규식 선생도 이때 같이 북한에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남한에서 안재홍 선생을 시기하던 사람들이 안재홍은 북한에 스스로 넘어갔다고 선전하고 모함해서 그 이후로는 수십 년간 안재홍 이라는 이름은 남한에서는 잊혀진 채 선생의 가족과 친척들은 이유 없는 온갖 피해를 받고 숨죽이며 살아야 했다고 한다.

그러나 1965년 안재홍 선생 서거 후 1977년에 창작과 비평 잡지에 선생이 살아온 길을 정리한 연보가 나오고, 가족과 친구들에 의해서 책이 발간되기 시작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안재홍 선생이 일제시대 민족운동가로 활동한 사실이 인정되어 1989년에 정부는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의 훈장을 주며 새롭게 평가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안재홍 선생이 살던 집도 현충시설과 문화재로 지정되고, 2000년에는 선생의 뜻을 추모하는 기념사업회도 만들어져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안재홍 선생의 여러 활동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사상가’로서의 삶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생각대로 세상을 살기는 힘들지만 안재홍 선생은 본인의 생각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실천하며 살아갔다.

특히, 안재홍 선생은 ‘중도’의 가치 속에서 서로 협력하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즉 다함께 말하고 다함께 잘사는 세상을 꿈꾸었다.

이것이 순수한 우리말로 제시한 ‘다사리’정신이다.

다사리는 ‘다사리다’ 즉 함께 말하다와 ‘다 살다’ 함께 살다 라는 뜻을 합해놓은 순수한 우리말 이다. 다함께 말하고(자유) 다함께 산다(평등)의 조화로운 삶이라 할 수 있다.

안재홍 선생은 해방된 새로운 조국이 다사리의 정신에 따라 여러 생각들이 자유롭게 이야기 되고, 국민모두가 본래의 분배의 정의를 실감하는 사회가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또, 안재홍 선생은 ‘민세(民世)’ 라는 호를 가지고 있다. 호는 자기의 이름대신 삶의 가치를 나타내는 또 다른 자기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 안재홍 선생이 민세라는 호를 쓸 때는 ‘민중의 세상’이라는 의미로 지은 것으로 무엇보다 더 이상 사람들이 신분에 의해서 불평등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능력에 따라 일하고 차별 없이 최소한의 인간다움은 유지할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중에 민세라는 호는 ‘민족에서 세계’로라는 뜻도 포함하게 되었다.

결국, 안재홍 선생은 모든 사람들이 고르게(平) 윤택하게(澤) 살기를 꿈꾸었으며, ‘중도’의 가치가 새로운 나라의 국민들의 마음에 소중하게 자리 잡고 있기를 바랐다고 할 수 있다. ‘중도’ ‘중용’은 적당하게 중간에서 이쪽저쪽의 눈치를 보는 생각이나 행동이 아니라, 가장 바람직한 목표를 지향하면서 극단적인 생각들의 차이를 좁히려는 노력 즉 더 많이 참고 인내하는 것이 시대정신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윤대식 교수는 “평택시민들은 민세 안재홍 선생과 같은 국가이념의 설계자의 고향 평택에서 살고 있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라고 말한다.

이제 민세 사후 50여년이 지난 오늘날 ‘시민중심의 새로운 평택’은 안재홍 선생의 삶과 정신에 다시 주목해야 한다.

안재홍 선생의 정신적 가치인 ‘다사리 정신’을 평택의 정체성과 이미지 마케팅에 활용 지속가능한 발전 문화도시 평택(平澤)으로 나가면 어떨까?

 

※외부필자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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