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태 없는 흙으로 행복을 빚다

도자기 11년…새로운 삶 열어줘

[평택시민신문]

지난 8월 열린 평택도예가회전에서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이 있었다. 비틀리고 삐뚤어진 집. 가만히 보면 두 개의 창문은 눈구멍 같고 입구는 일그러진 입모양처럼 보인다. 탑층의 지붕은 오른쪽으로 돌아가 있다. 작품 제목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흡사 초현실주의에 영향을 준 이탈리아 화가 키리코의 작품 같기도 하고,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세트장 같기도 해서 작가에게 영향을 받았느냐고 물어보니 아니란다.

“집 앞마당에 세울 우체통을 나무를 사용해 만들었는데, 그만 삐뚤어지면서 둔한 모양이 됐어요. 거기서 영감을 받아서 만든 작품입니다.”

강은숙(55) 작가의 집은 그의 생활공간이면서 공방이 차려진 작업실이고, 작품전시장이자 사람들이 모이는 축제의 장소다. 그만큼 넓고 쾌적하고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며 잘 꾸며져 있다. 뭉툭한 모양의 우체통이 세워진 앞마당은 헐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보는 바비큐 파티의 장소로 알맞아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모레가 도예가들이 모이는 축제란다. 음악도 연주하고 맛있는 음식과 차를 마시면서 손님들은 강 작가가 미리 형태를 만들어놓은 찻잔을 구워내는 체험을 할 것이다. 그가 도자기를 시작한 것은 11년 전이다. 원래는 뉴코아 옆에 있던 패션몰에서 의류가게를 했었다고 한다.

“젊었을 때 의상디자이너가 꿈이었어요. 평택에 와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기르며 옷가게를 17년 정도했죠. 가게를 접으면서 도자기를 하게 됐어요.”

계기는 진위면에 놀러갔다가 미류공방을 방문하게 되면서부터다.

“평소에도 예쁜 그릇 같은 것을 사서 진열해놓기를 좋아했어요. 공방에 가서 가끔 도자기를 구입하기도 하다가 장사를 그만두고 공방에 등록을 했어요. 다달이 회비를 내면 쉽게 그만둘까봐 미리 1년치 회비를 냈습니다. 장사를 하다 보니 사람 상대하는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도자기를 하면 조용한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거의 살다시피했죠.”

그때 미류공방의 박상돌 교수가 손재주가 있고 남달리 재능이 있다며 대학에서 전공하기를 권했다. 그렇게 국제대학교 세라믹 디자인과를 졸업했다. 공모전을 해서 수상도 여러 차례 하고 개인전도 했다. 처음에 그는 이렇게 오래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창의력을 발휘하는 데 있어서 도자기는 무궁무진해요. 만들고 구상하고 생각하고 이런 것이 무척 매력이 있어요. 이런 저런 구상 끝에 구워서 나왔을 때의 행복감도 이루 말할 수 없죠.”

작가의 전시실이자 방문객의 쉼터인 공간에는 크고 작은 다양한 작품들이 있지만 달항아리를 연상시키는 둥글고 커다란 항아리들이 먼저 눈에 띈다. 거칠고 투박한 느낌의 작품들은 고대의 토기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도자기하면 항아리가 중심인데 저는 얇고 매끈한 것보다는 둔탁한 것을 좋아합니다. 둥글둥글하고 푸짐하고 여유 있는 마음의 푸근함을 표현했어요. 정밀하게 하는 사람도 있지만 틀어지고 삐딱하고 정형화되지 않는 그런 것을 추구합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전시회 때 봤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연작들일 것이다. 공방에는 작품의 수가 조금 늘어나있었다.

“정형화 된 나무와 쇠와는 달리 흙은 그 모습이 변화합니다. 틀어지면 틀어지는 대로 휘면 휘는 대로 그 형태를 갖추게 되죠. 비틀어보고 무너뜨려보면서 작품을 만들어나갔어요.”

이 고상한 감각의 예술조상 안에는 등이 설치돼 있어 불을 켜면 외부를 환히 밝히는 훌륭한 인테리어 생활용품이 된다. 선반 위에 가득 놓인 도예가의 작품은 컵, 항아리, 접시, 그릇, 냄비 모두다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것들이다.

“흙으로 웬만한 것은 다 만들어 쓸 수 있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살 필요가 없어요. 최근엔 2층에서 내려오는 계단 벽이 허전해서 도자기를 만들어 놓을까 생각 중이에요.”

강 작가는 도자기가 준 창작의 기쁨, 생활의 기쁨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게 하는 기쁨을 꺼내놓는다. 인터뷰 중간에 손님이 왔는데 오는 11월 평택범이색소폰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에 나서는 가수다. 알고 보니 강 작가도 그날 색소폰 연주자로 공연한다.

“단장님이 여기서 도자기를 배우셨는데, 그때 연주하시는 걸 들었어요. 그런데 불어보라고 권하시는 거예요. 자신은 없었는데 도자기하면서 이벤트로 한 번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중심은 도자기인데 부식처럼 따라온 거죠. 집도 도자기를 하기 위해 땅을 사서 지었고 그러다보니 지인들이 모이게 되고 색소폰 연주도 하게 되고 그렇게 되더라고요.”

우연히 가본 공방에서 삶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 강은숙 작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생각만 하지 말고 일단 시작해보란다. 생각만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지만 막상 해보면 또 다 되게 돼있다고 조언한다. 맞는 말이다. 하고자하는 일의 실천만이 삶의 새로운 문을 열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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