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는 생산에만 집중하도록 로컬푸드 활성화돼야”

 

국내서 흔치않은 초밀식 재배기술 배워 사과농장 경영

농산물 판로 문제는 시가 정책적으로 나서야할 부분

 

 

[평택시민신문] 고덕면 문화마을길에 위치한 민우사과농장에서는 사과나무들 사이의 거리가 30cm밖에 되지 않는다. 이른 바 초밀식 재배다. 평택에서 사과농가는 서른 두 농가밖에 되지 않는데 그중에서도 초밀식 재배를 하는 농가는 여덟 군데뿐이라고 한다.

“1500평에 2000주를 심었습니다. 원래 2000주를 심기 위해서는 3만평이 필요하다고 해요. 초밀식 재배를 하기 위해서 예산 등을 다니며 3년을 공부했습니다.”

땅이 좁은 한국에서 작은 면적에 수량을 많이 낼 수 있고 기후변화 등으로 사과나무의 특성이 상실되면 8년마다 중간에 위치한 나무를 하나씩 베어내는 방법으로 20년간 무난히 과실을 얻을 수 있다.

민우사과농장의 주인인 김준배(73) 농부는 과수원을 2011년에 시작해 벌써 7년째 농사를 이어오고 있다. 농장이 위치한 자리가 바로 출생지라는 그는 원래 공무원 출신으로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시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고덕에서 5대조가 살았고,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셨어요. 당시 집안일을 하는 사람을 둘 정도였으니 살림살이가 중농 정도는 됐습니다. 스물두 살에 공무원 시험을 봐서 합격했고 32년간 공직생활을 했죠.”

그러다 통합 평택시가 생기기 전 지방의회가 만들어져서, 과장급이던 그는 의회에 가서 답변을 해야 할 일이 종종 생겼다. 그런데 초창기 의원들은 자기 사업 등을 하던 민간인 출신들이라 행정업무를 잘 알지 못해 공무원들과 갈등이 있었다. 그걸 보며 의회에 나가봐야겠다고 생각해 4대 지방의원 선출직에 나섰다. 당시 선거구가 읍면단위였던 소선거구제라서 고덕면에 출마했다. 당시 의원들은 당 공천도 없고 무보수였다.

“저는 공무원 출신이었기 때문에 의원들에게 행정에 대해 알려줬습니다. 처음엔 믿지 못하다가도 의원들이 결국 수긍하고 호응을 했죠. 4년 동안 동료의원들하고 많은 접촉을 했고 이해를 시켰어요. 그 당시에는 행정부하고 의회간의 갈등을 최소화하는 그런 역할을 했습니다.”

2006년도에는 당 공천이 생겼고 유급으로 바뀌었다. 선거구도 3~4개 읍면동을 묶어 중선거제로 치러졌다. 후보자가 많았지만 팽성‧고덕‧오성‧청북에 공천이 돼 당선됐다. 그리고 4년 뒤에는 다시 출마하라는 권유에도 불구하고 출마하지 않았다.

“여기서 머뭇거리다가는 발을 빼지 못하겠더라구요. 저도 내 생활, 내 시간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나이도 있었고, 인생 후반기 정리도 해야 하고 그동안 못 했던 것들을 해보고 싶었어요. 건강관리도 하고 여행도 하고, 취미생활도 남다른 걸 가져보고 싶고. 그래서 서예도 해보고, 아프리카, 북미, 중남미등 40여 개국을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고덕국제신도시가 만들어지고 집과 땅이 수용됐다. 그때 보상 받은 돈으로 과수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과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현대 젊은이들이라면 생각지 못할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려서 제사를 지내는데, 통으로 사과를 먹어본 적이 없었어요. 제사를 지낼 때 삼촌들이 사과, 배를 깎으면 그것을 조금이라도 먹으려 껍데기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사과를 통째 한 번 먹어봤으면 하는 게 바람이었죠. 집이 유복했는데도 그랬어요. 당시는 사과는 구하기 아주 어려워 평상시 먹는 건 생각도 하기 어렵고 제사 때 한 조각 맛만 볼 수는 시절이었어요. 6‧25를 겪던 때였죠.”

그리고 성장한 다음 안동에 갔더니 사과나무에 빨간 사과가 그림 같이 매달린 것을 보고 저렇게 멋있을 수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늘 언젠가 나이 들어서 한 번 과수원을 조그맣게 해봤으면 하는 생각을 마음에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껍질이라도 먹으려고 애썼던 옛날과 달리 지금은 사과를 열심히 재배해도 팔 곳이 마땅치가 않다. 평택에서 재배한 사과가 관내 대형마트는 물론이고 농협에서도 다른 지역의 사과와 가격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실정이다. 민우사과농장의 주요 판매처는 직거래와 로컬푸드 매장이었는데 얼마 전 신대로컬푸드직매장이 문을 닫으면서 그나마 있던 판로가 사라졌다. 그는 신대로컬푸드직매장이 문을 닫는 과정에서 시에 수차례 관심을 촉구했으나 시는 사실상 손을 놓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로컬푸드는 가격은 대형마트보다 낮고, 지역의 믿을 수 있는 신선한 식품이라는 점을 어필해서 농민들의 판로를 터주는 중요한 정책이에요. 로컬푸드 매장이 장사만 잘 되면 농민들은 판로 걱정이 없을 텐데 평택시는 신대로컬푸드매장이 결국 폐장하도록 놔뒀습니다. 또 상공회의소를 통해 지역농산물을 쓰도록 권장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하고 있지도 않죠.”

그의 바람은 생산자는 생산에만 신경을 쓰는 것이다. 뚜렷한 판로가 마련되고 판매가 안 되는 시기에는 물량을 주스 등 가공식품으로 만드는 시스템이 있다면 농부들이 희망을 가지고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생산도 걱정 판매도 걱정이다.

인터뷰를 간 날은 날씨가 무척 좋았다. 파란 가을하늘은 높고 사과나무 잎은 무성했다. 겨울 수확을 기다리는 부사나무들은 아직 덜 익은 사과를 가지에 매달고, 자홍이라는 사과나무는 추석 즈음 수확하는 종으로 이미 과실을 모두 거두어 잎사귀만 남아있었다. 농장 한켠에는 알프스오토메라는 일본에서 온 미니사과가 열려있었다.

“기후변화 때문에 대구에서는 사과나무를 베어내고 열대과일을 심고 있어요. 강원도 고성, 홍천까지 사과가 올라갔어요. 여기도 25년쯤 지나면 사과 재배가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그는 재작년에 열에 강하고 빨리 자라는 알프스오토메를 심었다. 10월경 수확해 같은 달 문을 여는 이충로컬푸드매장에 가져가 팔 생각이다. 그는 판로, 인건비, 수익 등의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과실이 주렁주렁 매달린 아름다운 사과나무 옆에서는 활짝 웃는다.

“과수원을 팔아서 투자를 해보라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나이도 있는데 농사를 접으면 앞으로 뭘 하나요? 사람은 일을 하지 않으면 더 빨리 늙고 몸도 아픈 법이에요. 매일 사과나무를 돌아보고 사과가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연과 함께 하는 지금의 생활이 좋습니다.”

동시에 그는 농업농촌의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다.

“지금 농촌은 인력난으로 애를 먹고 있고, 나이든 고령농사종사자들이 힘들어하고 있어 이제는 그간의 농업농촌의 재능을 젊은이들에게 넘겨줬으면 합니다. 귀농귀촌으로 젊은이들이 농업에 참여한다면 한국의 농업은 희망의 빛이 보일 수 있을 거예요.”

그의 말대로 농촌사회는 고령화와 인구감소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게 사실이다. 농업농촌의 붕괴는 곧 식량안보 등의 위험으로 이어진다. 이를 대비해 한시라도 빨리 농업의 중요성, 농업의 노동과 가치가 인정되는 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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