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순 한국사진작가협회 평택시지부장 / 시민기자

[평택시민신문] 내가 정도전 사당을 세 번째 찾아갔을 때의 일이다.

봄을 맞이하는 꽃나무들이 봄비를 맞으며 꽃봉오리들을 병아리 주둥이 마냥 뾰족뾰족 내밀 무렵이었다. 그 날의 기억이 특별히 지워지지 않는 것은 어느 부녀의 모습 때문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보이는 소녀와 젊은 아빠가 보슬보슬 봄비 속에서 손을 꼬옥 잡고 나비처럼 나는 듯 걷는 듯 팔랑거리며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정도전 사당에 가서 정도전이라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공부나 할 것이지 웬 부녀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을까?

조선의 건국이념을 설계한 정도전이 오늘 날 이 모습을 보았더라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니, 내가 지금 저 소녀가 된다면 아버지와 나란히 손잡고 걸어갈 수 있을까? 시대적으로 요구되는 아버지상이 자꾸 변화해 간다는 걸 어느 책에서 읽었던 거 같다. 한때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였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이 있다. 한창 경제적 성장에 주력하던 시대에는 부자 아빠가 필요하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어느 정도 경제부국의 대열에 들어섰다는 의미에선지 오늘 날엔 자녀들과 소통하고 잘 놀아주는 아빠가 요구되는 시대인 거 같다.

티브이에서도 남자들 육아에 관한 프로가 굉장한 이슈로 등장하여 인기를 끌고 있다.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내가 자라나던 6,70년대의 아버지는 그저 가장으로서 과묵하고 가까이 다가서기엔 너무 어려운 근엄한 분이셨다. 그러고 보니, 내겐 딸이 없어 남편과 딸의 사이를 엿볼 기회조차 없었던 셈이다. 그러니 내겐 아버지와의 거리는 메워지지 않는 평행선 같을 수밖에.

내가 결혼하고 큰 아이를 낳아 친정에서 몸조리할 때의 일이다. 아버지는 서랍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시더니, 하나하나 설명해 주시는 거였다. 이제까지 아버지가 딸인 나에게 당신에 대해 자상하게 말씀해 주셨던 기억이 없었다. 나는 아버지가 살아오신 발자취를 한눈에 보는 것 같아 벅차기도 하고 거리감을 좁혀 가깝게 다가간 듯한 느낌이었다. 그때 그 감정이 사그라들기 전 감회를 글로 남기고 싶어 졸시를 끄적거리던 이십 여 년 전의 내가 정도전 사당의 소녀를 그리며 떠올린 아버지와의 다정한 관계를 증명하는 자료가 되었다.

 

아버지의 문갑

어느 날 고즈넉이 자물쇠 채워진 서랍 열어
저 너머의 세월 꺼내 보이시던
주름진 손마디가 눈에 어른거립니다

세월을 찍어 낸 사진들이
한 시대의 사명으로서 유용한 증명서마다
새의 발자국처럼 박혀 있었습니다

일등성, 이등성의 밝기로 쏘는 큰 별의 광량으로
아버지의 어깨 빛내 준 훈장은 아니어도
총총이 여백의 선 따라 질서 지키고 있는 뭇별들

저희들 가슴 한 복판 몽글한 젖멍울로 자리잡습니다
구차스런 삶과 삶의 실루엣 속에서도
길 열어 줄 무언(無言)의 말씀들

제 마음의 갈피로 부옇게 물안개 피어오릅니다
작은 공간 안에 수장되어
숨결 고요한 이끼꽃들

평소 과묵하시다가 세심한 보살핌의 더듬이로
일침을 주시는 깊은 사랑
당신의 문갑 원목의 나이테로 새기고 싶습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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