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도, 피에타상도 존귀합니다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중대한 인권침해이자 전쟁범죄의 성격을 띠는 사건’으로서 대한민국 정부에 책임이 있다

조정묵 평택포럼 이사

[평택시민신문] 올해는 한국과 베트남 수교 2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난 3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두 번째 해외 방문지로 베트남을 방문했습니다. 문대통령이 제시한 신(新)남방정책의 교두보가 베트남으로서 외교적으로, 경제적으로 중요한 우방국가 인 것입니다. 베트남은 한반도 면적의 1.5배로서 국토가 태평양을 끼고 길게 늘어서 있어 해양자원이 풍부하며, 인구는 2016년 기준 1억명이 약간 안되는 9270만명입니다.

2015년 이후 6% 후반대의 고도성장을 이루며 30대 미만 인구가 절반이 넘어 성장 잠재력이 큰 나라입니다. 한국무역협회는 2020년이 되면 한국의 베트남 수출이 미국을 제치고 중국 다음가는 수출시장으로 자리매김한다는 예측을 했습니다. 2017년 한국의 베트남 무역흑자는 315억 달러로 대미 무역흑자 178억 달러를 훌쩍 넘어섰습니다. 그런가 하면 베트남 U-23축구팀을 아시아대회 준우승으로 이끈 박항서 감독은 ‘국민오빠’로 불리며 국민영웅으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한국의 K-POP에 열광하는 베트남 젊은이들, 한국 TV연속극, 한국영화에 익숙한 베트남 국민들을 보면, 부지런하고 예의바르고 가족중심적인 동질성을 갖고 있는 같은 유교문화권 국가로서 정치, 외교, 경제, 문화, 스포츠 등 다방면으로 우호교류를 통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양국간에는 지울수 없는 어두운 과거사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23일 한베정상회담에 앞선 머리발언에서 “우리마음에 남아 있는 양국간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사과의 뜻을 전했습니다.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과 관련해서는 1998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한국과 베트남 두나라 사이에 한때 불행한 시기가 있었다”고 처음으로 과거사를 언급했고 2001년에는 “불행한 전쟁에 참여 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인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진일보한 사과를 한적이 있습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도 “우리 국민들은 베트남에 마음의 빚이 있다”고 사과 발언을 했습니다. 진보적인 대통령들께서는 미약하나마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하여 사과를 했지만, 보수적인 대통령들께서는 애써 그 문제에 대하여 외면한 것도 사실입니다. 아니 보수정권시절에는 베트남 파병문제의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 조차 금기시 돼 왔습니다.

올해 1월에 <한겨레21>은 한국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50주년을 맞아, 한베평화재단과 함께, 1회 1968 꽝남 대학살지도, 2회 무고한 죽음에 대한 예의, 3회 살아남은 자의 물음 등 2주간격으로 세차례에 걸쳐 ‘1968 꽝남꽝남’기사를 연재했습니다. 꽝남성은 사드사태 이후, 중국 대신 한국관광객이 많이 찾는 다낭 밑에 있는 곳입니다.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 구수정 박사의 발표에 의하면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은 80여건에 달하며 꽝남성에서만 4000여명 총 5개성에서 9000여명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경기도 화성시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에 가면 제노사이드(인종, 이념등의 대립을 이유로 특정집단의 구성원을 대량학살하여 절멸시키려는 행위)실에, 나치의 유태인 학살, 스페인 내전 게르니카 민간인 학살, 캄보디아 폴포트정권 민간인 학살 등 세계의 다양한 민간인 학살 역사를 소개하는 자리에 한국군의 베트남 하미마을민 135명의 학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군에 의한 참혹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의 순국기념관에 가혹한 한국군 가해자의 역사도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에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로 불린 파월장병들에게 베트남 민간인학살을 문제삼아 가해자의 멍에를 씌울 수 있는지요. 그 당시 파월장병들은 국가의 반공이념, 냉전체계의 국제정치적 배경, 사회 경제적 위치 등 후진국가의 틀 속에서 경제적 약자이며 정치, 사회적인 약자들이었습니다. 귀국 후 겪은 전쟁의 트라우마, 고엽제 후유증, 사회적 냉대 등 고통속에서 사망하거나 살아온 추악한 전쟁의 피해자들입니다. 그들의 핏값, 목숨값으로 풍요로운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올해 4월21일~22일 양일 간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 법정에서 재판장인 김영란 전 대법관은 ‘중대한 인권침해이자 전쟁범죄의 성격을 띠는 사건’으로서 대한민국 정부에 책임이 있음을 선고하였습니다. 시민법정 판결은 법적구속력은 없지만, 가해자가 누구인지, 주체가 누구인지는 명확히 밝힌 것 같습니다. 일본 위안부 피해자로서 일본에 사과와 배상을 요구해 온 대한민국이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가해자로서 이를 숨기고, 은폐하고 변명하면 일본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국가차원의 공식사과도 중요하지만, 이에 앞서 그 시대의 역사적 사회전반적인 공감대를 형성해 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사회각계 각층의 공감대를 통해 국가차원의 공식사과가 있을 때, 비로소 양국간의 신뢰가 형성될 수 있다고 봅니다. 참고로 서울시 용산구와 베트남 꾸이년시의 교류협력 사례를 소개하면서 화해의 실마리를 찾고자 합니다.

1992년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한 이후 용산구는 1996년 지방자치 단체로는 최초로 베트남 중부 항구도시 인구 28만명의 꾸이년시와 자매결연을 맺었습니다.한국에 대한 부정적 여론, 특히 민간인 학살에 대한 꾸이년 노인들의 증오는 극심했지만 용산구는 ‘젊은이들을 위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보자며 장학사업도 벌였고, 집도 지어줬고, 의료사업도 하며 말로만 하는 사과가 아니라, 행동으로 용서를 빌며 신뢰를 쌓았습니다. 베트남은 따가운 햇볕에 오래 노출 돼 백내장을 앓는 사람이 많은데 이를 알게 된 용산구는 2013년 4월 꾸이년 백내장센터를 세운 뒤 매년 2차례 의료진이 가서 수술하고 현지 의료인에게 의술을 전수해 지난 해 10월까지 2600명이 수술을 받고 실명 할 위기를 넘겼답니다. 용산구 이태원 보광로에는 ‘베트남 꾸이년길’이 있고 꾸이년시에는 ‘용산거리’가 있는데 베트남 도로명중에는 외국도시 이름을 딴 예가 없다는데, 이 모두가 그 동안 쌓아온 신뢰가 어두웠던 과거를 씻어내고 새로운 밝은 미래를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길라잡이가 되는 좋은 선례가 될 듯 싶습니다.

이번에 23년간 이어 온 시민단체 평택포럼(대표 이재덕)에서 베트남에 관심을 갖고 한베 평화재단 상임이사 구수정 박사를 모시고, 한국군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 및 양국간 시민우호교류 발전방향에 대해서 강연회를 갖고자 합니다. (6월 19일 18시 남부문예회관 3층 세미나실)

평택도 다문화 가정 중 베트남댁이 제일 많고 본인도 모르게 일가친척이 되어 있습니다. 평택대, 국제대에도 베트남 학생이 수 백명 유학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강연회를 통해 베트남 전쟁 한국군 민간인학살 진상을 확실히 알고 ‘우리 모두가 가해자‘라는 인식하에 베트남 국민에게 사죄를 할 때 비로소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용산구의 사례를 보면서 평택시도, 평택시민들도 베트남 시민들과 서로가 화해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겠습니다. 소녀상도 존귀한 만큼 피에타상도 존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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