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한 책 하나되는 평택' 연중 릴레이 기고 22 _ 현미진 홍원초등학교 교사

“선생님 우리 아빠는요, 잔소리가 너무 심해요.”, “내 생각은 안 듣고 아빠 얘기만 해요. 아빠와는 대화가 안 통해요.” 집집마다 수많은 아버지와 아이들이 있고 교육 방침도 그만큼 다양하다. 하지만 아이가 아버지에 대해 볼멘소리를 하는 것은 어디서든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굳이 아이들 얘기를 빌리지 않고서도 ‘아버지’라는 말에는 조선시대 같은 권위주의적 말투, 공부 잔소리, 터놓지 못하는 어색한 사이 등등 부정적인 느낌이 떠오르는 게 사실이다. 아버지들의 항변도 대단하다. “요새 애들은 버릇이 없어서.”라는 불만도 나오고, “차라리 옛날이 좋았지…….”라는 한탄도 들린다. 그런데 정말 옛날의 아버지들은 상상처럼 하나같이 깐깐한 분들이었을까? 이런 사소한 궁금증에서 출발하는「조선의 아버지들」은 우리 역사 속 아버지들의 행적을 살펴봄으로서 아버지의 존재와 역할, 그리고 진정한 아버지다움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여지를 준다.

사실 조선시대 아버지는 전형적이지 않았다. ‘아버지다움’의 스타일도 달랐고, 교육법도 달랐다. 「목민심서」로 유명한 정약용은 ‘가족의 소중함’을 누구보다도 중요시했다. 유배당하여 고향에 두고 온 아들들에게 편지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서울 근교에 터를 잡고 과일과 채소를 가꾸며 생계를 유지해라.”, “늘 심기를 화평하게 가져라.”, “항상 당당하여라.” 그의 편지에는 자식 걱정에 밤잠 못 이루는 아버지가 있다. 폐족의 위기에서도 가족끼리 서로 배려하고 마음 쓰며 가족을 지키려는 정약용의 당부가 들리는 듯하다. 학자 김장생은 어린 아들을 대함에 있어서도 공경하고 예를 다하려 했다. 비록 서자라 하더라도 적자와 다름없이 귀한 자식으로 차별하지 않았고, 아들이 질문하면 병상에 누워 있다가도 몸을 일으켜 앉은 채로 대답하였다고 한다. 호통치는 권위적 모습으로 묘사되는 조선 아버지의 환상을 깨는 대목이다. 대예술가로 알려진 김정희는 권위 없이 아내와 자식들에게 자기 감정을 진솔하게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의 편지에는 아내에게 투정도 더러 부리고, 자기 잔병을 구구절절 늘어놓고 위로받고 싶어하는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다. “여름이라 참외가 맛있을 테니 자시기 바라오.”라는 대목에서는 세심하게 아내를 아끼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가족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소박한 일상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그의 마음이 엿보인다. 성리학자 김인후는 요즘 말로 ‘딸바보’ 그 자체이다. 시집간 딸을 걱정하며 한숨짓고, 막내딸을 어린 나이에 잃고 무덤가에서 목놓아 울기도 하고, 자식처럼 아끼는 사위의 출세길을 위해 주변 친구들에게 어려운 부탁도 하는 등 딸 내외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자식 취업을 위해 본인보다 더 활발히 움직이는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조선의 아버지들」을 통해 본 그 시대의 아버지들은 마냥 권위적이지도 않았고, 고집쟁이도 아니었다. 다양한 아버지들이 자기 방식대로 아버지 역할을 했고, 실패하기도 하고 성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았을 때 결코 다르지 않은 점이 있었다. 자기의 안위는 뒤로 한 채 무엇보다 자식을 위하는 마음이 그것이었다. 가정교육의 실패에 대한 두려움, 자녀와의 갈등, 소통 문제로 고민하는 우리 시대 아버지들이 많다. 하지만 수백 년 전 조선의 아버지들에게도 ‘아버지다움’은 고민거리였다. 자식새끼 키우는 것이 내 마음 같지 않다고 하지만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 하나라도 더 가르쳐 보내고 싶은 마음은 똑같지 않았을까? 우리의 선배격인 조선의 아버지들로부터 배워 보자. 내 마음 편하라고 공부하라고 잔소리부터 하기 전에 말이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정약용처럼 아이에게 마음이 깃든 편지를 전달해 보고, 김정희처럼 솔직하게 아버지로서의 감정을 드러내 보기도 하면 어떨까?

 

현미진 홍원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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