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을 마시며 _ 유정이 시인 / 경희대학교 겸임교수

엄마가 조용히 하라고 해서 조용히 했습니다

아버지도 조용히 있으라 해서 조용히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더 조용히 하라 해서 다시 그렇게 했습니다

애인도 계속 조용히만 있으라 해서 줄곧 조용히만 있었습니다

남편이 매일매일 조용했으면 좋겠다 해서 매일매일 그렇게 했습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조용했습니다

엄마는 왜 이리 조용하기만 하냐고 아이들이 물어서 너도 조용히 해!

혼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러고 나니 갑자기 조용히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하면서 보낸 생의 반나절 이제부터는 조용하지 말자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자꾸 조용히만 하는 겁니다

오래 꿇고 있던 무릎처럼 생각이 잘 펴지지 않는 겁니다

어쩌지요, 나는 자꾸 조용하기만 해요

저절로 조용하려고만 해요 나도 모르게 조용 속에 꽁꽁 갇혔어요

밖에 누가 안 계세요?

이, 말의 옥문 좀 열어 주세요

잠자는 이 혀 갈아끼워 주세요

혹시 거기 누구, 아무도 없나요?

 

유정이 시인 / 경희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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