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섶길에서의 짧은 생각
돌의 인상·기억·관념들

박경순 시인/한국사진작가협회 평택지부 지부장

[평택시민신문] 여름 휴가차 금강 근처에 다녀왔다. 여덟 가구의 부부 모임인지라 인원이 적지 않았다.

2박 3일 간 한 솥 밥을 먹어야 하는 다정한 세계는 밥물처럼 끓어 넘쳤다. 남편들은 어린 아이의 시절로 돌아가기라도 한 듯 투망을 던져 고기를 잡는 놀이에 몰두하는 것을 보니 예순을 넘긴 나이라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어린애가 따로 없다는 생각을 하며 몇몇 아낙들과 함께 강변 모래밭을 걸었다.

돌이 아이의 머리 만하게 크고 둥근 데다 예쁘기까지 했다. 맨발로 걸어도 둥근면에 닿는 발바닥의 감촉이 보드라웠다. 강을 따라 한참을 걷다가 출발점으로 돌아갈 무렵이었다. 약속이나 한 듯 손에는 돌을 들고 걸어가는 아낙들을 볼 수 있었다. 물론 나도 지층이 곱게 새겨진 돌을 들고 걷다가 더 맘에 드는 돌이 있으면 내려놓고 바꿔들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그만큼 탐나는 돌이 많았다. 돌을 채취하는 것이 금지된 곳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이 돌 오이지 눌러 놓으면 좋을 거 같지요?”하며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돌을 내보이는 거였다. 돌의 쓰임이 어찌 그리도 한 마음으로 통했는지 우리는 마주보며 그저 웃을 뿐이었다.

돌이 다 같은 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수석이라는 이름으로 전문인의 손길을 거쳐 수억의 가치를 지닌 돌로 둔갑하기도 한다. 사람 팔자만 시간문제가 아니라 돌의 운명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지난 봄 섶길의 표지석으로 사용될 만 한 돌을 운반하는 작업을 지켜보았다. 어디에서 그렇게 많은 돌들이 운반되었는지 한 곳에 모아놓은 돌들이 야트막한 돌산을 이루고 있는 듯 했다. 사람의 힘으로 옮기기엔 무거운 그 돌들은 포크레인으로 옮겼다. 떠나온 곳을 그리워하기라도 하듯 황토 흙이 그대로 묻어 있는 것이 정겹게 느껴졌다.

얼마 후 돌에 섶길 표지 글을 쓴다고 하여 기록에 담기 위해 카메라를 메고 합류했다. 말끔히 씻겨진 돌은 마치 시골 색시의 티를 벗고 도시 처녀가 된 듯 한 모습이었다.

돌에 어떻게 글을 새길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내 눈 앞에서 놀라운 모습이 펼쳐졌다. 화선지 위에서만 쓰는 붓글씨인 줄 알았는데, 일필휘지로 돌에 쓰여지고 있는 필체를 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매끄러운 곳에도 잘 나가지 않는 붓 끝이 거칠고 메마른 돌 위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걸 보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서예가의 그 능수능란한 글 솜씨도 놀라웠지만, 먹글씨가 순순히 스며드는 돌의 속성에 새삼 감탄했다. 그러면서 곁에서 남편의 작업을 묵묵히 거드는 아내의 모습을 가슴에 곱게 새겼다

옛 말에 좋은 기억은 돌에 새기고 나쁜 기억들은 물에 새기라는 말이 떠올랐다. 오래 기억하고 싶은 부부의 모습도 좋고 섶길의 코스에 맞게 새겨지는 다양한 글씨체를 보는 것도 커다란 보람으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돌에도 저런 흡수력이 있었다니 우리가 흔히 무뚝뚝한 사람을 가리켜 돌 같은 사람이라고 하는 건 잘못된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고쳐보기도 했다.

묵묵히 말도 표정도 없는 돌에 대한 초상은 각자의 몫일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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