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존재를 공경했던 이황의 태도는 우리가 배워야 할 삶의 자세

퇴계 이황, 보수적이지도 않고, 부자도 아니었던 조선의 스승

말이 아니라 편지로 자식을 훈계했던 이황

퇴계 이황

평택시립도서관의 ‘보통사람들의 인문학’에서 5주 동안 5명의 조선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백승종 교수가 지난 18일에 ‘한 시대의 아버지, 이황’이라는 제목으로 두 번째 강의를 이어나갔다. 이날 백 교수는 일반 고정관념과 다른 이황을 소개했고, 이황의 삶이 우리게 주는 울림, 그리고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이황을 조명했다.

 

이황은 보수적인 부자?

이황이라고 하면 조선 성리학의 아버지로 여겨지기 때문에 성리학의 그 이미지 그대로 퇴계도 보수적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하지만 백승종 교수는 “15~16세기 당시 관점으로 보면 퇴계는 보수는커녕 보수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며 “당시 이황의 성리학이 시대적 이념으로 자리 잡기 전이기 때문에 그의 사상은 진보적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황이 부자라는 생각도 잘못된 것이라고 백 교수는 주장했다. “16세기 땅을 많이 가졌다고 해도 지금의 ‘부자’로 볼 수 없다. 소유한 땅이 여러 군데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땅을 갖고도 굶는 상황이 발생했다”며 “서적에는 이황이 배를 굶을 때가 많았다고 적혀 있는데 이를 어떤 이들은 ‘청렴’을 강조하기 위한 거짓말로 보지만, 그가 써 놓은 다양한 책들을 비춰봤을 때 나는 그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모든 사람과 존재를 공경한 이황

백승종 교수는 “조선의 아버지들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그들의 지식이라기보다는 그 분들의 삶의 태도, 삶의 방향, 생각”이라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이황의 모습을 소개했다.

백 교수는 다양한 모습 중 모든 존재를 공경하는 이황의 태도를 강조했다. “본래 ‘군자’는 왕자를 의미하지만, 공자는 도덕적인 완성자를 군자로 봤다”며 “이황도 공자의 가르침을 따라 모든 인간이 ‘군자’가 될 수 있다고 봤고, 공부를 하기 위해 자신을 찾은 사람은 신분을 가리지 않고 받아줬다”고 백 수교는 전했다. 이는 신분이 명확했던 조선시대를 생각하면 파격적인 모습이었다.

호남의 젊은 학자였던 기대승과 사칠논변을 이어갔던 이야기도 퇴계의 타자를 공경하는 마음을 보여준다. 당시 사회적 지위를 생각하면 젊은 학자를 상대로 긴 기간 동안 논쟁을 한 이황이 “권위를 따지려고 하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고, “서로의 주장을 받아들이며 닮아가는 과정을 통해 이황이 타인을 함부로 얕보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난다.

종을 대할때도 마찬가지었다. 백 교수는 “증손자에게 젖을 먹일 사람이 없어 이황의 손자는 이황의 여종 중 젖이 나오는 하인을 유모로 보내달라고 요청하지만, 이황은 거절한다. 그 종을 손자에게 보내게 되면 종의 자식은 죽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며 “증손자를 살리기 위해서 종의 자식을 죽일 수 없다고 생각한 이황이었다. 이것이 진짜 양반이요, 진짜 학자의 모습이다”고 설명했다.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이황

타인을 공경했던 이황의 모습은 부부관계에서도 확인된다. 백승종 교수에 따르면 “선비라는 사람은 아내를 잘 모실 줄 알아야 한다”고 이황은 가르쳤고 “어떠한 경우에도 이혼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 이유는 당시 법이 엄격해지면서 이혼한 여성이 재혼할 수 없었고, 이는 사회적 약자가 되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로서 이황은 ‘말’로 자식에게 훈계하지 않았다. 그가 자식의 훈계를 위해 선택한 것은 ‘글’이었다. 백 교수는 “이황은 심각한 말을 할 때, 나무라는 말을 할 때 편지로 자신의 생각을 자식에게 알렸다. 말로 하면 잔소리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며 “이황은 정성스러운 편지를 통해 본인이 잘못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했다”고 전했다.

 

백승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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