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균 평택대 미국학과 교수

[평택시민신문] 대선이 끝났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 국내외적으로 난제가 산적해 있다. 우선 파면된 직전 대통령의 재판이 시작될 것이다. 재판을 둘러 싼 사회적 갈등의 소지는 여전히 크다. 청년 취업을 비롯한 경기 활성화도 시급한 문제다. 대외문제도 급하다. 당장 사드(THAAD)문제가 있다. 중국의 반대뿐 아니라 비용문제를 놓고 미국과도 이견이 노정되었다. 거기다 미국은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을 재협상하자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위안부 문제로 일본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않다. 또한 북한의 핵은 어찌할 것인가?

대선의 승패는 갈렸지만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대선으로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다. 총칼을 쓰지 않을 뿐 대선은 전쟁과 다르지 않았다. 상대방의 등에 비수를 꼽기 위한 살벌한 설전이 연일 계속되었다. 흑색선전도 난무했다. ‘선거전’이란 말 자체가 ‘전쟁’을 뜻하는 표현이다. 평화적 내전을 치른 셈이다.

그러나 대선의 승자는 점령군이 아니다. 행정부는 장악하였지만, 국가 권력은 3부로 나뉘어져 있다. 무엇보다 야당의 협조 없이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과거 독재정권들은 폭력으로 야당을 억압해 문제를 해결했다. 더 이상 폭력은 용서되지 않는다. 가능하지도 않다. 야당의 협조를 얻을 유일한 방법은 소통뿐이다. 소통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 못하지만 소통 없이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 민주정치이다.

우리보다 민주정치를 먼저 경험한 미국을 살펴보면 성공한 대통령은 모두 소통에 성공했다. 최근 가장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되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성공 비결도 소통이었다. 그는 재임 중에 ‘위대한 소통자(Great Communicator)’로 불려 질 만큼 소통을 중시했다. 1980년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미국은 국가적 난국에 처해 있었다. 베트남 전쟁의 상처와 오일쇼크의 여파로 미국의 경제와 사회는 깊은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워터게이트 스캔들 이후 민주당과 공화당은 서로 불신의 높은 벽을 쌓고 있었다. 거기다 러시아(구소련)와의 냉전 상황도 악화되고 있었다.

신임 대통령 레이건은 3가지 핵심 공약을 추진해야 하는 정치적 과제를 안고 있었다. 규제축소, 감세, 그리고 복지개혁이었다. 모두 민주당 정부에서 추진하였던 정책과 정반대의 정책들이었다. 그런데 상원과 하원은 모두 야당인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었다. 야당의 협조 없이는 개혁안의 논의조차 불가능한 형국이었다. 실제 레이건의 개혁안에 대한 민주당의 반대가 거셌다. 그러나 임기 첫해 동안 레이건은 자신의 핵심 공약을 대부분 실천할 수 있었다.

비결은 소통이었다. 레이건은 하원의장이던 민주당의 팁 오닐의원을 백악관으로 초청하여 격의 없는 대화를 수시로 나누었다. 국가를 위한 혁신을 피력했다. 레이건은 20년 가까이 개혁에 대한 자신의 정치철학을 바꾼 적이 없었다. 선거용으로 급조된 공약이 아니었다. 주장의 진정성이 있었다. 또한 레이건은 의회를 직접 방문해 야당 의원들과 만났다. 당시까지 의회를 방문해 의원들을 직접 설득한 대통령은 레이건이 처음이었다. 대통령의 진정성 있는 소통에 야당의원들도 입장을 바꾸었다. 1930년대부터 시작된 민주당 정부의 진보주의 정책들이 레이건의 보수정책으로 대체되었다.

이번 대선으로 우리 정부의 얼굴이 바뀌었다. 새 정부의 입장은 기존의 보수정부와 정반대이다. 보수정부 시절의 정책들을 새로운 정책으로 바꾸어 놓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입장이 바뀌어 이제 야당이 된 보수진영의 반대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소통만이 답이다. 소통하고 또 소통하여 민주 정치의 새로운 역사가 우리 정치문화에 깊이 뿌리내리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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