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광화문은 관대했다.

청소년들의 이야기에 경청해주었고, 환호해주었다.

하지만 딱 광화문까지였다.

광화문을 벗어난 일상은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김벼리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흔히 우리는 민주화를 이끈 주축이 ‘80년대 학번들’이라고 알고 있지만, 1980년대 말 부터 1990년대 까지 중·고등학생 신분으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이들이 있다.

이들은 교사 탄압에 항거해 수업 거부, 등교 거부, 시험 거부 등 집단행동과 교내민주화를 위한 운동을 하였으며 명동성당에 모여 "노태우를 당선시킨 기성세대 각성하라!"를 외치기도 했다. 하지만 변화의 바람이 잦아들면서, 온몸을 바쳐 사회운동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제대로 된 기록도 없이 잊혀졌고, 제도교육에 적응하지 못해 학교를 떠나기도 하였다. 그 당시의 체험을 담은 책 ‘나무에게서 온 편지’, ‘나는 언제나 술래’를 보면 당시 이들이 얼마나 방황하고 공허하였는지 알 수 있다. 광장에서의 외침이 일상으로 스며들지 못하였다.

3월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축제의 분위기 속에서 함께 박수 받아야 하는 것은 단연 청소년들이다. 시대를 역행하는 국정농단 속에서도 한 줄기의 빛을 볼 수 있게 해준 것은 수능시험과 입시준비에도 불구하고 광화문과 거리로, 현실 정치로 뛰어든 청소년들이었다.

정치와 사회참여에서 청소년은 늘 외면당하거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그런 청소년들에게 광화문은 관대했다. 이야기에 경청해주었고, 환호해주었다. 언론은 청소년들의 발언과 요구사항들을 즉 각 조명하였고, 정치권에서는 청소년 투표권을 주요 쟁점으로 다루기도 했다. 당장이라도 변화가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딱 광화문까지였다. 광화문을 벗어난 일상은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급식 충’, ‘중2병’, ‘어린 것’이란 프레임 속엔 여전히 청소년 혐오가 만연하고, 코앞까지 다가온 줄 알았던 투표권은 시기상조였으며 일부 집회 참여 학생들에게 돌아오는 말은 “왜 이렇게 나서냐.”, “교복입고 뭐 하는 거냐.”였다.

그렇기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물러난 봄이 청소년들에게까지 따뜻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촛불이 꺼진 광장은 청소년들에게 정치참여의 단절로 이어질 수도, 청소년의 이름으로 주목받았던 20살의 누군가에게는 매정한 헬 조선의 현실로 다가오게 될 지도 모른다.

청소년뿐만이 아니다. 여성, 성소수자, 노동자, 농민도 마찬가지다. 광장에서는 모두가 환영받았지만,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각각의 제도개혁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울타리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들은 또 다시 외면당하고 소수자가 될 것이다.

80년대~90년대 뜨거웠던 ‘고등학생 운동’ 주역들을 보며 생각한다. 탄핵 정국에서 목소리 냈던 2017년의 청소년들은 어떻게 광장에서의 촛불을 일상으로, 교실로 옮겨갈 수 있을까.

“그때 우리들이 바꾸려 했던 현실의 문제들은 지금 광화문 광장에서도 여전히 배회하고 있지요.” (「나무에게서 온 편지」 - 하명희)

6개월에 가까운 시간동안 촛불을 들었던 청소년들은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다. 나라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청소년들은 언제나 앞장섰다. 그러나 이들의 요구를 제대로 뒷받침해주는 기반이 없다면, 단순히 게릴라 모임쯤으로 취급한다면, 2017년의 우리는 또 다시 잊혀지고, 우리들이 바꾸려 했던 현실의 문제들은 앞으로도 광화문 광장에서 여전히 배회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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