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어머니 이름과 얼굴만이라도 알고 싶어"

2015년 유전자정보 제출했지만 아직 찾지 못해

지난 3일 미국 입양인 이소라(47)씨가 46년 전 헤어진 부모님을 찾기 위해 평택을 방문했다. 1970년 11월 1일 경 태어난 이 씨는 11일 평택면사무소에서 천혜고아원으로 보내졌고, 이틀 뒤인 13일부터 서울 홀트 아동복지회에서 5개월 정도 머문 후 1971년 4월 22일 미국으로 입양됐다.

이 씨는 이날 어머니를 찾는다는 내용의 전단지 50여 장을 들고 신평동 주민센터, 원평동 주민센터 등 평택 지역 내 6곳을 방문해 관계자와 이용자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었다.

그녀가 친모를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그녀가 마흔 살 되던 해였다. 한국에 처음 방문한 것은 22년 전인 1995년이었지만 20대였던 그녀는 당시만 해도 한국인인 자신이 한국에 있다는 것에 큰 감흥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그녀가 마흔 살이 되었을 때 불현듯 한국에 관심이 생겼다고 한다. 그녀는 그 이유에 대해 나이가 들어 직업이나 친구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고 그러다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인생에서 한국과 낳아주신 어머니는 떼어놓을 수 없는 단어였다.

이 씨가 본격적으로 어머니를 찾기 위해 평택을 방문한 것은 2015년이었다. 어머니를 찾기 위해 자신의 유전자를 경찰에 제출했으나, 상대방도 유전자를 제출해야만 맞춰볼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합치되는 유전자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실망스러울 수 있는 결과였지만 자신은 어머니의 이름, 주소, 얼굴도 알지 못하고 어머니와 떨어지게 된 이야기도 모르기 때문에 찾는 것이 어려웠을 거라며 이해한다고 했다.

“적어도 엄마가 누군지만 알고 싶다.” 이 씨의 소망은 소박했다. 어머니의 이름, 어머니 얼굴, 어머니에 대한 것, 자신을 입양 보내게 된 이야기만이라도 알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했다. 다만 자신이 올해 47세이고 어머니는 아마 70세가 다 되셨을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하다며 약간 조급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씨는 ‘소라’라는 자신의 이름에 애착이 많다고 한다. 지금은 한글 이름이 많지만 1970년대만 해도 한글 이름은 흔치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에 대한 특별한 단서가 될 것이라며 아마 어머니는 평범한 분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덧붙여 어머니는 고정된 틀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었을 것 같다며 그 부분은 자신과 닮은 것 같다고 웃었다.

작년에 서울에서 추석을 보냈다는 이 씨는 추석의 의미를 작년에 처음 알았다고 한다. 다들 고향으로 내려가 서울이 텅텅 빈 것을 보며 어머니 생각이 났다고 한다.

“엄마와 아주 가까이 있는데 아주 멀게 느껴졌다. 나는 한국에 있고 기차 한 번이면 금방 올 수 있지만 엄마가 어디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어머니와 단절된 것 같은 기분을 다시 한 번 느껴 슬펐다고 전했다.

이 씨는 미국 경찰에도 유전자 정보를 제출했고 거기서 이 씨와 매우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육촌을 만났다. 이 씨의 육촌 역시 서울에서 미국으로 입양되었고 이 씨와 마찬가지로 가족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한다. 이 씨는 자신의 어머니와 육촌의 어머니 역시 가까운 사촌일 것이라며 자신이 어머니를 찾으면 육촌도 찾을 수 있고, 육촌이 어머니를 찾으면 자신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희망을 가졌다.

이 씨는 다양한 방법으로 평택에서 어머니를 찾기 위해 노력중이며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다면 꼭 경찰이나 사단법인 둥지(02-535-3257)를 통해 연락해 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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