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의 여유

석계 윤행원 수필가/시인

셋째 딸 결혼식은 하와이에서 가졌다.

몇 달 전, 예비 사위하고 딸이 하와이에서 결혼식을 하겠다는 제안을 해서 나는 처음부터 흔쾌히 승낙을 했다. 참신(斬新)한 아이디어에 속으로 조금은 탄복을 하면서 그러자고 했다. 사돈 측에서도 기쁜 마음으로 동의(同意)를 해서 고마웠다.

한국의 결혼풍습은 허례허식이 많다. 심지어 한두 번 만난사람 에게도 결혼초청장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하객을 많이 모아야 체면도 서고 축의금도 보태고...여하튼 복잡하고 어수선하다. 예식장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 결혼식을 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결혼식은 소박하고 경건하게 해야 한다는 게 나의 평소 생각이다.

이번 경우에는, 사위될 사람의 집안은 부산에 있고 신부집은 경기도 평택에 있어 어차피 한 쪽은 먼 길을 버스를 대절해서 하객을 실어 날라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어서 잘됐다 싶었다. 그리고 이웃 사람이나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일체 알리지 않았다. 부담과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대신에 내 형제와 처갓집 형제들에겐 하와이 가기 며칠 전 평택 집에 초대를 해서 결혼식을 알리고 음식대접을 했다. 결혼 피로연을 미리 한 셈이다.

결혼준비는 전적으로 두 사람에게 맡겼다.

당사자 두 사람은 양가 가족들의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고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기획과 연출을 열심히 하는 것 같았다. 믿음직하고 맡길 만 했다. 참석 하객은 신부 측 직계가족 전부와 신랑 측 직계가족 전부 그리고 절친 몇 사람 합하여 모두 23명이었다.

하와이는 상하(常夏)의 섬나라다. 한국에선 2월 추위가 한창이지만 그 곳에선 섭씨 25도 안팎을 오르내리는 초여름의 날씨다. 하와이는 결혼식 장소로도 각광받고 있다. 그리고 이곳으로 신혼여행을 오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미국 본토에서 많이 온다고 한다. 일본이나 한국에서도 선호하는 신혼 여행지임은 물론이다.

결혼식 전날은 양가 모두들 모여서 하루 종일 호놀룰루 본섬 일주 관광에 나섰다. 온갖 구경을 같이하다보니 어느새 사돈지간(査頓之間)에 친밀감이 생기고 백년지기(百年知己)마냥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어 모두들 즐거워했다. 특히 바깥사돈 영감끼리는 험한 세월을 같이 겪은 세대라 대화소통이 원만했고 하루 만에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햇빛은 쨍쨍 빛나고 태평양의 푸른 물은 더없이 맑았다.

결혼식 당일은 모두들 정장으로 차려입고 바닷가 어느 부호의 장원(莊園)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나무들이 울창하고 푸른 잔디가 잘 다듬어진 넓은 잔디밭은 아름다웠고 쾌적했다. 미국인 목사의 주례로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나직하고 긴 주례사가 끝나고 결혼반지 교환을 한 다음에 결혼서약서에 신랑신부 이름과 사인을 했다. 그리고 양가 아버지의 최종 승인서명(承認署名)이 있었다. 흐뭇하고 아름다운 결혼풍경이다.

예식진행은 순조로웠고 엄숙하고 즐거운 분위기로 가득했다. 음식 담당자들의 손길은 바쁘고 음악 연주자들의 흥겨운 리듬은 축복의 시간으로 충분했다.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하와이안 웨딩 송은 감미로웠고 악기 연주자의 흥겨운 노래는 계속 이어졌다. 아름다운 폴리네시아 무용수의 하와이안 훌라춤은 사람들을 매료했다. 신부 아버지인 나는 축가를 불렀다. 악단의 반주와 함께 ‘you raise me up’을 조용하고 힘차게 불렀다. 박수와 감탄과 환호가 대단했음은 물론이다.

생각해 보면 조금은 색다른 결혼식이었고 바람직한 결혼식이었다. 복잡한 도시 호텔이나 일반 결혼식장보다 넉넉한 시간에다 깔끔하고 격조 있는 우아함이 깃든 야외가든 결혼식은 특별한 추억을 오랫동안 선사할 것이다.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해외 가족여행도 함께 하면서 신랑신부의 신혼여행도 겸하다보니 더욱 뜻있는 결혼식이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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