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 년 한국 최고의 스승, 원효대사 1. 거리의 떠돌이가 된 귀족

평택의 수도사는 원효대사가 해골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공간으로 알려진 곳이다. 올해 초 수도사에 원효대사의 업적을 담고 그 큰 뜻을 체험할 수 있도록 ‘평택 원효대사 깨달음체험관’이 개방된다. 이를 기념하며 오천 년 한국 사상 가장 위대한 정신적 스승, 원효대사의 참된 삶을 되새기고자 한다. 

“함께 나누지 못한다면 팔만대장경도 한낱 고름 닦는 휴지에 불과하다” 

원효대사 (AD617~AD686)

요즘 ‘화랑’이라는 TV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중이다. 1400여 전 신라에서는 귀족 중에 잘생기고 머리 좋고 재주까지 좋은 젊은이들을 선발하여 나라의 인재로 삼았다. 이들을 화랑이라 하는데 평소 몸과 마음을 수련하고 경치 좋은 곳을 유랑하며 노래와 음악을 즐겼다. 전쟁에 나가 제일 앞에 나서 목숨을 내놓고 싸우기도 했다. 화랑은 학문과 무예실력까지 두루 갖춘 만능탤런트였고 도덕적으로도 매우 훌륭했다. 당시 젊은이들에게 화랑은 대세였고 우상이었다. 이 가운데 이제 겨우 10대인 한 소년이 있었다. 그러다 나라에 전쟁이 났다. 소년은 화랑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전쟁에 나갔다. 평소 그는 어땠던가. 배우는 걸 좋아해 늘 책을 끼고 살았다. 귀족으로 태어나 대우받으며 편하게 살았다. 그런 그가 어린 나이에 전쟁을 경험한 것이다. 눈을 맞추며 함께 얘기하던 친구가 한 순간 주검이 되었다. 사지가 절단되고 피가 흥건한 참상을 보았다. 고운 도련님에게 전쟁은 영혼을 흔드는 충격이었다. 세상에 절망했고 자신만 편한 생을 살 수 없다 생각했다. 그리고 일생일대의 큰 결심을 한다. 무고한 죽음이 없고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더 큰 것을 배워야만 했다. 그리고 15세 되던 해 절로 들어가 홀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당시 신라는 없는 자들은 그저 있는 자들의 소모품이었고 그런 부당한 삶을 당연한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지금의 고통을 견디면 다음 생에서는 좋은 인생으로 태어날 거라고 믿으며 말이다. 그는 그런 생각이 옳지 않다고 믿었다. 청년이 된 그는 더 넓은 세계에 나가 현실을 개척할 사상을 배워오려고 했다. 그래서 중국유학을 결심했다. 평택 수도사 인근에 도착해 중국배를 기다리다가 해골물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하여 홀로 수년을 학문에 정진하고 깨달음을 얻었다. 그의 도가 모든 통찰을 간파하는 수준에 이르자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갔다. 걸인의 의복을 입고 팔도를 걸어 다녔다. 산속, 시골, 저잣거리, 양반집, 걸인의 집, 하물며 기생집도 마다하지 않았다. 함께 놀며 춤추며 눈높이를 맞췄다. 마음에 극락이 있으니 믿으면 누구나 깨달을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가르쳤다.

평택 원효대사 깨달음체험관
적문스님의 안내해설

우리는 미처 알지 못했다. 세계문화사에 우뚝 솟은 우리 사상가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 사상가는 오천 년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승이다. 아름답게 살다간 지성이었으며 지금의 혼돈에 가르침을 줄 분이다. 바로 원효대사이다. 우리는 그를 단지 해골물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분으로만 알고 있다. 그의 위대함은 오히려 해외에 더 알려졌다. 일본은 ‘그는 세계 속의 위대한 사상가’라고 칭송하고 그를 모신 수많은 절과 저서가 있다. 중국은 그를 ‘동쪽의 부처’라고 치하했다. 인도에까지 그의 저서가 보급되었다. 원효는 당시의 모든 사상을 통찰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귀족으로 태어나 부귀를 버리고 거리로 나가 성스러운 걸인이 되었다.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길 바라며 평생을 헌신했다. 현실에서 행복해지는 방법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후대까지 쉽게 배우길 바라고 240여권이 넘는 저술을 남겼다. 현대철학과 심리학의 주제는 언제나 ‘마음’이었고 원효는 이미 1400년 전에 인류보편사상을 간파한 것이다. 이에 머물지 않고 사랑을 실천해 약자의 친구이자 스승이 되어 주었다. 그런 참된 지성인이 우리 곁에 있었다. 가슴 따뜻해지는 사실이다. 원효에 대해 더 깊이 더 친근하게 배우기 위해 ‘평택 원효대사 깨달음체험관’을 찾아가 걷고 보고 느끼는 것도 또한 즐거운 일일 것이다.

글/ 평택 원효대사 깨달음체험관 스토리텔링 자문위원 오향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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