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옥비전고등학교학부모 독서모임 <호시탐탐> 회원

[평택시민신문] 게으름은 자신이 인식하는 범위와 타인에 의해 인식되는 서로 다른 범위가 있다. 스스로 게으르다고 느끼는 것은 내 문제겠지만, 타인이 나를 게으르다고 한다면 그것이 내 문제일까?

게으르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과 게으르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사이에는 미묘한 권력 관계가 존재한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자녀와 학생들에게,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국가 권력층이 국민들에게 끝도 없는 부지런함을 강요하고 있다. 그들은 게으름을 용납하지 않는다. 사회 질서와 권력 유지에 해악이라고 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휴일 아침에 늦도록 잠자리에서 뒹구는 일이나, 초등학생이 방과 후에 놀이터에서 노는 일에도 불안해하고 자책하게 하는 게으름의 잣대를 들이댄다. 동남아나 아프리카 등지는 열대 기후 탓에 많은 일을 할 수 없다. 경제 수준이 낮다는 이유로 그들을 게으름뱅이 취급하는 것은 모순이다. 인도인들에게 시간은 윤회의 개념으로 오늘, 지금 이 시간은 전생의 반복이고 다음 생에도 존재할 것이므로 서두를 필요가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 부지런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모든 문제에 이면이 있듯이 게으름도 보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지런함’하면 떠오르는 사람, 벤자민 프랭클린. ‘시간은 돈이다’라는 명언과 함께 시간 쪼개 쓰기의 진수인 프랭클린 플래너를 만들었다. 게으름을 악으로 취급하며 잠과 휴식의 달콤함을 용납하지 않았다. 해마다 프랭클린 플래너에 장,단기 계획을 세워놓고는 채우지 못하는 칸과 넘어가는 페이지들로 주눅이 들었던 때가 있다. 그때의 나는 계획만 무성한 채 끝을 보지 못하는 게으르고 나태한 인간이었다. 이제는 그 플래너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도 여전히 새해에는 새 다이어리로 시작한다. 촘촘하게 짜여진 많은 일정들 말고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고무줄 같은 계획들로 채운다. 게으름을 인정하고 불안과 자책에서 벗어나 타인의 눈이 기준이 아니라 나의 관점을 찾아가고 있다.

인간의 욕망이 우리를 부지런함으로 등 떠민다. 남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야 하고, 더 열심히 일해서 더 높은 위치에 올라야 한다는 욕망이 밤새도록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를 만들었다. 천년을 살 것처럼 부와 명예를 좇는 일도, 당장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만 사는 일도 문제일 것이다. 누군가의 기준과 시선에 얽매이기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생활을 하며 적절히 휴식을 즐길 줄 아는 삶을 지향한다. 일하는 시간만큼이나 노는 시간도 중요하다.

2017년도 그새 한 달을 훌쩍 넘겼다. 이쯤에서 자잘한 계획들을 점검하자면, 등록하려고 마음먹은 피트니스 센터는 설 연휴다 뭐다해서 아직 입금조차 안했고, 한 달에 두어 번은 다녀보자고 생각한 덕암산은 토요일까지 근무하느라 바빴던 탓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 그나마 매일 일정 시간의 책읽기만을 근근이 이어가고 있다. 재봉틀 배워 옷 짓기나 하반기 배낭여행 계획은 천천히 하기로 하자. 생각이 궁하다보니 변명이 길어졌으나, 아랑곳없이 게으름 피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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