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받는’아내의 길

박경순시인·사진작가

[평택시민신문] 지난 연말에 모 단체 창립 기념행사에 초대를 받아 참석하게 되었다. 기념사와 축사. 그 단체가 걸어온 길까지 앉아서 지켜보았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열심히 지역 발전을 위해 일해왔다는 생각에 초대 받은 것이 기뻤다.

이 생각도 잠깐. 행사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먹을거리와 뒤풀이가 아닐까.

유기농 식단의 뷔페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적당한 포만감으로 행사장을 나서다가 그만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행사를 마친 단체 임원들과 몇몇의 참가자들이 내미는 2차 3차라는 유혹의 마력을 뿌리치지 못한 것이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멀어지게 되는 밤 문화의 정취에 젖어보는 것도 나름 한 해를 갈무리 하는 시점에서 색다른 기억이 될 거라는 생각도 한 몫 했다.

드디어 도착한 노래방에서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녹여보고 싶은지 한 분이 얼른 마이크를 잡았다. 곡목 선정의 혼란스러움에 빠지시는 거 같아 내가 대뜸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목청 높여 외쳤다. 그러면서 우리 집 예를 들어가며 부추겼다. 나의 남편이 색소폰을 처음 배우기 시작하고, 밥 차릴 즈음 그 노래를 연주하면 밥 차리는 일이 즐거운 일로 바뀌더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러자 곁에 있던 그의 아내가 반색을 하며 그 노래를 불러 보라고 요청했다. 노래를 들으면서 우리는 한결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자신들이 부를 노래를 선곡했다.

얼마 전 스마트 폰으로 전해 받은 동영상이 있다. 12명의 여자와 산다는 멘트와 함께 아내에 대한 호칭을 12개로 지칭하며 내가 아는 멜로디에 개사해서 부른 노래였다. 마누라, 부인, 아내, 각시, 색시, 자기, 여보, 집사람, 처, 임자, 당신, 여편네라고 들면서 익살스럽게 부르던 동영상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여자와 남자에게 필요한 것들이 있는데, 남자에게 필요한 다섯 가지는 아내, 부인, 마누라, 집사람, 여편네라는 글이 공공연히 나돌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자료 조사에서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배우자와 다시 결혼하겠느냐는 질문에 남자들이 ‘예’라고 답한 퍼센트가 높은 데 반해 여자들은 ‘노’라는 답이 많았다는 기사도 본 적이 있다.

한때 선풍적으로 퍼져나갔던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에 담긴 메시지는 단순한 것인지도 모른다. 남편의 동반자로서 ‘수고’가 많은 아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가사와 감미로운 멜로디가 모든 부부들에게 감동을 안겨주지 않았을까. 수십 년 동안 아내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사라진 파란의 세월들은 열 권의 책으로 엮어도 모자랄 것이라는 주변의 얘기들을 종종 듣곤 한다. 그렇지만 그 노래 한 곡으로 아내들의 ‘쌓인 감정’이 봄눈 녹듯 사라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보상의 등식이련가.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가 흐르는 동안 아내의 길을 가고 있을 세상의 모든 아내들과 동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내들이 행복할 때, 곧 다시 태어나고 싶은 세상이 될 거라고 가사의 말미에 대한 여운을 길게 늘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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