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처럼 함께 걸어요 -

박경순 시인/사진작가

[평택시민신문] 걷기 좋은 계절이 따로 있다면 아마 가을이 아닐까 싶다. 모처럼 일정이 잡혀 있지 않은 주말의 날씨는 걷기 좋은 가을 날씨였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바람 잔잔하고 햇살 순한 날이 어디 그리 흔하던가.

처음 만난 일행들은 두 팀이 모두 가족이었다. 한 팀은 아버지와 딸 그리고 세 명의 아들이었다. 다른 한 가족은 시누이와 올케(나중에 알게 됨) 사이였고 나와 섶길 위원 한 사람이 전부였다. 예상보다 소수의 구성원이라 생각하며 조촐하여 더 가족적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며 걷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함께 온 가족들은 누나와 남동생의 터울이 10살이 넘고 그 밑으로 세 명의 동생이 7살 5살 3살이었다. 그 아이들의 아버지는 우리가 우려할지도 모른다고 여기셨는지 아이들과 종종 걷는 일을 꾸준히 해 왔노라며 행여라도 폐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 하는 모습이었다.

신왕리 들판에는 가을걷이가 끝난 곳과 군데군데 알차게 영근 알곡들이 햇살을 머금으며 풍성한 결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걸었다. 어린이는 어린이인 것일까. 어느 정도 걷다가 배도 고프고 다리가 아픈지 슬슬 본인들의 의지와는 다르게 불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아이를 보며 내 손을 내밀었다. 뜻밖에도 순순히 내 손을 잡아 주었다. 너무 작아서 꼭 잡으면 부서질 거 같았지만 따뜻했다.

문득 내 아들에게 손을 내밀었다가 완강하게 뿌리치며 거절당했던 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했다. 손 내밀어 잡을 수 있는 마음의 거리는 얼마나 멀고도 가까운 사이일까? 그 뒤로 아들이 나를 뿌리쳤던 거리만큼 성장하면서 골이 깊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 깊은 골을 메우는데 오랜 세월이 걸렸다. 나는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아들 또한 힘든 시간들을 보내는 걸 지켜보아야 했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혈연관계는 사랑이 깊은 만큼 그 사랑에 조그마한 상처를 입어도 엄청나게 깊고 두터워질 수 있다는 걸 차츰 깨달아 가면서 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부모가 된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자식을 키우며 알아가는 것이라는 걸 지금도 알아차리며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는지 앞으로도 노력해 갈 것이다.

지난 날 아들에게서 발견한 어리석음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명상길을 걸으며 손을 잡아 준 유민이라는 아이의 손은 구원의 손길 같았다.

또 다른 가족관계는 시누이와 올케 사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처음엔 두 사람의 관계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사이가 자연스럽고 친구처럼 친근해 보였다. 걷기 코스를 다 마치고 커피 타임을 갖는 자리에서 알게 되어 깜짝 놀랐다. 여자들이 출가하며 새로운 가족 관계를 맺게 되는 시누이와 올케 사이지만 누구나 그렇게 다정스럽게 지내기란 쉽지 않은 것이 다반사다. 나 또한 시누이와 올케가 있지만, 내가 그들에게 곁을 주지 않아서 일까. 마음을 터놓는 허물없는 사이는 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인생길을 가고 있다. 그 길은 어쩌면 숨 가쁜 길일지도 모른다. 가끔은 자연 속에서 가족같은 사람들과 함께 걸어 보는 것도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 하루였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평택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