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에세이 시와 함께 읽는 아버지 이야기 55

유 정 이

시인·문학박사

경희대 겸임교수

그는 지금도 무겁게 등짐을 지고 사막 위를 타박타박 걷고 있을 것이다 바람은 순간순간 모래 위에 새겨지는 그의 삶의 흔적을 하나하나 지우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주춤거리며 머뭇거리며 지상에 남기고 간 언어의 뼈들이 실은 그렇게 단단하거나 모질거나 깊지 않은 어록이었음을 그는 이미 눈치챘을 것이다 수없이 뭉개지고 부서지는 말의 덩어리들을 끌어안고 하늘 아래 세상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그 말의 안식처를 찾는 걸음걸음이 정작 비화로 흩어지는 사막의 발자국 같은 것이었음을 이제는 알았을 것이다 그의 몸에 핏줄이 막혀 말을 할 수 없을 때 오체 투지하듯 몸으로 아니 표정으로 아니 눈으로 몸부림에 몸부림을 치던 그 시간이 언제였던가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살과 뼈를 모두 버리고 가볍디가벼운 몸으로 그 길의 심연을 걷고 있을 것이다 그가 머물렀던 지상의 시간은 단조로운 무대의 키 작은 주인공이 받은 짧은 조명의 단막극에도 미치지 못하였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는 지금 눈물 마른 눈이 아파서 물기 젖은 번뇌들을 귀로 들으며 몇 번 씩 멈췄다 내뱉는 깊은 호흡을 사막 위에 뿌리고 있을 것이다 힘든 내색은 하지 않고 밀교의 수행자의 모습으로 그저 사막을 걷고 있을 것이다

-김삼환,「사막 어록」

 

모국어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 이국의 천변에 와 있다.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것을 지향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단 한 번도 같은 시간의 물결에 발을 담근 적이 없다는 점에서 날마다 새롭게 잉태되는 공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새로움을 향한 꿈을 멈추지 않는다. 낯선 곳으로의 지향은 주체의 외연을 그리고 내면을 확장하는 바람직한 방법이다. 인간의 항해는 그렇게 거듭되었을 것이다.

나는 다시 이 낯이 선 곳에 앉아 거기 내 삶의 전부가 걸쳐져 있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있다. 거기 ‘타박타박’ 사막 위를 걸어가는 어떤 이에 대한 그리움이 동반되는 시간, 언젠가 그가 걸었을 혹은 걸어갈 외로운 사막의 걸음걸이를 셈하고 있는 중이다.

 ‘사막’은 어떤 곳일까? 사전에는 ‘강수량이 적어서 식생이 보이지 않거나 적고, 인간의 활동도 제약되는 지역’(네이버)이라고 되어 있으나. 정의(定義) 이전의 ‘사막’을 우리는 먼저 알고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사막’은 ‘수행자의 모습으로’ 걷지 않으면 목표지점에 도달할 수 없다. 강렬한 햇볕이 쏟아지고 강수량이 적어 갈증을 더하는 현재 때문이 아니고 얼마간 계속 그리고 언제까지 계속될 지도 모른다는 앞으로의 시간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것이 물리적 고통이든 심리적인 영역이든 그러하다.

사막의 지난함은 다른 것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모든 ‘삶의 흔적들’이 바람에 쓸려 지워지고 사라진다는 것, ‘지상의 것들이 결코 모질거나 단단하지 않다’는 것을 하나하나 체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몸에 핏줄이 막혀 말을 할 수 없을 때 오체 투지하듯 몸으로 아니 표정으로 아니 눈으로 몸부림에 몸부림을 치던 그 시간’들을 건너야 한다. ‘살과 뼈를 모두 버리고 가볍디가벼운 몸으로 그 길의 심연을 걷’되 ‘머물렀던 지상의 시간은 단조로운 무대의 키 작은 주인공이 받은 짧은 조명의 단막극에도 미치지 못하였음을 알’아야 하는 덧없음의 인식들 강화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밀교의 수행자의 모습으로’ 걸어야 하는 운명을 사막은 거듭 들려준다.

극단의 외로움과 물리적 고통을 끝까지 밀고 가야 하는 것이 사막의 길이다. 사막은 이를 경험하는 자에 한해서 ‘어록’을 채록하도록 돕는다. 하나의 세계는 사막의 깊이 혹은 심연을 횡단하면서 더욱 폭넓게 확장될 것이다. 사막을 걷는 외로운 주체의 ‘수행’을 아버지의 생으로 다시 덧대어 보는 것은 무의미한 사족이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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