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에세이 시와 함께 읽는 아버지 이야기 49

유정이

시인·문학박사

경희대 겸임교수

아버지가 보낸 텔레비전과 함께 딸려온 리모컨, 죽은 건전지를 꺼내 몸통을 송곳니로 깨문다.
(중  략)
아버지 어깨너머로 배웠다. 잘근잘근,
건전지를 깨물면서 옆으로 누워 리모컨을 쥐는 자세를.

아버지가 전력을 다해 전력을 사용했을 시간, 하릴없이 채널을 돌려가며 눈을 비볐을
아버지는 양극의 희생자다.

양극의 극단으로 가야 오로라가 펼쳐진다.
거기에는 천둥은 없으나
극은 통한다.

플러스와 마이너스 사이에서 방전되어 떠도는 구름처럼, 내리치는 번개와 쪼개지는 땅처럼
채널이 돌아가는 순간의 번쩍이는 화면 속에 아버지가 누워 있다.

아버지 송곳니 자국에 오늘은 내가 송곳니를 박고 있다.
우리 부자는 이토록 어색하게나마 입을 맞춘다.
굳은 시체가 슬쩍 깨어난다.

백상웅,「전력」

세대 공감이 어려운 시대라고 말한다. 계층 단절도 심각하다고 한다. 위의 인용 시에 등장하는 두 부자(父子)의 모습은 어떤 것을 형상화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이 시의 화자는 지금 ‘아버지가 보낸 텔레비전’ 앞에서 ‘리모컨, 죽은 건전지를 꺼내 몸통을 송곳니로 깨’물고 있다. 이렇게 ‘잘근잘근’ 씹는 행위는 ‘아버지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다. 화자는 ‘건전지를 깨물면서 옆으로 누워 리모컨을 쥐는 자세’를 취한다. 그러면서 ‘전력을 다해 전력을 사용’하던 아버지, ‘하릴없이 채널을 돌려가며 눈을 비볐을’ 아버지를 떠올린다. ‘아버지는 양극의 희생자’였다. 좌우(左右)였던지 음양(陰陽)이었던지 어찌되었든 아버지는 생의 ‘오로라’대신 ‘텔레비전’ 불빛만을 끌어 앉고 있던, 소외된 인간형이었다.
 ‘양극의 희생자’로서의 아버지는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신분을 살았다. 그런 아버지는 ‘방전되어 떠도는 구름처럼, 내리치는 번개와 쪼개지는 땅처럼/채널이 돌아가는 순간의 번쩍이는 화면 속에 누워 있’곤 했다. 건강하게 노동하고 그 노동으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임무가 있었던 그는 어떤 ‘희생자’의 신분으로 그렇게 소외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차세대의 ‘나’는 어떠한가? 화자인 ‘나’ 역시 그러한 범주를 크게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나이는 다르지만 같은 행동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 송곳니 자국에 오늘은 내가 송곳니를 박고 있’으며 두 ‘부자는 이토록 어색하게나마 입을 맞’추고 있다는 표현이 그러하다. ‘아버지’와 더불어 ‘나’역시도 건강한 노동에 초대받지 못한 채 ‘전력을 다해 전력을 사용하’고 있다.
 나와 아버지의 물리적 조건은 같다. 나름의 다른 서사가 있다고는 해도 아버지와 아들 모두는 무엇인가의 ‘희생자’라는 인식이 밑그림으로 그려진다. 둘 다 ‘극단’으로 가지 못했기에 ‘오로라’를 만날 수 없었다. ‘아버지’의 처지와 같아진 ‘나’이니 ‘아버지’의 생의 전체를 이해하는 일은 얼마나 수월할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세대 공감이 절실한 시절이라고 한다. 위의 인용 시에는 아버지와 나 사이의 절대적 공감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보여주는 지극한 공감의 역설! 한없이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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