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에세이 시와 함께 읽는 아버지 이야기 46

유정이

시인·문학박사

경희대 겸임교수

민들레 노랗게 피어난 들길
저만큼 앞서서
산을 내려가시는 아버지의 뒷모습
훤칠한 키에 늘 보기 좋았던
일흔이 넘어도 늘 정정하시던,
아버지의 걸음걸이
아, 오늘은 완연한 노인의 모습이다
어깨가 조금 처지고 보폭도 좁아져
조심조심 내려가시는 뒷모습
어찌할거나, 아버지
당신의 길 끝을 향해
저토록 조심스럽게 걸어가신다
낡은 잿빛 중절모 위로
건넛산으로 이어지는
황톳빛 길 하나 내려와 앉아
아지랑이 피워 올리며 손짓하는
이 봄날에 
이구락,「아버지의 뒷모습」

봄이다. 탈피(脫皮)하듯 창밖의 목련이 힘겨운 사투를 벌이며 자신의 내부를 밀어내고 꽃을 피우는가 싶더니, 어느새 추위에 웅크려있던 벚나무들이 하늘거리는 꽃잎들을 몸에 붙여놓고는 재잘재잘 수다가 한창이다. 살살 부는 바람에 실려 분홍 눈처럼 떨어지는 살랑거리는 꽃비는 또 어떠한가. 우리는 해마다 찾아오는 봄으로 생동한다. 만화방창, 새 날의  아름다운 서막이 비로소 열리는 듯하다. 이어 꽃잔디로 색을 더하고 영산홍으로 풍성함을 보태면 더욱 형형색색 아름다운 시간으로 영롱해지리라.
이 아름다운 축제 속에서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민들레 노랗게 피어난 들길/ 저만큼 앞서서/산을 내려가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자아이다. ‘훤칠한 키에 늘 보기 좋았던 아버지’에게도 봄의 시절이 있었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당신의 길 끝을 향해’ ‘조심조심 내려가는’ ‘완연한 노인의 모습’일 뿐이다. 만상은 생명을 피워 올리는데 사랑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낡은 잿빛 중절모’로 상징되는 저녁, 생의 건너편을 향해 발길을 내딛고 있다. 생명이 약동하는 봄날과 극명히 대조될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아지랑이’처럼 앞을 가리는 눈물로 다가온다.
‘뒷모습’은 앞모습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삶의 이력은 그 사람의 외형에 숨길 수 없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마련이다. 뒷모습이 특히 더 그러하다. 앞모습은 의상으로 액세서리로 그리고 화장으로 가릴 수 있으나 뒷모습은 그렇지 않다. 그러니 숨길 수 없이 드러나는, ‘어깨가 조금 처지고 보폭도 좁아’진 ‘아버지의 뒷모습’은 당당했던 아버지의 봄날을 상기할 때 더욱더 그 처연함을 더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정면의 구도에 있을 때는 판단의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선입견이나 편견이 끼어들 수도 있고 위장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관계를 비끼어 서거나 한참을 지나 돌이켜보았을 때 더욱 명징해지는 것들이 있다. 상대와 가까이, 정면의 관계 속에 있을 때보다는 그를 벗어날 때 더 그 사람에 대해 자세히 그리고 정확히 알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정면의 아버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정면으로 아버지를 대하던 시절, 누구나 그 때의 아버지는 대체로 엄하고 권위적이며 강건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의 앞모습은 어느덧 사라지고 이미 우리를 비껴간 지 오래되었다. 이제 아버지는 점차 뒷모습으로만 존재한다. 내내 그럴 것이다. ‘당신의 길 끝을 향해/저토록 조심스럽게 걸어가시’는 ‘아버지’라는 이름의 그대여! 하여 시인은 시에서는 금기하는 생경한 감정을 그대로 토로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어찌할거나, 아버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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