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에세이 시와 함께 읽는 아버지 이야기 45

유정이

시인·문학박사

경희대 겸임교수

아버지가 굳어버린 노을처럼 누워 있다
낮엔, 그래도
콧등으로 풀잠자리의 날갯짓 소리가 멈추지 않았는데

아프지만 따뜻했던
이젠 아프지 않지만 차가운
아버지가 괜찮다 하시며 내 손을 헐겁게 쥐신다
난 하나도 괜찮지 않은데
자꾸만 이젠 다 괜찮다 말씀하신다

--------(중 략)---------

버려진 날들이 허둥대며 뜨고 난 자리엔
한 번도 가득 채워보지 못한
아버지의 주름 진 생의 빈 포대만이 놓여있었다

당신마저 버리시기 전
헐거워진 조리개 같은 동공 속에
나를 담고 계셨다

아버지도 두려우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낯선 길에 섰을 때
내가 함께 있다고 믿고 싶었던 것이다

이상윤,「배웅」

아버지가 아프다. 내겐 언제나 건장함의 상징, 건재함의 이미지였던 아버지가 어느새 ‘노을’처럼 저물어가는 시간의 언덕 위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우리 아버지는 눈썹 숱이 많고 말수가 적은, 대표적인 ‘엄(嚴)한 아버지상(象)’을 용모로 갖춘 분이었다. 사실 우리 아버지가 갖춘 이러한 용모 그리고 사해동포(?) 정신으로 궂은일을 도맡아 해주면서도 스스로 자랑을 덧대거나 허언으로 과장하지 않는 과묵함은 흥미로운 연구과제이긴 하다. 흔히 경거망동하는, 예의라고는 모르는 자들을 빗대어‘애비 없는 자식’이라고 부르는 바, 출신성분으로 따지자면 바로 그러한 분이었기 때문이다.

기억해보면 내게 전에는 없어왔던‘아버지’라는 존재가 수면 위로 불쑥 떠오른 시공 역시 아버지에 대한 나의 견고한 틀을 형성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어느 날 무슨 용무였는지는 모르지만 그날 아버지는 내가 공부하는 교실의 앞쪽 문을 반쯤 열고 들어와 담임선생님과 긴하게 무슨 말씀을 나누는 것 같았다. 전후의 기억은 망실되었다. 다만 그 때 교실에서 보았던 아버지의 모습, 그것만이 흑백사진처럼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다. 그 때 내가 본 아버지는 검은 얼굴에 짧은 스포츠머리, 나이 서른의 신체를 가진(따져보니) 건강한 남자였다. 세상에서 저렇게 키가 큰 사람도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유난히 내게 아버지는 늘 건재한 사람, 강건함으로만 이미지화한 그런 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요즘 아버지가 아프다. 세월의 풍화를 빗겨가지 못한 탓이다.

아픈 사람은 몸과 마음이 약해진다. 눈도 순해지고 부드러워진다. 아픈 아버지에게서 나는 요즘 평생을 만나지 못한 아버지를 만나고 있다. 늘 엄하고, 강하고, 크기만 했던 아버지의 속에 있던, 어쩌면 가장 깊숙이 숨겨져 있던 아버지의 모습을 꺼내보는 중인지도 모른다.‘헐거워진 조리개 같은 동공 속에/나를 담고 계셨’다는 이상윤 시 화자의 아버지처럼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은‘두려’움을 느끼는 존재로,‘낯선 길에 섰을 때/내(자식)가 함께 있다고 믿고 싶’은 아버지로 점점 나아가는 것이리라.‘배웅’의 의미를 새롭게 구성해 본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평택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