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에세이 시와 함께 읽는 아버지 이야기 42

유정이

시인·문학박사

경희대 겸임교수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의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19문 반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6문 3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 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19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니 19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 박목월,「가정」

1940년대 일본 강점기 시대에 박두진, 조지훈과 더불어 일명 ‘청록파’시인으로 한국시의 명맥을 이어 주었던 분이 박목월 시인이다. 당대의 엄혹한 추위 속에서 일부는 일제의 힘에 복속하거나 혹은 절필을 선언하면서 황폐의 길을 걸어갈 때『문장』지 출신의 위 세 어른들은 ‘청록’이라는 이름으로 문화 암흑기인 이 시기를 면면히 이어갔다. 이러한 문학사적 의의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의 맹공에 당당히 맞서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서 자연(박목월), 종교(조지훈), 이상향(박두진)으로 도피했다는 것은 이분들에 대한 부정적 평가로 주어진 것이 사실이다.

위의 시는 ‘아홉 켤레의 신발’로 상징되는 가족의 이야기가 따뜻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 시의 화자로 등장하는 ‘시인’인 ‘아버지’는 지금 ‘현관’에 와 있다. ‘현관’은 ‘눈과 얼음의 길’, ‘추위와 굶주림’으로 대변되는 외부의 냉혹한 현실을 최소한이나마 막아줄 수 있는 내부 공간이다. 문을 열고 안방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중간지점이다. 그곳은 안방처럼 완벽하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추위와 위험을 막을 수 있는 공간인데, 그곳에서 ‘아버지’인 시인은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개무량하다. 신발들이 현관에 모여 있다는 의미는 가족들 모두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로 안전하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는 ‘연민한 삶의 길’을 한탄하면서도 그가 ‘미소하는 얼굴’을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아버지도 함께 ‘현관’에 모인 신발의 무리로 ‘지상’에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최소한의 행복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스스로 모진 추위를 잘도 견뎌내고 있다는 자부심 때문일 것이다.

냉혹한 현실에 저항하는 것도 그로써 산화의 길을 택하는 것도 옳은 일이다. 그러나 ‘아버지’된 자로서의 선택은 그러한 행동만이 반드시 유일한 것이며 최선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가정’을 지켜내야 하는 ‘아버지’의 사전에서 가장 앞 페이지를 차지하는 것은 저항이나 도피, 회피가 아니라 ‘추운 길을’오는 행위, 그렇게 해서 가족구성원들의 최소한의 안위를 확인하는 행위였을 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현관’에서 ‘미소’한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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