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짝 뒤로 물러서면 아무것도 아니다

경쟁하듯 각박한 삶보다 함께 어우러져 살고파

병원은 어느 진료과목을 막론하고 누구나 가고 싶지 않은 곳이겠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가장 두려운 대상은 단연 치과일 것이다. 하지만 오복 중에 하나라고 불릴 만큼 우리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치아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눈물을 머금고 찾는 곳 또한 치과인지라 마치 애증의 관계처럼 멀리할 수도 가까이 할 수도 없는 곳이다.
치료 받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괜스레 심장이 조여 오는 걸 느끼며 AK백화점 7층에 위치한 조형희치과의원으로 들어섰다. 치과에서 받던 예의 그 느낌과는 다른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반갑게 맞이해주는 조형희(55) 원장과 마주하니 긴장이 다소 누그러들었다.

평택에서 나고 자라 초중고 시절을 평택에서 보내고 가까운 천안단국대학교 치과대학에서 치과의사의 꿈을 실현했다는 조 원장은 평생을 평택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아온 그야말로 토박이였다.
“평택이 길러주고 꿈을 이뤄줬으니 평택에 살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조 원장은 민주화 운동의 불길이 타오르던 대학시절, 치과대학의 특성상 피가 끓는 청춘임에도 직접 현장에 뛰어들지 못해 마음 아팠다며 의사라는 목표를 달성하면 반드시 의미 있는 일을 하리라 결심했었다고 한다. 이런 조 원장의 결심은 뜻을 같이한 사람들과 함께 차상위 계층에 대한 치과진료와 지역에서 올바른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지역신문과 인연을 이어가며 그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이권과 정당으로부터 자유로운 지역신문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지역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인연을 맺어왔죠.” 조 원장은 중앙매체가 할 수 없는 영역에서 지역신문이 본연의 역할을 다한다면 평택시가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여름철 논에서 고르게 자라난 푸르른 벼를 좋아한다는 조 원장은 “벼는 너무 웃자라서도 못자라서도 안된다. 모두가 고르게 자라야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다들 보기 좋게 고만고만한 크기로 자라나는 벼 사이로 툭 삐져나온 잡초는 반드시 뽑힘을 당하고 모난 돌이 먼저 정에 맞기 마련이죠.” 대화하는 내내 다른 의사의 모습과 달리 시종일관 즐거운 분위기를 연출하며 대화를 이어간 조 원장은 평택미협과 예총을 만들고 미협회장과 예총지회장을 역임한 부친 조성락 씨의 영향 탓인지 의사들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운 예술가적 기질을 엿볼 수 있었다.

조 원장은 사람들이 개미들을 바라보듯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나 관조하며 인생사를 들여다본다면 “그동안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전전긍긍했던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부질없었는지 알게 될 것”이라며 갈수록 각박해져가는 현실 속에서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하고 각박하게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치과의사로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항상 고민하고 있다는 조형희 원장은 “모두가 행복한 평택을 위해 고르게 자라는 벼처럼 차분히 자신의 위치에서 제 몫을 다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의지가 되고 힘이 되어주는 평택인으로 남고자 노력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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