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2호 법정, 엄격한 검색대를 통과해 들어간 자리에서 기자는 평택 출신의 한 정치인이 추락하는 역사적인 판결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이재영 새누리당 평택을지역 국회의원이 금배지를 박탈당하는 가슴 아픈 재판이었다.

이날 민사소송으로 시작해 행정소송에 이어 형사소송까지 수백 건이 됨직한 상고심에 대해 자체적으로 심리한 판결문을 대법관 4명이 차례로 돌아가면서 읽어주는 식으로 재판이 진행됐는데, 법정에는 피고도 원고도 없이 찬물을 끼얹은 듯한 분위기 속에 건조한 법관들의 목소리만 낮게 울렸다. 억울한 사건을 풀어보기 위해 마지막 종착역까지 돈과 시간을 들여 왔으나 소송인들의 원대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억울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걸로 끝이었다. 더 이상 호소할 곳 없이 허탈하게 돌아서야 하지만 1~2심을 뒤집어엎고 최종 승리를 맛보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에는 200석 정도 되는 좌석이 넘치도록 찼다가 점점 빈자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해당 사건의 당사자나 가족이 자신과 관련된 재판결과를 듣고 곧장 법정을 떠나기 때문이었다. 억울해도 조용히 물러가야 했고, 원하는 결과가 나와서 좋다고 박수를 치거나 환호할 수도 없었다. 사진을 찍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기자로 보이는 사람들은 수첩을 꺼내들고 메모할 뿐이었다. 10시에 시작된 재판이 30분 쯤 지났을 무렵 형사소송이 시작됐고, 제일 첫 번째 순서로 익숙한 이름 소리가 들려왔다.

“사건번호 다201334075 이재영 이승호의 업무상 횡령등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상고한 피고의 상고심은 기각한다.”

고영한 대법관은 이렇게 선고를 한 후 다음 사건으로 넘어갔다. 이 의원과 그의 아들에게 무겁게 형량이 부과된 원심을 그대로 인정한 것으로 그 이유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한두 문장으로 읽어주고 당선무효가 되었음을 확정했다. 수많은 방청객 속에 이 의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심리가 끝난 재판의 선고 결과를 듣고 전달할 그의 측근이나 보좌관이 왔겠지만 만나지 못했다. 이날 그의 동료의원 몇 사람이 같은 법정에서 비슷한 사건으로 판결을 받았는데, 그 중 새누리당의 비례대표 현영희 의원과 민주당의 신장용 의원도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다. 반면에 새누리당의 박덕흠 의원과 윤영석 의원은 검찰의 상고가 기각돼 살아남았다.

그 후 열하루가 지난 27일 이제 자연인으로 돌아간 이재영 전 의원으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다. 지역구 주민들과 기자들에게 대량으로 보낸 것 같은데 죄송하다는 말로 시작했지만 사법부의 심판에 대해 억울해 하는 심정을 읽을 수 있었다. 지난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2년 가까이 밤낮 가리지 않고 의정활동에 충실했다며 478건의 법안을 대표 및 공동발의했고, 평택의 숙원사업인 고덕산단에서부터 황해경제자유구역, 서해안 고속도로, 서해안전철, 평택항IC, 평택항 횡단도로, 수원~오산~팽성국도, 평택항 배후부지 상업화 등등 굵직한 현안들을 해결했다고 나열한 후 이번에 자신의 불행을 초래하게 된 사건을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하지만 지난 총선과정에서 합법적인 선거비용을 지출했으나 선거사무 잘못으로 사랑하는 시민들에게 크나큰 아픔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기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선거법을 잘 몰랐든 알았든 나름대로 합법적인 비용을 지출했는데 선거 사무 잘못이라고 한 진술은 1심부터 3심 재판부까지 아무리 참작하려고 해도 통하지 않았다. 법을 어긴 사실이 명백하니 사법부가 중형을 선고한 것이 아닐까.

어떻게 얻은 금배지인데…. 오랜 야인생활 끝에 모처럼 본선에 출전할 기회를 얻었던 그가 유력한 상대를 가까스로 이기고 국회에 입성하지 않았던가. 임기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 채 도중하차한 이 전 의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억울하고 원통할 것 같아 기자도 가슴이 아프다.

또 다시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한정된 자리에 도전자는 많다보니 치열한 싸움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정당당하게 플레이를 해야 된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법을 위반하는 일이 없도록 후보자나 유권자들에게 각별하게 주의를 주고 캠페인을 한다. 선거에 나갈 사람과 사무와 회계책임자를 불러 교육도 시킨다. 돈을 잘못 지출하면 당선된 후 범법자가 될 수도 있으니 법적으로 제한된 액수만큼 쓰고 투명하게 회계정리를 해야 된다. 선거운동을 도와준다고 무분별하게 돈을 풀어서는 안된다. 나중에 심판대 앞에 불려가서 “합법적인 선거비용인데 선거사무 잘못”이라고 변명해도 통하지 않는다. 올해는 결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선거과정에서나 당선된 후에 걸려 불행하게 하차하는 일이 없도록 모든 후보자들이 페어플레이를 하는 선거판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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